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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4일 홀대받는 ‘3·1절 노래’

작곡자 박태현 선생 타계 후 노래비 건립 추진 … 부지 확보 불구, 비용 주체 없어 ‘흐지부지’

1년 364일 홀대받는 ‘3·1절 노래’

1년 364일 홀대받는 ‘3·1절 노래’

고 박태현 선생의 딸 계난 씨(왼쪽)와 아들 계성 씨. 박태현 선생(작은 사진 왼쪽)이 생전에 안익태 선생과 같이 찍은 사진.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노래비는 많은 편으로 전국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동요와 가곡, 국경일 노래 등은 홀대를 받고 있다. 5대 국경일에 속하는 ‘3·1절 노래’와 ‘한글날 노래’를 작곡한 박태현 선생(1907~1993). ‘조국의 노래’ ‘국민의 노래’와 더불어 3대 국민가요 중 하나인 ‘애국의 노래’를 작곡한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사람이다.

한글날 노래와 동요 200여 곡도 남겨

그러나 그가 세상을 뜬 지 10년이 지났지만 흔하디흔한 노래비조차 없다. 1907년 평양에서 태어나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이웃에 살던 선배 작곡자 안익태 선생을 통해 첼로를 알게 된 이후 음악에 심취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음악학교에서 첼로를 전공했다.

1993년 여든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뜬 박 선생은 죽을 때까지 ‘서른두 살’을 고집했다. 정부 수립 직후 정부가 그에게 국경일의 노래를 위촉해 ‘3·1절 노래’를 작곡한 것이 서른두 살 때였기 때문이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시적이라기보다는 다소 산문적인 정인보 선생의 가사에 곡을 붙인 그는 해방된 조국에서 해마다 3월1일이면 자신의 3·1절 노래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으며 그 감격을 ‘서른둘’이라는 숫자에 못박아뒀다고 한다.

한민족의 독립시위 운동을 기리기 위한 3·1절 노래에는 노래를 만든 사람 못지않게 국민과 역사 모두에게도 노래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1937년 우리나라 최초로 ‘동요작품집’을 발표한 박 선생은 주옥같은 동요 200여 곡을 남겼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펄럭입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태극기’는 6·25 전쟁 중에 만든 그의 대표작이다.

‘넓고 넓은 밤하늘에 누가 누가 잠자나/ 하늘나라 아기별이 깜빡깜빡 잠자지’.

목일신의 시에 곡을 붙인 ‘누가 누가 잠자나’도 그의 작품 중 하나다. ‘동무들아 오너라 봄맞이 가자’로 시작하는 동요 ‘봄맞이 가자’는 그가 ‘산바람 강바람’ 못지않게 아끼고 사랑한 곡이다.

1953년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66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만으로 구성된 ‘여성트리닝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전국 순회 연주를 했으며, 88년 ‘서울아카데미 앙상블’로 오케스트라의 명칭을 바꾼 다음 상임지휘자로 나서 60여 회의 정기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노래비는 대중가요나 동요 등의 가사에 나오는 지역 또는 유래지,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의 고향 등에 세워진다. 노래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관광객 유치 등의 목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노래비 건립에 적극 나선 경우에는 장소 제공 및 노래비 제막에 필요한 일체의 경비를 부담한다. 2001년 윤이상 노래비와 윤이상 거리를 만든 경남 통영시가 대표적인 예다. 통영시는 2008년까지 윤이상의 생가를 복원하는 등 윤이상 테마공원 조성을 위해 시비와 국고지원금 80여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1년 364일 홀대받는 ‘3·1절 노래’

박태현 선생이 직접 만든 작곡집 원본.

또 다른 경우는 부지는 정부(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고 제작비는 후학이나 기념사업회 등이 기금을 모아 건립한다. 정부가 땅을 제공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노래비가 국유지에 세워지기 때문. 그러나 업적에 비해 조용히 살다 간 음악인들은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색동회 “유족들이 알아서 하라”

1989년 10월 한국방송공사(KBS)가 제정한 동요대상을 수상하고, 같은 달 ‘문화의 날’ 기념식에서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은 박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지난 97년. 그의 유가족은 노래비조차 없이 죽어서도 쓸쓸한 ‘음악인 박태현’을 기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박 선생의 유족은 사단법인 ‘색동회’를 찾았다. 이후 색동회를 통해 박 선생의 노래비 건립이 추진됐다. 서울시는 박 선생의 노래비를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중앙분수대 광장 녹지대 옆(4.36㎡)에 세울 수 있도록 허락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색동회는 “어린이대공원에 장소가 확보됐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면서 노래비 제작을 유족에게 떠맡겼다. 당시 예상된 노래비 제작비는 2000여만 원. 박 선생의 장남인 계성(70) 씨는 “노래비를 세우는 데 필요한 제작비는 물론이고, 비문을 아들인 나에게 쓰라고 했다”면서 “자식이 아버지의 노래비에 차마 비문을 쓸 수 없어 노래비 제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노래비는 어디에 세워졌느냐 못지않게 누가 세웠느냐도 중요합니다. 유족이 사비를 들여 노래비를 세우고, 그것도 부족해 비문까지 쓰고…. 그런 노래비는 있으나 마나 한 노래비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부터 경기도 성남에 둥지를 틀고 그곳에서 13년을 살다 숨을 거둔 박태현 선생. 자신의 고향은 아니지만 제2의 고향이라 여기고 성남에 대한 사랑을 담은 노래 ‘나, 성남에 살리라’를 남긴 그를 기리기 위해 성남시는 99년부터 해마다 ‘박태현 음악제’를 열고 있다.

성남시 분당에 위치한 남서울공원 박태현 선생의 묘소 앞. 이곳에는 해마다 3월1일이면 3·1절 노래가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 유족과 예술가, 성남시 관계자 등이 모여 그를 기리고 3·1절 노래를 ‘헌가’한다. 정부는 2001년 박 선생에게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장’을 추서했다.

3·1절 노래 못지않게 ‘홀대’받기는 ‘애국가’도 마찬가지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을 기리는 노래비조차 없는 게 우리나라 실정이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얼굴인 애국가와 광복절, 제헌절, 한글날 등 국가기념일을 기리는 노래는 한 개인의 작품이기에 앞서 국민과 국가의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문 닫지’ 않는 한 영원히 국민과 함께하는 노래들. 이들의 노래비 건립은 누구보다도 정부가 발 벗고 나서는 것이 옳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6.03.07 525호 (p36~37)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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