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8

2006.01.10

“엄마, 나 이젠 학교에 가도 돼?”

박지훈 군 희귀병과 1년간 싸움 잘 이겨내 … 정상에 가까운 생활, 가족과 행복한 시간

  • 이주훈/ CBS-TV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 PD

    입력2006-01-09 0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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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12월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 “엄마, 나 이만큼 아팠으니 죽어도 돼? 나 그만 하늘나라로 가게 해줘….” 희귀병과 싸우다 지쳐 죽게 허락해달라고 말하던 박지훈(10) 군의 고통스런 얼굴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지훈이가, 사연을 듣고 성금을 보내온 이름 모를 수많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놀랄 만큼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남은 성금으로 또 다른 어린 친구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나섰다. 지훈이의 사연을 처음 언론에 알린 CBS-TV ‘수호천사’의 이주훈 PD가 꺼져가던 생명을 살린 지난 1년의 기록과 뒷이야기를 기록했다. (편집자 주)
    “엄마, 나 이젠 학교에 가도 돼?”

    1년 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지훈이의 모습(위)과 행복을 되찾은 지훈이네 가족.

    제작진이 한 제보자로부터 처음 지훈이의 사연을 접했을 때만 해도 다른 희귀병 아이들처럼 병마의 고통 속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아이 중 한 명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전조사와 구성회의를 마친 뒤 지훈이를 취재하기 위해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을 때, 지훈이를 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비슷하게 표현하자면 ‘9회말 동점 상황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맞은 패전투수의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저 침묵만 흘렀다. 끔찍하게 일그러진 아이의 얼굴은 화상을 당한 것처럼 빨갛게 익어 진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뭉그러져 버린 피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넘어 더 이상 눈길을 두기 어렵게 할 정도였다.

    중증 질환 스티븐스존슨증후군

    지훈이가 앓고 있는 병은 스티븐스존슨증후군(stevens johnson syndrome)으로 ‘다형홍반’의 일종이라고 한다. 이는 피부가 벗겨지는 정도에 따라 상태를 구분하는데, 보통 스티븐스존슨증후군은 피부의 25% 정도에 출혈성 발진이 일어나며 사망률도 비교적 낮은 편이다. 하지만 지훈이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피부의 95% 이상에서 출혈성 발진이 일어났고 안구와 식도, 입 안까지 벗겨지는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의학용어로 이 병의 최악의 단계인 ‘10(텐)’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상태일 경우 여러 합병증과 호흡곤란으로 인해 사망률이 70%를 넘어서는 희귀질환 중 중증 질환에 해당한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지훈이는 스티븐스존슨증후군의 단계를 넘어선 중독성표피괴사증이란 무서운 병을 앓고 있었다. 이는 국내에서는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병이라 아직까지 지훈이가 생존하고 있다는 자체가 기이한 현상이라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한 달 동안 오직 물만 먹고 겨우 생명을 연장해가는 지훈이. 상처가 가라앉은 몸을 자꾸 긁어대는 아들의 손을 침대에 묶어둘 수밖에 없는 지훈이의 부모. 가난한 살림으로 아픈 손자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죄책감에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

    취재 중 하루에도 몇 번씩 ‘한 인간이 살면서 겪어야 할 시련이라 생각하기에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 아닌가요’라는 물음을 하나님에게 던지곤 했다.

    “엄마, 나 이젠 학교에 가도 돼?”

    불과 1년 전(위)만 해도 지훈이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아래는 3개월 전 모습.

    2004년 12월3일 드디어 지훈이의 사연이 CBS-TV 프로그램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를 통해 알려지자 시청자들과 누리꾼들의 사랑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제작진이 있는 목동 CBS-TV 본부는 문의 전화로 인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사연이 소개된 지 10일 만에 무려 2억7000여만원이 모금되었다. 금전적인 것 외에 지훈이의 회복을 기원하는 격려와 사랑의 글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지훈이를 응원하는 인터넷 카페와 기도 모임 등 국민들의 성원과 사랑이 가족들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 제작진은 지훈이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병실을 찾았다.

    놀라웠다.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지훈이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전에 있던 일반 병동으로 옮긴 상태였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짓물렀던 피부는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으며, 열에 녹아들던 손톱도 다시 돋아나고 있었다. 최근에는 조금씩 밥도 먹을 정도로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지훈이의 기적 같은 회복에 대해 담당 의사는 “저희도 최선을 다했고 보호자도 열심히 했지만, 그 이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훈이는 안구 벗겨짐으로 인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고, 폐기능이 현저히 약해져 호흡곤란을 겪고 있었다. 앞으로 폐렴 등의 합병증이 오는 고비를 또 맞는다면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져야만 한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지훈이는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잘 이겨냈다. 그리하여 현재는 집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과거 짓물렀던 피부는 80% 이상 아물었고 합병증을 일으켰던 폐 또한 어느 정도 회복돼 있었다. 1년 전에는 눈 부위가 짓물러 각막이 손상되어 완전히 시력을 잃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시력을 되찾아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답지 성금 1억4000만원 위탁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 하지 못했던 컴퓨터 게임과 블록게임을 하며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훈이. 새해엔 그토록 기다렸던 학교에도 갈 수 있을 것 같다. 지훈이는 학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면서 뒤떨어진 공부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지훈이의 최근 모습이 2005년 12월 말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 성탄 특집을 통해 다시 한 번 세상에 알려지자 시청자들의 격려와 축하 메시지가 이어졌다.

    아직도 지훈이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 시청자가 많았기에 제작진의 놀라움은 매우 컸다.

    “지금 지훈이가 집에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다시는 지훈이를 집에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이 모든 것이 여러분들의 성원과 사랑 덕분이에요.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지훈이 부모님은 국민 성원에 보답할 길은 지훈이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게 투병 중인 어린이와 가족들을 돕는 것이라면서 답지한 성금 중에서 지훈이 치료비를 제외한 1억4000만원을 ‘수호천사’ 제작진에게 위탁했다. 제작진에게 큰 사명이 맡겨진 셈이다.

    제작진은 이 돈을 저소득 가정에서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의 의료비로 지원하기로 하고, 2005년 8월부터 11월까지 사연 접수를 받아 전문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12월 최종적으로 일곱 가정을 선정해 어린이 환자 1명당 2000만원의 의료비 지원금을 전달했다.

    지훈이에게 건네진 사랑이 또 다른 어린 생명들에게 빛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은 선정되지 못한 수많은 희귀난치병 환자와 가족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지훈이를 처음 만났을 때 이상으로 마음고생을 했다.

    끝으로 ‘죽을 만큼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 지훈이와 가슴속 깊이 묶여 있는 가느다란 끈을 놓지 않았던 가족들,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과 성원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우리 국민들 모두가 ‘선한 사마리아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엄마, 나 이젠 학교에 가도 돼?”
    CBS-TV ‘수호천사, 사랑의 달란트를 나눕시다’는? 빈곤, 질병, 장애, 결손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외된 이웃에게 지역 교회가 일대일 결연으로 보호자가 되어 지속적으로 보살피고, 지역사회와 전문기관의 도움을 이끌어냄으로써 일회적 온정이 아닌 소외된 이웃의 자립을 목표로 삼고 있는 신 개념의 이웃사랑 프로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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