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특집 | 국정농단 STOP, 개헌 START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

시국선언문 100건 분석…#민주공화국 #국민 #분노 #최순실 #국정 #농단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11-18 18: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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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

    10월 26일 이화여대 학생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언론보도를 통해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고, 박근혜 대통령이 첫 사과를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발표한 이 시국선언문은 이번 ‘시국’의 최초 시국선언으로 꼽힌다.

    이화여대는 올여름부터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치 문제로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각종 학내 비리를 고발하다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의 부정입학 문제를 제기해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데 큰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최순실 게이트 반대시위 ‘불꽃’을 점화했을 뿐 아니라, 1987년 이후 약 30년 만에 ‘100만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올 만큼 거대한 ‘불길’로 키우는 데도 이화여대가 크게 기여했다. 바로 이 시국선언을 통해서다. 학생들은 이 글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 정권의 국기문란 사태는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드러냈다’고 진단하면서 ‘대통령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성역 없이 조사하여 국정농단과 국기문란, 헌정질서 유린의 현 사태의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화여대의 이러한 발언 이후 전국 각지에서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빅데이터로 드러난 국민의 분노

    ‘주간동아’는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연구팀과 함께 최근 발표된 시국선언문 100건을 분석했다. 온라인을 통해 전문을 확인할 수 있는 시국선언문을 대상으로 삼고, 빅데이터 연구방법의 한 종류인 ‘텍스트 의미망 분석법’을 이용했다. 시국선언문에 자주 등장하는 핵심 단어를 뽑아낸 뒤 그들 간 관계를 살펴보는 방식이다.




    ‘그림1~4’는 이를 통해 도출한 결과다. ‘그림1’에서 전체 시국선언문의 특징을 살핀 뒤 대학교수(그림2), 시민사회단체(그림3), 대학생(그림4)이 중심이 돼 발표한 시국선언문의 개별적 특성을 분석했다. 각 그림에서 특정 단어가 적힌 원의 크기는 해당 단어의 언급 빈도수를 나타낸다. 특정 단어가 시국선언문에 자주 등장할수록 해당 단어가 적힌 원의 크기가 커진다. 단어와 단어를 잇는 선은 단어 간 연관성을 드러낸다. 각 원을 잇는 선이 굵을수록 단어 간 연관성이 높은 것이다. 이 분석에는 한국어 텍스트 분석 소프트웨어 ‘KrKwic’을 이용했다. ‘그림2~4’는 지면 관계상 전체 관계도의 일부만 실었다.



    34쪽 ‘원’ 그림은 ‘빅데이터 텍스트 마이닝’ 방법으로 전체 시국선언문을 분석한 뒤 자주 등장하는 연어(collocation)로 그린 워드 클라우드다. 시국선언문의 주된 논의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그림1’에서 알 수 있듯 전체 시국선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대통령’ ‘국민’ ‘박근혜’였다. ‘국민’ 가까이에는 ‘분노’가, ‘최순실’ 가까이에는 ‘농단’과 ‘비선실세’ 등의 단어가 강한 연결고리로 묶여 있다. 이 그림에 ‘민주공화국’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한 것은 시국선언문 다수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11월 11일 전국 변호사 3288명이 발표한 시국선언문 ‘대한민국은 왕조국가인가’는 현 상황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우리 헌법의 이념, 이 모든 성취가 진창에 뒹굴고 흙탕물로 오염되고 있는 오늘’이라고 규정했다. 11월 8일 ‘음악인선언 참가자 일동’ 명의로 발표된 시국선언문에는 ‘민주공화국의 일원이고자 하는 우리 음악인들은 ‘이제 그만’을 외치며, 폐허가 된 민주공화국의 부활을 위해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 시국선언 참가자들이 요구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을 그만두고, 법의 심판을 받아 민주공화국 부활에 기여하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을 철저히 밝히고, 관련자 및 부패 정치기업동맹을 모두 엄중 처벌하여 민주공화국 헌법 정신을 회복하라’ 등이다.

