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2

2006.02.14

커밍아웃! 광고 속의 ‘동성애’

안방극장에 동성 커플 등장해도 거부감 줄어 … 게이·레즈비언에 대한 인식 변화 ‘방증’

  •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입력2006-02-08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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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밍아웃! 광고 속의 ‘동성애’

    사디즘과 관음증을 게이 버전으로 도입한 돌체앤가바나의 광고.

    우리나라 초창기 이민 세대는 백인들과 만나기 전엔 김치를 안 먹었다는 얘기가 있다. 마늘 냄새를 풍기며 그들에게 자신이 마이너리티임을 확인시키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와 다른 것을 열등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차이의 가치를 존중하는 ‘톨레랑스’의 시대에 김치 냄새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엔 김치 맛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오히려 글로벌 마인드를 갖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정도다. 동성애 역시, 적어도 대중문화에서는 김치 냄새와 같은 인식의 틀이 형성되고 있다.

    2000년만 해도 게이 코드 활용한 광고 ‘심의 기각’

    다양성의 도시 뉴욕을 예로 들어보자. 반즈앤노블 같은 대형서점엔 아예 ‘Gay & Lesbian’ 섹션이 따로 마련돼 있다. 감각 있는 게이들이 촌닭 같은 이성애 남자들의 스타일을 180도 탈바꿈시켜주는 ‘Queer Eye for the Straight Guy’ 같은 TV 프로그램도 있다. 그리니치빌리지 근처의 허드슨 강변 공원에 남녀 커플끼리 갔다간 마치 여탕에 들어간 남자처럼 당황하기 쉽다. 휴일이면 수많은 게이 커플들이 서로 얼싸안고 일광욕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엔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동성애자의 이야기가 여러 형태로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마침내 가장 ‘보수적’인 장르라는 광고에서도 동성애를 소재로 한 광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의 ‘현대인의 생활백서’ 시리즈에는 마치 여자친구를 대하듯 상대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모습을 취하는 남성 커플이 등장한다. 남자 둘이 커플요금제에 가입한다는 내용의 이 광고는 ‘동성 커플’이라는 카피를 의도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동성애를 부각시킨 최초의 광고였다.



    스카이 광고는 한층 강도가 높다. 레슬링 하는 두 남자 선수의 모습을 마치 동성애자의 애정행각처럼 묘사한 이 광고는 아니나 다를까 심의에서 문제가 돼 손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거친 숨소리가 나오는 오디오 부분이 수정돼 겨우 재심을 통과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동성애 표현물이 광고심의의 엄격한 잣대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광고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광고심의에서 이것이 ‘게이 코드’임을 알고도 통과시켜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된 때문이다. 그것은 동성애 관련 담론들이 영화, 드라마, 신문기사, 세미나 등 여러 공론의 장을 통해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한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2000년 ‘와와닷컴’이란 인터넷쇼핑 포털 광고에서 게이 코드를 활용했을 때 심의에서 기각된 사례가 있다. 당시는 동성애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였음을 보여주는 예다. 스카이 광고가 나오기까지 한국 광고심의에서 동성애가 인정을 받는 데 5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광고인, 광고주, 광고심의위원의 마음속에 ‘동성애쯤이야…’ 하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커밍아웃! 광고 속의 ‘동성애’

    프리덤카 광고. 프리덤카는 게이들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해주는 게이 전용 콜택시. 이 광고에선 결혼식을 마치고 프리덤카에 올라탄 게이 커플이 등장한다(위). SK텔레콤의 ‘현대인의 생활백서’는 동성애를 부각시킨 최초의 광고다.

    스카이 광고의 도발은 광고계의 보수적인 현실을 뻔히 아는 광고인의 입장에서 볼 때 놀라운 사건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우선 스카이는 초창기 마케팅 기획 때부터 타깃을 젊은층으로 좁히고 그들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광고만 만들었다. 달리 말해 나이 드신 분들의 이해나 선호 여부는 안중에 없었다는 얘기다. 스카이가 시장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애니콜과 싸이언이 안정적으로 시장을 주도해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스카이가 소구 대상을 넓혀 잡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거둘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미래의 주 고객이 될 젊은층부터 공략하자는 스카이의 전략은 그래서 젊은층에게 어필하는 스토리텔링과 음악, 그리고 빈티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광고로 전개됐다. 그 결과 스카이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모든 승부를 걸었고, 위험하더라도 회자될 수 있는 뉴스거리를 늘 궁리했다. 레슬링 편도 그런 위험을 감수한 결과였다.

    소비자 반응은 다양하다. 타깃인 젊은층에선 “역시 스카이”라는 반응이 대세이며, 노년층에선 “보기 민망하다, 거북스럽다” 등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장 이기적인 장르인 광고가 자기 타깃이 아닌 쪽의 불편함에 귀 기울일 이유는 없다. 더욱이 스카이는 불특정 다수보다는 마니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에 사활을 건 상황이 아니었던가.

    해외에서 동성애 광고는 실질적으로 동성애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는 광고와 동성애를 표현 코드로만 활용한 광고의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대부분 대중매체 광고보다는 인터넷이나 DM 형식의 개인별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동성애가 일반화되었다곤 하지만 아직도 가슴 위의 주홍글씨가 부담스러운 탓인지 동성애자들은 은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하고 있고, 그것을 마케팅 업체가 간파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동성애자들에게 실질적 정보 주는 광고 일반화

    후자의 경우는 파격을 선보이는 패션 광고에서 자주 접하게 된다. 항상 트렌드를 주도해나가야 하는 처지에 있는 패션 품목의 경우 광고를 통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패션 광고가 에로티시즘이나 그로테스크, 키치 등의 이미지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FRIENDS’라는 이름을 가진 모스키노 남성용 향수광고엔 미소년 둘이 등장한다. 그 둘은 누가 봐도 친구라기보다는 애인 사이다. 마초 같은 근육질 남자 대신 가녀린 미소년을 등장시켜 풋풋한 동성애의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다. 남자를 벗겨놓고 육체를 음미하는 두 남자의 모습이 담긴 돌체앤가바나 광고는 훨씬 파격적이다. 이 광고는 나체의 여성을 묶어놓고 육체를 농락하는 전형적인 사디즘 코드의 게이 버전이다. 이처럼 패션 제품의 광고에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는 빈도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으면 패션 트렌드의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동성애는 더 이상 벽장 속에 갇혀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광고심의와 광고주의 승인까지 통과해야 하는 보수적인 광고판에서 동성애 코드가 속속 커밍아웃하고 있다. 그것은 동성애가 더 이상 숨기거나 감춰야 할 비밀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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