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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막강 포털 ‘범죄 해방구’

‘대포’ 횡행 멀쩡한 사람 잡네

메일·휴대전화·통장 수시로 명의 도용 … 마약·주민증 거래 등 인터넷 범죄에 악용

‘대포’ 횡행 멀쩡한 사람 잡네

서울에서 500만원짜리 위조수표가 잇따라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 조사 결과, 위조수표의 배서자는 J 씨. 그러나 J 씨는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 경찰은 위조수표를 현금으로 바꾼 범인이 J 씨 명의로 주민등록증을 위조, ‘대포통장’을 만든 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에피소드 2]

1월 발생한 천안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들은 취업을 미끼로 여성들을 유인해 살해했다. 이들은 ‘대포폰’을 이용해 구직 여성들과 접촉했다. 용의자들은 다른 사람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한 뒤 택배를 통해 휴대전화를 전달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대포폰 사용자를 추적 중이다.

‘대포’ 횡행 멀쩡한 사람 잡네

사이버 공간에서 이른바 ‘대포폰’과 ‘대포통장’이 대량으로 거래되고 있다.

‘대포(大砲)’, 국어사전은 이 단어를 ‘허풍이나 거짓말을 빗대어 이르는 말’ ‘화약의 힘으로 탄환을 발사하는 무기’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한 가지 뜻을 더해야 할 듯싶다. ‘타인 명의를 내세워 실제 행위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 누군가가 ‘대포신분증’ ‘대포통장’으로 나인 것처럼 행세하며 활보한다? 무서운 일이다.

N 씨는 지난해 여름 군대 간 친구한테서 “입대할 때 집에 두고 온 휴대전화 요금이 500만원 넘게 청구됐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통화내역을 뽑아서 살펴보았더니 대부분 중국으로 건 국제전화였다. 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인 통신위원회와 이동통신 업체엔 이 사례와 비슷한 명의 도용 신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명의와 사용자가 다른 ‘대포폰’과 ‘대포통장’은 어떻게 사용될까?



“민증(주민등록증) 사겠다고 메일 보낸 분이죠? 메일에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시면 어떻게 해요. 대포폰이 아니면 저한테 보낸 메일을 당장 지우세요. 경찰한테 추적당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에 ‘캠프’를 차려놓고 주민등록증을 위조, 판매하는 A 씨는 취재진이 “주민등록증을 사고 싶다”며 보낸 메일을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 A 씨는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먼저 보내준 뒤 돈을 입금받는 이른바 ‘후불 민증 업자’. A 씨는 “지금 사장님(취재진)과 통화하는 휴대전화도 ‘중국 대포폰’”이라며 “메일에 ‘실명’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대포통장도 인터넷 범죄조직의 필수품이다. ‘김 실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공문서(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및 사문서(토익성적표, 재직증명서 등) 위조 브로커는 1000여개의 대포통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취재 목적으로 공문서 위조를 부탁한 취재진에게 ‘김 실장’은 C 씨 명의의 통장 계좌번호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보내왔다.

“경찰 추적 같은 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 이틀 장사한 게 아니에요. 저희 통장은 모두 중국인이나 조선족(재중동포) 명의예요. 실명으로 송금하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위조된 공문서 및 사문서 거래, 마약류 거래 등 인터넷 범죄는 이렇듯 ‘대포’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들 인터넷 범죄가 이뤄지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선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로 ‘대포 아이디’를 받는다. 그러고는 ‘대포 블로그’를 만들거나 포털의 카페·지식검색·블로그 등에 광고를 올려놓는다. 블로그나 카페, 지식검색에 적힌 연락처는 물론 ‘대포 메일’과 대포폰 번호. 주문을 받은 뒤엔 대포통장으로 송금을 요구한다. 인터넷 범죄조직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수시로 바꾸면서 단속망을 피한다고 한다.

한국인 개인정보 중국·대만 포털에 대규모 노출

대포 아이디와 대포 메일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포 아이디를 받는 데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있으면 된다. 인터넷을 5분만 검색하면 특정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구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인터넷게임 리니지 명의 도용 사건’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인의 개인정보는 중국·대만 포털에 대규모로 노출돼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는 A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일부 기업의 인적 정보를 훑어볼 수도 있다. 또 중국 일부 사이트엔 한국인의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만들어지는 이른바 ‘주민등록번호 생성기’ 프로그램이 올라와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사이버 공간에서 1000~2000개씩 수집돼 거래되기도 한다. 매매된 주민등록번호는 대포폰 개설과 미성년자들의 성인 사이트 가입에 쓰인다.

대포폰 및 대포통장을 사는 것도 ‘식은 죽 먹기’다. N사의 지식검색 및 블로그, D사의 카페에선 대포폰 판매 업자의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다음은 한 업체의 광고.

대포통장+현금카드: 13만원 텔레뱅킹통장+현금카드+보안카드: 15만원 선불폰: 13만~18만원(기종에 따라 가격 변동) 막폰: 25만원부터(기종에 따라 가격 변동) 유선대포: 유선만 착신은 20만원* 24시간 친절 상담 ☎010-○○○-○○○○

한 대포폰 판매 업자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실제 거래가는 업자들이 인터넷에 광고한 가격보다 비쌌다. 중고 휴대전화는 30만~70만원, 최신 모델은 70만~130만원에 매매가가 형성돼 있었다.

“대금을 송금해주시면 1시간 내로 휴대전화를 보내드립니다. 후불도 가능한데, 돈을 더 내셔야 합니다. 그리고 전화사용 요금은 연체하시지 마세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같은 수법으로 거래되는 대포통장은 ‘제품 구성’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현금카드가 첨부된 대포통장은 15만~50만원. 주민등록증 사본이 첨부되면 판매가가 올라간다. 폰뱅킹용 코드표와 인터넷뱅킹용 보안카드를 갖춘 것은 가격이 더 비싸다. 이들 조직은 노숙자, 가출 청소년 등에게 10만~20만원을 주고 통장을 구입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범죄 수사과정에서 명의 도용된 휴대전화나 은행 통장, 이른바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이 발견되면 수사는 난관에 부닥치기 일쑤입니다.”(경찰청 관계자)

경찰도 인터넷을 이용한 신종 범죄에 혀를 내두른다. 인터넷을 통해 불법으로 발기부전 치료제를 판매하는 업자 B 씨의 말이다.

“경찰 단속요? 중국에서 약 파는 사람 중에 그런 거 걱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대포를 사용하고 국제우편으로 물건을 보내는데 어떻게 추적해요.”

정보기술을 등에 업고 진화하는 신종 범죄의 중심엔 이렇듯 명의 도용, 즉 ‘대포’가 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다. 한국인의 주민등록번호는 지금도 인터넷을 떠돌며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6.03.07 525호 (p24~25)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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