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정치

빨라진 대선 시계, 100만 촛불 민심 잡아라

여권주자 지지율 하락, 야권주자 대선 레이스 돌입…아직은 찻잔 속 태풍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6-11-18 16: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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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선거(대선) 시계가 더 빨라졌다.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바닥이고 새누리당 지지율도 동반 하락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여권 대선주자의 지지율 역시 덩달아 떨어졌다. 야권에게 이런 호재가 없다. 고지가 바로 저기다. 그런데 지지율 상승세가 기대만 못하다. 반사이익을 기대했는데, 부동층만 늘어났다. 경쟁이 뜨거워지긴 했는데, 아직은 찻잔 속 태풍이다.



    다된 밥, 문재인

    11월 15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갑자기 기자회견을 했다. 박 대통령이 퇴진 선언을 할 때까지 전국적으로 퇴진운동을 벌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하야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까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오던 문 전 대표다. 왜 기조를 바꾼 것일까. 안으로는 다른 대선주자에게 쫓기고 밖으로는 세력이 붙지 않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극적인 돌파구가 필요했고, 전국 순회 퇴진운동으로 계기를 만들 수 있으리란 계산이다. 결국 대선 캠페인을 조기에 시작한다는 의미다. 이는 그만큼 준비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 전 대표는 10월 초 이미 대규모 싱크탱크 ‘정책공감 국민성장’을 발족한 상태다. 지지율 1위에 조직 구성까지 마친 문 전 대표는 조기 대선을 치른다면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대선주자다. 그런 점에서 ‘다된 밥’이다. 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 일만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의외의 악재가 불거졌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개발 비리사건이다. 이 사건의 주역인 엘시티 시행사 청안건설의 이영복 회장이 대규모 비자금을 조성해 부산지역 정관계에 전방위 로비를 했다는 소문이다. 여기에 문 전 대표와 민주당 소속 부산지역 정치인까지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11월 16일 갑자기 이 사건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해 관련 의혹에 힘이 더 실리고 있다. 심지어 15일 문 전 대표의 퇴진운동 방침 발표가 이 사건과 관련 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만약 사실이라면 문 전 대표에게는 최대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끓는 밥, 안철수

    최순실 게이트에 고무되기는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도 마찬가지다. 이번 기회에 문 전 대표와 확실히 차별화해 따라잡아야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박 대통령 하야에 앞장서고 있다. 이후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최근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물론, 민주당 손학규 전 상임고문과도 연대를 추진 중이다. 이른바 반문(反文)연대다.

    더 나아가 안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에게도 동참을 제안했다.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제안이다. 문 전 대표까지 동참한다면 안 전 대표는 모든 야권 대선주자를 이끌어가는 큰 정치인으로 부각할 수 있다. 지도자 중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누리당 비주류 대선주자까지 합류한다면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대중적 반응이 뜨겁지 않다. ‘강’철수로 변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그래서 유약한 이미지가 강한 탓이다. 다만 대통령 하야 한 길로 계속 나아간다면 이번에는 약간의 지지율 반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정치권의 지각변동까지 불러올 빅 카드까지 제시한다면 반응은 한결 뜨거워질 것이다. 11월 16일 안 전 대표는 내년 초 조기 대선을 들고 나왔다. 문 전 대표의 15일 퇴진운동 선언에 뒤질세라 내놓은 제안이다. 문제는 이를 관철할 정치력이다. 이것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지지율 급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식은 밥, 박원순

    박원순 시장도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박 시장 역시 안 전 대표처럼 처음부터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 전 대표를 공격하고 있다. 민주당이 우왕좌왕하는 것은 문 전 대표가 좌고우면하는 탓이라며 하야에 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을 거듭 요청했다. 같은 맥락에서 문 전 대표가 최근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하자 환영한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를 때리고 어르면서, 진보진영 내 세력 결집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문 전 대표보다 내가 더 낫지 않아요?’

    박 시장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서울시장으로서 할 수 있는 구실을 극대화함으로써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달성한 바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마찬가지 전략을 구사 중이다. 경찰의 물대포 사용을 막는 차원에서 수돗물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시민에게 꽤나 호소력 있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대규모 집회 당일 서울지하철의 연장 운행 역시 같은 맥락의 조치다. 때맞춰 새누리당이 서울시를 집회도시로 만들 것이냐며 반발했다. 이 또한 박 시장으로서는 고마울 것이다.

