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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에도 볕 들 날 왔어요”

최장동 한국체인사업協 이사장 … ‘햇빛촌’ 브랜드 런칭하고 소점포 5만여 개 하나로 묶기 ‘시동’

“구멍가게에도 볕 들 날 왔어요”

“구멍가게에도 볕 들 날 왔어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들 대형할인점에 선전포고를 한 신생 브랜드가 있다. 대기업도 외국계 자본도 아니다. 동네 슈퍼마켓들이 모여 만든 공동 브랜드 ‘햇빛촌’이다.

구멍가게들이라고 우습게 보면 큰코다칠 수 있다. 점포 수가 자그마치 5만여 개에 이른다. 현재 국내 전체 대형할인점 점포가 290개, 편의점 매장이 8000여 개인 것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이 ‘햇빛촌’의 산파 구실을 한 사람이 바로 최장동(59·새생활체인본부 대표)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이다. 그는 최근 햇빛촌 브랜드 런칭을 마치고 5만여 가맹점을 하나의 브랜드로 묶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우선 4월 중 전국 주요 거점에 위치한 점포들을 대상으로 ‘햇빛촌’ 브랜드를 시범 적용한 뒤 단계적으로 확산, 올해 안에 전체 가맹점의 50% 이상까지 이 브랜드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2~3년 후쯤 전국 어느 동네에서나 ‘햇빛촌’ 간판을 내건 슈퍼마켓과 구멍가게를 볼 수 있게 된다.

공동구매로 원가절감·PB 상품도 개발



최 이사장의 계획은 훨씬 더 치밀하다. 간판만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햇빛촌 이름으로 공동구매해 판매원가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대형할인점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판매가를 낮추는 것이 급선무죠. 하지만 공동구매의 효과는 이보다 큽니다. 한꺼번에 구매를 하면 가맹점 간 취급 제품군에 통일성이 생기는 동시에 품질관리도 일괄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그는 ‘햇빛촌’ 이름으로 PB(자사 브랜드) 상품까지 적극 개발할 계획이다. 제품력 있는 납품 업체를 선별해 해당 제품을 중소기업청에 의뢰, GQ마크(중소기업 우수제품 인증 표시)를 획득한 제품만을 PB 상품으로 개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벌써 수십 종의 PB 시제품을 만들어놓은 상태다. 이와 함께 전국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공동 프로모션(판촉 활동)도 추진할 생각이다. 현재 조합 내 89개 체인본부(도매상)는 ‘햇빛촌’ 브랜드의 물류센터 구실을 맡게 된다. 또 궁극적으로는 간판뿐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까지 CI(기업통합 이미지)를 확대, 통일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는 한편 POS(판매시점 관리시스템),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등을 도입해 투명성도 높일 계획이다.

“공룡 같은 대형할인점들의 공격적 마케팅을 막아내기 위해 우리는 뭉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급속도로 팽창해온 대형할인점들은 이제 동네의 구멍가게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들의 대량 유통을 통한 저가 공세를 막아낼 재간이 없는 소규모 점포들이 문을 닫는 상황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통계청과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년 전 10만 개이던 중소 유통점포는 현재 20%나 감소했다. 그나마 버틴 업체들도 매출이 평균 30% 이상 감소했으며, 이들에게 물건을 공급하는 조합체인본부의 75% 이상이 3년 넘게 적자를 봤다.

“구멍가게에도 볕 들 날 왔어요”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정기총회(2006년 2월24일).

“이런 속도라면 10년도 못 가 국내에서는 동네 슈퍼마켓이나 구멍가게를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이들 슈퍼소매점 대부분이 생계형 영세 업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한 거죠. 양극화도 이런 양극화가 없어요.”

소매상들의 상품을 들여놓는 도매가가 할인점의 판매가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무슨 경쟁이 되겠냐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는 대형할인점들의 도를 넘어선 저가 공세가 비단 소매업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1+1’까지는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1000원짜리 제품에 3000원짜리 경품을 묶어 파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커도 너무 큰 것 아닙니까. 결국에는 생산자들까지 다 망하게 하고 말 겁니다. 그래도 공정거래법 위반이 아니라니 기가 찰 노릇이죠.”

그는 조합 명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형할인점들의 ‘웃지 못할’ 거래 행위들을 수도 없이 신고해보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무혐의’였다.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득이 되는 것이므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생산자들이 경쟁력을 잃게 되면 가격은 다시 올라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 불 보듯 뻔합니다.”

“대형할인점 공세에 당할 수만은 없다”

더 이상 기대할 곳이 없다는 것이 그와 조합의 판단이었다.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맞서 싸우는 수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더는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우리도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조합 역사만 40년입니다. 구멍가게까지 다 합하면 전국 소매유통 물량의 80%를 차지할 정도죠. 대형할인점, 편의점 다 합해도 우리는 못 따라옵니다. 우리만큼 소비자와 가까운 곳도 없고요. 게다가 ‘농심’이니 ‘진로’니 모두 따지고 보면 우리가 키운 브랜드들 아닙니까.”

성난 동네 슈퍼들의 반격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최 이사장 역시 동네 슈퍼마켓으로 시작한 소상인 출신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80년 150평 규모의 당시로는 꽤 큰 슈퍼마켓을 운영했다. 그런데 초창기 할인마트인 ‘코스코’가 인근에 들어서면서 일찍부터 대형할인점의 파괴력을 체감했다. 3년도 못 버티고 그는 사업을 접고 한 체인본부 부장으로 입사했다. “그곳에서 유통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86년 체인본부를 인수해 지금까지 키워온 것이 새생활체인본부다.

그는 대형할인점들의 공세가 가속화하던 90년대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책을 고민했다. 일본 등지를 답사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그동안 조합의 공동구매위원장을 맡아 일해오다 지난해 2월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표현대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는 각오로 조합을 맡게 된 것이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햇빛촌’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닙니까. 뭉치면 산다는 걸 알면서도 그동안 잘 안 됐습니다. 이제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무엇보다 조합 가맹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야 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일본만 해도 소매상들 간 전산시스템을 통합하는 등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부가 적극 지원한 덕분이죠. 우리도 ‘햇빛촌’ 브랜드 정착과 소상인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대형할인점들의 화려한 등장에 가려 짙게 드리워진 그늘. 최 이사장은 그 그늘에도 볕이 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햇빛촌장(村長)’을 자처한 이유다.



주간동아 2006.03.07 525호 (p44~45)

  • 이임광/ 자유기고가 LLKHKB@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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