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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검소·효성 … 신부님 우리 신부님

정진석 추기경, 바지 한 벌 18년 입고 생활비 모아 장학금 쾌척 … 북한 선교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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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2일 오후 8시(현지시각 낮 12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한국의 여성 수도자 모임 ‘삼소회’ 회원들을 포함해 전 세계의 순례객들을 접견하면서 즉위 이후 처음으로 새 추기경 15명의 명단을 전격 발표했다. 이 가운데 여덟 번째로 “한국의 니콜라오 정진석”이란 이름이 호명되자 삼소회 회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정진석 추기경의 서임은 높아진 한국 천주교회의 위상을 말해준다.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는 정 추기경의 서임에는 북한뿐 아니라 아시아 선교의 거점 역할을 기대하는 교황청의 배려도 작용했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정 추기경은 추기경 서임 이튿날인 23일 동아일보 취재진과 만나 “평양교구장을 겸하고 있는 만큼 북한 교회 재건과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며 “이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 국가 지도자들과 꾸준히 만나 협력을 구하겠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오래전부터 북한 선교에 관심을 표명했다. 1998년 6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서 대주교로 임명받은 뒤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 착좌식을 거행한 날엔 초대 평양교구장을 지내고 6·25전쟁 당시 북한군에 의해 북으로 압송돼 순교한 패트릭 번(한국명 방일은, 메리놀외방전교회) 주교의 ‘목장(木杖)’을 들고 입장했다. 당시 정 추기경은 “교회법에 따르면 5년에 한 번씩 관할지역을 돌게 돼 있는데 황해도와 평안남·북도를 교회법에 따라 돌 수 있도록 하느님께 떼를 써볼 생각”이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자타 공인 교회법 권위자 … 39세에 주교 서품



한국 천주교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교회법의 권위자인 정 추기경은 ‘교회법 해설’ 등 23권의 저서와 13권의 번역서를 출간할 만큼 학구파다. 1961년 사제 서품을 받고 서울대교구 중림동 본당 보좌신부로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이탈리아 로마의 우르바노대학 대학원에 진학, 교회법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39세의 나이로 최연소 주교 서품을 받았다.

“남을 더 배려하고, 나를 좀 덜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께 배웠습니다.”

정 추기경은 23일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평생 기도로 자신의 성직 생활을 뒷받침했던 어머니를 기렸다. 정 추기경의 어머니 이복순 씨는 96년 87세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들을 위한 성체조배(성체 앞에서 바치는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어머니 이 씨는 정 추기경을 임신했을 때 주교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잘생긴 청년이 “어머니, 저 주교 됐어요” 하고 말하는 태몽을 꾸었다. 그런데 70년 정 추기경이 주교가 돼 서품식을 올릴 때 주교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모습이 태몽과 너무 똑같아 이 씨는 그 자리에서 혼절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이 씨가 아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사적인 부탁은 주교관을 쓰고 지팡이를 든 사진 한 장만 달라는 것이었다. 이 씨는 세상을 뜰 때까지 이 사진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매일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씨는 역관인 남편이 일본에 간 뒤 소식이 끊기자 홀로 외아들을 키웠다. 이런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정 추기경은 사제가 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6·25 때 생사가 엇갈리는 체험을 한 뒤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고, 61년 사제 서품을 받으면서 어머니의 품을 영영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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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2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주교관 앞에서 새로 서임된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왼쪽)과 김수환 추기경이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96년 어머니가 안구기증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주위의 만류에도 어머니의 두 눈을 꺼내는 수술 현장을 끝까지 지켜 마지막 효심을 다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98년 김수환 추기경의 뒤를 이어 제13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될 때도 로마 교황청이 이 같은 덕성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 배아 실험에는 반대 의사 밝혀

정 추기경은 효심뿐 아니라 너그럽고 검소한 성품과 소탈한 성격으로 사제와 신자들한테서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아왔다. 정 추기경은 성당과 길거리에서 만난 신자들에게 일일이 축복해주고, 신자들이 밤늦은 시간에 찾아가도 싫은 기색 한번 비치지 않고 응대해주는 따뜻한 부성을 지녔다.

또한 70년 청주교구장에 착좌했을 때에는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살았으며, 바지 1벌을 18년 동안 입을 정도로 근검절약을 실천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반찬을 간단하게 네 가지만 내놓으라고 매일 그러세요. 추기경님이 계신 곳이니까 큰 잔치 같은 게 있는 날이 많아요. 그런 날에도 음식 두세 가지만 해도 신부들은 잘 먹으니까 많이 하지 말고 편하게 일하라고 항상 그러세요.”

서울 명동성당에 있는 서울대교구 주교관 주방에서 일하는 김용옥 씨는 정 추기경의 후덕하고 검소한 인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또한 퇴근 무렵이면 항상 주교관 구름다리까지 직접 나와 식당 아주머니들을 배웅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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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부제 서품을 받은 후 어머니와 함께. 60년대 말 로마 유학 중 성베드로성당 광장에서. 70년 최연소로 주교 서품을 받은 후 어머니와 함께(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 추기경은 주교 서품을 받을 때 사목 표어를 ‘옴니부스 옴니아(모든 이에게 모든 것)’로 정했다. 정 추기경은 이에 대해 “사람들 각자가 자기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선익이 되는 삶을 살면 사회 전체가 복된 공동체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는 언급을 삼갔지만 생명 존중과 가정문제, 사학법 개정안 등에는 단호하고도 일관된 발언을 해왔다. 특히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지난해

6월 특별 강론을 통해 “황우석 교수의 인간 배아에 대한 실험이나 조작, 파괴는 인간 존엄성을 심각하게 짓밟는 행위로서 윤리적으로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윤리적인 문제가 없는 혈액이나 지방, 골수, 탯줄에서 얻는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100억원을 지원할 계획임을 밝혔다.

23일 자신의 집무실에 인사차 찾아온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여직원 모임인 ‘송이회’ 회원 30여명에게 건넨 덕담도 ‘생명 존중’의 교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해달라는 것이었다. 정 추기경은 “요즘 낙태 문제가 너무 심각한데 생명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서 달라. 나도 여직원들이 맘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육아 문제에 대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6.03.07 525호 (p16~17)

  • 전승훈/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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