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8

2006.01.10

내 가슴속의 엑스 파일부터 지우자

  • 차병직 변호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입력2006-01-09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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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가슴속의 엑스 파일부터 지우자
    설렘은 잠시다. 새해 새날을 맞을 때는 기대에 부풀지만, 막상 하루 이틀만 지나도 어느새 범상의 나날 속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신년 벽두의 다짐을 아무리 근사하게 해봐도, 이내 알게 된다. 특별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런 걸 보면 한 해 첫날의 힘은 대단하다. 해가 뜨는 그 순간에는 마치 나머지 364일을 한꺼번에 끌고 갈 힘을 가진 듯하다. 그 힘은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작용일 뿐이다.

    그래도 정월 초순의 다른 점이 없을 리 없다. 무엇보다 차분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만 잠시 동의해준다면, 바깥 기온에 관계없이 훈훈한 느낌을 받지 않는가.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은 마음으로 기원하기 때문이다. 선을 위하여, 또는 정의를 생각하며, 혹은 행복을 그리며, 무엇보다 인간다움을 바라며 같은 방향으로 내심의 에너지를 쏟아내는 까닭이다. 새해를 맞는 이런 점잖고 품위 있는 태도는 이미 우리가 오래된 관습으로 지녀오고 있다.

    그런데 정월 초하루의 그 크고 아름다운 에너지는 왜 며칠을 버티지 못하는가. 새해 첫날을 맞고 그 기분이 채 가시지 않을 지금쯤, 우리는 한번 더 새 기분을 가져볼 필요가 있겠다. 여느 때와 같은 격정과 회한의 한 해가 아닌, 뜻밖의 횡재나 개벽의 변화는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따스한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1년을 지녀보기 위하여.

    우리가 첫날 다졌던 덕목이 무색하게 금세 소란과 악다구니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민주화 시대의 가장 큰 선물이라 여기고 있는 권리 의식을 점검해보자. 한때 우리의 귀를 울리던 구호는 자신의 권리에 눈을 뜨란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명제를 조금 고쳐볼 때가 된 것 같다. 적어도 이렇게는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지녀야 할 인권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함께 계산하는 삶의 태도라고. 자기만의 것, 한 걸음 나아가면 자기 가족의 것만 따지는 생활이야말로 고단하다. 그러니 그 울타리만 벗어나면 바로 전쟁터가 되고 만다. 자기 몫을 최대한 챙기기 위해 마련된 듯한 싸움터의 규칙도 야릇하다. 한 방향의 생각이면 아군이고,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적이다. 그것이 근년의 한반도였고, 한국의 정치였고, 너와 나의 문화요 삶이었다.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몸뚱이는 전장에 던져두는 일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허위의 탈’ 벗고 2006년 시작해야



    따지고 보면, 지나친 것은 모두 전쟁이다. 재물뿐만 아니라, 권리도 명예도 사랑도 지나치게 집착하면 그때부터 전쟁이다. 월드컵 축구도, 배아 줄기세포도, 노벨상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출발의 계절에 어울리게 평화를 올해의 조건으로 삼자.

    진정한 평화주의자는 자신의 평정부터 찾아야 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다. 마치 연극배우가 무대 위와 아래의 삶을 번갈아 살듯이. 대부분 이중의 사상을 지니고 있다. 밝고 어두운 둘 중 어느 것이 자신의 현실인지 선언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직도 정월이라, 이때 제안할 수 있는 덕담은 이것이다. 함께 가슴속의 엑스 파일부터 드러내자고. 아니면 지워버리자고. 허위, 그것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수단처럼 여기고 있는 거짓말을 이웃에게 공개해 용서받든지, 스스로 삭제함으로써 탈출하든지.

    섣달에 끝냈어야 할 일을 정월까지 붙들고 있는 사정은 딱하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새해 기분을 좀 오래 가져가 봐야 한다. 반성하고, 겸허한 태도를 연습하고, 다른 이익을 위해 내 권리를 유보하는 인내를 익혀야 한다. 레오나르도가 말하지 않았는가. “외투가 추위로부터 우리를 막아주듯이, 인내는 모욕으로부터 우리를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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