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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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얼굴 제 손으로 주무르지요”

  • 김진수 기자

    입력2006-02-20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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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 얼굴 제 손으로 주무르지요”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 남몰래 바빠지는 이들이 있다. 정치인 캐리커처 전문가 안중규(46)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는 출마 예정자들의 캐리커처와 선거홍보 만화 제작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1975년 만화가 하정균 씨와 이근철 씨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한 이래 만화 경력만 30년이 넘는 그가 캐리커처에 눈을 돌린 것은 1988년 13대 총선 때부터다. 당시 박준규·박정수·한승수·심명보·김용채·한갑수 등 모두 8명의 캐리커처를 그렸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이 훗날 장관·국회의장·여당 사무총장 등의 자리에까지 올라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캐리커처가 선거홍보물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는 뭘까. 안 씨에 따르면 대다수 유세 홍보물은 후보자의 사진과 글로 된 프로필, 공약 등으로 채워져 있어 유권자의 흥미를 쉽게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 고만고만한 구성을 갖춘 홍보물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아 홍보 기능을 제대로 해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캐리커처를 활용한 만화홍보물은 메시지 전달이 탁월한 데다 만화라는 이색적인 형식에 후보자의 인생 이야기와 정치철학, 비전을 녹여낼 수 있어 유권자의 관심을 끌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캐리커처는 대상 인물을 실물과 똑같이 그린다고 해서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을 모사(模寫)한 그림이 아니기 때문.

    “위엄이 서린 모습보다 친근하고 비전을 가진 모습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러려면 대상 인물의 얼굴 전면과 측면, 뒷면 등 여러 각도에서 찍은 사진 10여 장을 건네받거나 직접 찍어서 골격의 특징을 잡아내야 하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은 작업이에요.”



    예전 신문 만평에서나마 접할 수 있던 캐리커처는 1990년대 이후 정치인은 물론 연예인들도 선호하면서 대중과 친숙해졌다. 최근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중소기업 사장들도 자신의 명함이나 홈페이지에 담을 캐리커처를 원하는 추세다.

    안 씨가 지금까지 제작한 유명인사 캐리커처는 700여 점. 그렇다 보니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캐리커처를 그려준 후보가 당선되거나 연예인이 스타덤에 오를 때 기쁨을 느낀다는 그는 주한 이란대사관의 요청을 받아 하타미 전 이란 대통령의 캐리커처를 그려준 보답으로 이란혁명기념일에 초대받은 일을 잊지 못한다.

    14대 총선 때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처남 김복동 후보의 선거홍보 만화를 제작했는데, 그 표지에 캐리커처와 함께 실린 ‘7천만 겨레를 위해’라는 슬로건이 대권을 향한 야망을 암묵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본 당시 정권 실세 김영삼 최고위원이 이후 김복동 의원을 견제하게 됐다는 사실을 후에 전해 듣기도 했다.

    주한 미공군사령관(중장)이 전역하며 한국을 떠날 때 F16 전투기를 타고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는 캐리커처를 선물한 일도 있는데, 그가 “인생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며 20만원과 고급 양주를 선물로 보내온 일도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안 씨는 캐리커처를 의뢰한 인물이 여성인 경우 좀더 긴장된다고 밝힌다. “한번은 모 여대 총장(여성)의 캐리커처를 그리게 됐는데 완성된 작품을 본 그녀가 얼굴의 주름을 지워달라고 부탁해 어쩔 수 없이 수정해서 그려준 일도 있습니다.”

    1991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만화비엔날레 캐리커처 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한 안 씨는 ‘조선일보’에 4컷 시사만화 ‘삐삐’를 연재하기도 했으며, 현재 캐리커처연구소(www.c2u.co.kr)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캐리커처 박물관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캐리커처 및 만화 교육을 펼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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