    박 시장의 지지율은 하락한 뒤 정체 상태다. 다된 밥이 식은 격이다. 다시 데워 먹기에는 썩 내키지 않는 대상이다. 식은 밥을 다시 살리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비비거나 볶거나. 결국 기름이나 양념을 더해야 한다. 앞서와 같은 잔기술 말고 국정 비전과 정치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광폭 행보를 선보이기에는 직위의 한계가 뚜렷하다. 던져야 하는데, 던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비빔밥, 손학규

    손 전 고문은 반찬 넣고 비비기까지 한 완성도 높은 비빔밥이다. 문제는 ‘잘 비벼졌느냐’ ‘감칠맛이 나느냐’다.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부동층이 된 보수세력에게 손 전 고문은 특히나 바로 먹기 수월한 존재다. 중도개혁 지향의 진보세력에게도 비슷한 의미의 존재다. 그래서 중도지형이 갑자기 넓어진 현 정국은 어쩌면 그에게 가장 유리할지도 모른다.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이재명(성남시장)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틈에서 수권 능력이 있는 안정적인 국정 관리자로서 이미지를 강화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미 그런 능력을 갖췄다 보고 새누리당이 책임총리 후보자 가운데 한 명으로 그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너무 동작이 빨랐다. 충분히 때를 기다려 정계복귀를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책임총리를 선뜻 받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갑자기 의미를 상실하고 말았다. 스스로 판을 짜는 큰 정치인이 아니라, 남이 짜놓은 바둑판의 돌로 전락한 격이기 때문이다.

    손 전 고문 정도라면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주도해나가야 한다. 보수와 진보,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동시에 밀어내면서 제3지대를 확장하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전과 공약을 앞세워 대체 불가능한 대안으로 부상해야 한다. 너무 많이 쉬어서일까. 뒷심이 달리는 듯하다. 정계복귀를 선언하면서 제7공화국론을 꺼내 들었다. 그런 역사적 과업을 구호로만 이뤄낼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비전도 비전이지만, 역시 강력한 통합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불린 쌀, 안희정

    충청권 대망론의 주인공인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 하락은 안희정 충남도지사에게도 기회 변수다. 안 지사도 최근 대권 행보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하야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뜨거운 국솥 옮기듯 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안 전 대표의 반문연대에도 살짝 발을 걸치는 형국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세력을 기반으로 하되, 제3지대 중도세력까지 한데 아우르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문 전 대표의 전략과 결을 같이하지만 오히려 더 우향우하는 모양새다. 안 지사의 강점은 문 전 대표보다 더 일관성을 보이는 점이다. 나이는 젊은데 오히려 더 안정감을 준다.

    안 지사의 노림수는 분명해 보인다. 문 전 대표가 의외의 악재로 탈락하면 본인이 옛 친노무현-친문재인계를 아예 친안계로 만들어 야권 대표주자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군불을 때기 시작했고 쌀은 충분히 분 상태다. 안치기만 하면 된다.



    아직 쌀, 이재명

    이재명 성남시장은 속 시원하기는 한데, 여전히 거칠다. 아직은 불 위에 안치기 전 쌀, 심지어 도정이 덜 된 쌀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신선해 보여서인지 최근 박 대통령의 하야를 앞장서 주장하면서 지지율이 상승세다. 상승 속도는 문 전 대표를 비롯한 야권 대선주자 누구보다도 빠르다. 계속 상승할 수 있을까. 그 역시 부동층이 된 중도세력과 보수세력의 지지를 얼마나 획득하느냐가 관건이다.

    보수세력이 적잖게 거주하는 분당구를 포함한 경기 성남시의 시장이라는 점, 그리고 최근 보수세력의 반박근혜 정서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인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진보세력 특유의 냉소적인 언행과 국정비전 부족은 단점이다. 정치권의 조직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과 정치력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빠른 시간 내 이런 단점을 보완하려면 화력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볶음밥, 김부겸

    김부겸 의원 역시 손 전 고문 정도는 아니지만 완성도가 높은 정치인이다. 볶음밥이라고나 할까. 김 의원에게도 문제는 맛이다. 맛이 있어야 유권자가 데워 먹을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텃밭 중 텃밭인 대구에 깃발을 꽂은 전설의 인물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이 그곳에서도 속락하는 것이 그에게는 최대 기회 변수다. 그런데 너무 망설인다. 나서서 평정할 최고의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인다. 매끄러운 그답다. 그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직하게 때를 만들어가는 질박함이다. 대통령의 하야를 적극 주장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거국내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도, 박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을 찾아 책임총리의 국회 추천을 요청했을 때 수용하자고 한 것도 그에게 어울리는 행보였다. 다만 모든 것을 버리고 이를 성사하려 애쓰는 모습, 진정성 어린 정치력 발휘를 주저하는 모습은 문제다. 계속 이런 행보를 이어가는 한 지지율은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할 것이다.

    대선주자가 자기 계산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정치적 격동기에는 이해득실 따위는 내려놓고 죽을 각오로 탱크 앞에 드러눕는 자세도 필요하다. 100만 촛불집회 참가자와 지지자는 바로 그런 정치인을 기다리고 있다. 야권 대선주자 가운데 그런 정치인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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