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3

2016.11.16

경제

한우, 언제쯤 맘 편히 먹나

도매가 내려 울상인 축산 농가, 소매가 올라 답답한 소비자…덴마크 모델 ‘대형 패커’가 답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11-11 17: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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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이후 외식 소비가 줄어든 가운데, 특히 한우에 대한 저항감이 높아지고 있다. 11월 6일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리서치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쇠고기 매출은 농·축협이 30.2%, 정육점형 식당인 축산물프라자가 23.8% 하락했다. 9월 넷째 주 쇠고기 매출액은 222억 원이었으나 한 달 뒤인 10월 넷째 주에는 155억 원으로 30.2%나 감소한 것. 특히 공공기관 인근에 위치한 매장의 매출이 많이 줄었고, 메뉴 선택 시 구이보다 불고기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뉴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가 위축되자 한우 도매가도 하향세다. 10월 28일 기준 한우 도매가는 지육 kg당 1만5577원으로 법 시행 전 1만9189원에 비해 19%가량 하락했다. 도매가가 하락하자 한우 농가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거세우 두당(지육 중량 435kg 기준) 농가 평균 수취가격은 법 시행 전 835만 원에서 730만 원으로 105만 원이나 떨어졌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kg당 1만9000원대를 유지하던 도매가가 1만5000원으로 떨어진 건 2년 만에 처음이다. kg당 4000원씩 손해라고 치면 무게가 많이 나가는 소는 최대 200만 원까지 손해를 보는 상황이다. 사료비 등 소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그대로인데 도매가만 떨어지니 농민들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늘어난 수입육 소비, 가격도 덩달아 고공행진

    도매가 하락 소식이 소비자에겐 반가운 일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도매가와 달리 소매가는 그대로이거나 (부위에 따라) 오히려 상승했기 때문이다. 갈비의 경우 100g당 4999원에서 법 시행 한 달 후 5101원으로 값이 뛰었다. 소비자에게 쇠고기는 여전히 ‘비싼 먹거리’다.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리서치센터 한 관계자는 도매가 하락이 소매가에 반영되지 않는 원인으로 “선물 판매 부진을 가정용 판매에서 만회하려는 유통업체 마케팅 전략과 도·소매 간 시간 격차 및 가격연동성 부재 등”을 꼽았다.



    이렇듯 한우 가격이 강세를 보이자 소비자는 한우 소비를 줄이거나 수입 쇠고기로 옮겨가고, 이는 곧 한우 산지가격 폭락과 축산 농가 경영 위축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장바구니에 한우 대신 수입 쇠고기를 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쇠고기 수입량은 25만900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7% 늘었다. 이에 따라 쇠고기 자급률은 지난해 46.2%에서 올해 38.1%로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입 쇠고기 가격도 오르는 추세여서 주부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9월 말 호주산 갈비 수입가는 kg당 1만6000원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최대 33%나 올랐다. 최근 호주지역의 계속되는 가뭄으로 목초지가 부족해져 현지 쇠고기 공급 물량이 줄어든 데다 국내에서 한우 대체재로 수입 쇠고기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산 쇠고기 가격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그동안 한국, 일본 등과 달리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던 중국이 10월부터 수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막대한 물량의 중국 수요를 예상한 수출업체가 물량을 풀지 않으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추석 연휴 전까지만 해도 kg당 1만2000원대이던 미국산 쇠고기 값이 중국의 수입 방침이 발표된 이후 1만5000원대로 급등했다. 전국한우협회 관계자는 “한우 소비 위축으로 축산 농가뿐 아니라 소비자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질 좋은 한우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도·소매가 연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축산 농가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가격의 하향 안정세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른 대안으로 협동조합형 ‘패커’ 육성이 거론된다. 패커란 사육 단계부터 도축·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통합경영체로, 패커가 생산과 유통을 주도하면 유통 단계를 2~3단계 줄일 수 있어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지방자치단체(지자체)별로 축산업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지만 규모 면에서 ‘대형 패커’에는 미치지 못한다. 최영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는 “지역 이름을 딴 한우 브랜드가 여러 개 있지만 일반 소비자는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양돈 선진국인 덴마크의 ‘데니시크라운’처럼 우리나라가 100% 협동조합형 패커로 발돋움하려면 지자체의 적극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자체별로 운영하는 축산업협동조합을 하나의 대형 패커로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패커에 도축장은 물론 사료공장과 가공설비 등을 두루 갖출 수 있고, 품질관리와 가격경쟁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최 교수는 “시군 단위 협동조합은 규모 면에서 너무 작다. 적어도 도 단위로 뭉쳐야 시장에서 어느 정도 점유율을 보일 수 있고 그래야만 소비자가도 내려간다. 각 지역 협동조합은 그간의 대립적 관계를 하루빨리 청산하고 축산업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가 중심의 대형 패커로 가격 안정화해야

    최 교수가 축산업협동조합 중심의 대형 패커를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업 중심의 계열화를 막기 위해서다. 대기업 자본이 한우 농가를 흡수하면 더는 농민은 없고 인부(소작농)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형 패커의 롤모델로 꼽히는 덴마크 데니시크라운도 도축장 소유주가 기업이 아닌 농가다. 최 교수는 “패커가 농가를 소유할 이유는 없다. 농민이 농사를 짓는 게 당연하듯 사육은 축산 농민이 책임져야 한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반면, 협동조합 중심의 패커는 이윤보다 생산의 기반이 되는 농가를 보호하고 가치 중심의 축산업을 유지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우 농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방편으로 한우 수출이 자주 거론되는데, 이 또한  대형 패커가 안착되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한우는 지난해 말 처음으로 홍콩과 마카오에 수출됐다. 지난 1년여 동안 수출 물량은 약 26t으로 비교적 비싼 가격임에도 현지에서 인기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유통업체가 국가 브랜드에 앞서 지역 브랜드를 과도하게 홍보한 나머지 현지에서 한우 브랜드를 혼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기에 한우를 하나의 브랜드로 묶을 수 있는 대형 패커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한편 ‘한우=고급육’이라는 이미지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덤핑을 주도하는 업체가 등장해 축산 농가의 수출 의지를 꺾고 있다. 현재 한우 수출은 전국한우협회 한육우수급조절협의회 수출분과위원회에서 정한 수출 조건을 갖출 경우 한우자조금을 통해 유통비 일부를 지원받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조건 준수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없어 자칫 한우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제품이 수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첫걸음을 뗀 한우 수출이 원활하게 진행되려면 수출 절차를 엄격하게 관리해 일관성 있는 수출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의 협조가 필요하다. 법적으로 위반 사항이 없는 우수 업체를 선별해 다양한 지원 혜택을 줄 필요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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