    대학교수가 중심이 돼 발표한 시국선언문만으로 범위를 좁혀 분석하면, 전체 시국선언문과 비교해 ‘책임’과 ‘농단’ 등의 단어가 그림 중앙에 더욱 가까이 위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2). 또 ‘정부’의 ‘무능’에 대한 지적과 ‘하야’ ‘자격’ ‘상실’ 등의 단어도 부각됐다. 이는 대학교수들이 이번 사태 해결 방식으로 요구하는 사항이 좀 더 강력하고 직접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대학교수들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이끌어낸 1960년 4·19 혁명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관철한 87년 6·10 항쟁 등의 과정에서 시국선언을 통해 위기를 수습하는 데 적잖은 구실을 했다. 이번에도 10월 27일 성균관대 교수들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대학교수가 중심이 된 선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들이 개교 이래 최초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서울대에서 사상 최대(728명) 규모의 교수가 참여한 시국선언이 이뤄지는 등 열기가 높은 상태다. KAST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에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첨단과학기술 개발의 전 세계적인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만 대통령이 야기한 사회적 혼란과 정쟁에 발이 묶여 뒷걸음질치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상황 진단이 담겨 있다.

    전국 각지 시민사회단체도 적극적으로 시국선언에 나서고 있다. 예술인, 종교인, 산악인, 교육인 등 각계각층 시민모임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에는 상대적으로 ‘권력’과 ‘책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정의’ ‘가치’ 등의 키워드도 적잖은 빈도로 언급되고 있다. 또 각자 자신이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느낀 감정과 요구 등을 진솔하게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1월 10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발표한 시국선언문에는 ‘진료와 처방의 근거가 환자의 임상적 상태와 의학적 원칙이 아닌 누군가의 허락이 되는 나라를, 의료가 모두를 위한 선의가 아닌 누군가의 편의가 되는 나라를, 그리고 공권력이 국민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나라를 우리는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대목이 있다. 11월 3일 사단법인 우리만화연대와 만화인 명의로 발표된 시국선언에서 참여자들은 ‘창조경제의 핵심이자 주역으로 만화와 웹툰을 꼽으며 한껏 치켜세웠던 정권이 실상은 최순실, 차은택의 손아귀에 놀아났다는 점은 만화를 넘어 문화예술인에 대한 치욕이자 모욕이다’라고 자탄하기도 했다.



    ‘권력’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라

    체육인 592명은 11월 7일 시국선언문을 통해 ‘돌이켜보면 2014년 말 70%에 가까운 여론의 지지를 받던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는 어느 날 ‘분산개최는 없다’라는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중략) 박근혜 대통령이 ‘분산개최는 없다’고 대못을 박았을 때 우리 체육인들은 그 비합리적 무지에 혀를 내둘렀을 뿐 올림픽이 열리는 평창 주변에 최순실-정윤회 전 부부가 사놓은 수만 평의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스포츠는 국위선양이라는 미명 하에 정권에 복무하고 시민을 호도해왔다. 정치적 무지 상태의 일부 운동선수와 지도자들은 권력의 노리개로 때론 먹잇감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마주해야 할 한국 스포츠의 민낯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이 모멸과 자괴의 순간을 반면으로 삼아 오욕의 시대를 청산하고 스포츠의 온전한 가치를 회복하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도 자성했다.

    11월 2일에는 16대부터 19대까지 국회의장을 지낸 박관용, 김원기, 임채정, 김형오, 정의화 전 국회의장 등이 ‘국가안보와 민생안정을 바라는 종교·사회·정치계 원로 일동’ 명의로 시국선언문을 내는 등 시국선언은 특정 세대, 집단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퍼져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300건 이상 나온 것으로 알려진 시국선언에서 여전히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대학생의 시국선언이다. 대학생 주도의 시국선언문을 분석한 결과에서 눈에 띄는 건 ‘정유라’와 ‘특혜’라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자주 등장한다는 점이다(그림4). 대학생은 또래인 정씨의 부정입학 문제를 다른 집단에 비해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연구진은 “대학생 시국선언문에서 특히 ‘목소리’라는 키워드가 빈출한다. 이는 학생들의 정치 참여 의지, 시민의 의견이 정치권에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 등이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국 교대·사범대 예비교사들이 11월 3일 발표한 시국선언문에는 ‘예비교사인 우리에게 있어서도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앞으로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조차 민망한, 부끄러운 역사의 한순간이다’라는 개탄과 ‘앞으로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하여 가르치고, 지금 이 순간 기록될 역사에 대해 가르쳐야 할 사람들로서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이 외에도 대학생의 시국선언문 상당수가 현 상황에 분노를 표시하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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