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3

2005.12.06

토종연기 ‘매운맛’ … 할리우드 입성 ‘눈앞’

  • 입력2005-11-30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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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종연기 ‘매운맛’ …  할리우드 입성 ‘눈앞’

    ‘쉬리’로 한국 영화계에 안착하는 듯했던 김윤진은 드라마 ‘로스트’로 미국 연예계 진출에 성공했다.

    아직까지 그녀는 우리에게 여전사다. 변영주 감독의 첫 번째 극영화 ‘밀애’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지만, 김윤진은 ‘쉬리’에서의 이명현 역으로 강렬한 여전사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쉬리’의 놀라운 성공에 안주한 것은 아니다. ‘쉬리’ 이후 그녀는 ‘예스터데이’와 ‘단적비연수’를 거쳐 ‘밀애’에 도달했으며, 그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영화 ‘6월의 일기’에 출연했다. 하지만 김윤진에게 좋은 작품의 좋은 배역들이 이어진 것은 아니다. ‘예스터데이’나 ‘단적비연수’는 흥행에 실패했고, 완성도에서도 문제가 많은 영화였다. 연기력을 인정받은 ‘밀애’에서는 상대 배우 이종원과의 호흡에 문제가 있었지만 그녀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이혼 후 낙향해서 혼자 아이를 기르며 살고 있는 여자가 시골 의사와 통정하는 스토리는 새로울 것이 없다. ‘밀애’에서 김윤진은, 설레고 갈등하며 욕망에 사로잡히는 여인의 섬세한 감정을 집중력 있는 몰입으로 풀어가고 있다. 이후 김윤진은 할리우드로의 진출을 시도한다. 지금은 ABC 텔레비전의 드라마 ‘로스트’에서 신비에 싸인 한국인 주부 선(Sun) 역할을 맡고 있다. ‘로스트’는 지난해 미국 에미상 드라마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2000만명이 넘는 미국 시청자가 이 드라마를 즐기고 있으며 세계 각지에서 방영이 되고 있다.

    토종연기 ‘매운맛’ …  할리우드 입성 ‘눈앞’

    김윤진과 ‘로스트’의 프로듀서인 잭 벤더(오른쪽).

    “‘쉬리’의 출연 장면을 비롯해서 CNN과의 인터뷰 등, 제가 출연한 영상을 7분 정도로 편집해서 그걸 들고 방송국과 영화사를 찾아다녔어요.”

    새 영화서 연쇄살인범으로 열연

    김윤진의 이런 노력 끝에 오디션을 거쳐 ‘로스트’의 배역을 따냈다. 그녀의 세계적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매주 전 세계에서 날아오는 팬레터다. 그녀는 지금 매주 평균 150통의 팬레터를 받는다. 미국이나 영국, 호주 등 영어권 국가는 물론 페루나 스페인 같은 비영어권 국가에서도 팬레터가 온다. 서툴게 쓰인 영어로 된 사연들은 그녀에게 또 다른 힘을 불어넣는다. 지금 그녀는 ‘로스트’ 2부를 찍고 있다. 내년 5월까지 하와이에서 촬영되는 ‘로스트’의 파트 2에 이어 만약 ‘로스트’ 3부가 만들어지면 추가로 1년을 더 하와이에서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촬영을 연기하면서까지 그녀는 4박5일 일정으로 ‘6월의 일기’ 시사회에 참석하기 위해 10시간 15분의 비행을 거쳐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녀가 ‘6월의 일기’ 시사회에 참석한 11월21일, 대형사고가 터졌다. 시사회 시작 전 무대인사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해서 빨리 보고 싶다던 그녀였지만, 영화사의 실수로 시사 시작 이후 30분이 지나면서부터 필름의 영상과 사운드가 맞지 않아서 시사회가 중단되는 초유의 소동이 일어났다.



    토종연기 ‘매운맛’ …  할리우드 입성 ‘눈앞’

    김윤진이 출연한 영화 ‘단적비연수’와 ‘예스터데이’ 그리고 연기력을 인정받은 영화 ‘밀애’.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개최된 시사회에서 그녀는 치마를 입은 채 무대 바닥에 엎드려 기자, 평론가들 앞에서 큰절을 했다. 어제의 실수를 용서해달라는 것이다. 제작진은 조금이라도 높은 품질의 영화를 보여드리기 위해 밤샘작업을 했는데 작은 실수로 어느 부분의 필름이 오디오와 영상이 맞지 않게 되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녀의 잘못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위해 엎드려서 큰절까지 했다.

    그 전날 30분이 지날 때까지, 즉 시사회가 중단될 때까지 김윤진의 모습은 영화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6월의 일기’에서 김윤진이 등장하는 신은 많지 않다. 강력반 형사 추자영(신은경 분)과 김동욱(문정혁 분)은 한 팀이다. 추자영이 선배지만 김동욱은 만만치 않게 선배를 놀리며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한다. 형사 2인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버디 무비는 에디 머피의 ‘48시간’ 이후 정형화된 시스템이지만, 여기서는 남과 여라는 성적 차이, 그리고 노회한 경력과 저돌적인 열정의 차이가 두 인물 간의 갈등을 유발시키면서도 미묘한 성적 긴장감이 자리 잡는다.

    서윤희 역의 김윤진은,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범인을 드러내놓는다는 점에서 엄정화의 ‘오로라 공주’와 비슷하지만, 울림은 훨씬 강하다. 신은경 커플이 영화의 희극적 재미를 주는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면, 김윤진은 영화의 핵심 주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왕따당한 아들, 그리고 자살과 마찬가지인 교통사고로 그 아들을 잃고 뒤늦게 아들의 고통을 알게 되는 엄마. 일에 바쁜 나머지 아들을 돌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그때부터 복수를 시작한다. 김윤진의 연기력이 없었다면 ‘6월의 일기’는 밋밋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 4분여의 롱테이크, 왕따당하는 아들의 동영상을 보며 분노하고 슬퍼하는 모성을 표현한 신은, 왜 김윤진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해답이다. 그녀는 많지 않은 분량에도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스필버그 영화 ‘게이샤의 추억’ 출연 제의 거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게이샤의 추억’에 공리와 장쯔이가 기모노를 입고 출연한다고 해서 중국 누리꾼(네티즌)들의 비난 여론이 급등하고 있는데, 그들보다 먼저 이 작품의 출연섭외를 받은 사람이 김윤진이다. ‘쉬리’에서의 강렬한 모습, 그리고 능숙한 영어 사용 등의 장점을 보고 캐스팅 제의가 있었다.

    “기모노를 입고 할리우드에 입성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 ‘게이샤의 추억’에 출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 김윤진은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러나 세계 영화계의 미다스의 손 스필버그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한국에서의 짧은 일정을 소화하고 김윤진은 하와이로 떠났다. ‘로스트’ 시리즈는 주인공이 13명이지만 2부로 들어서면서 김윤진이 맡은 선 역할이 커졌고 대사도 늘어났다고 김윤진은 말했다. 제작진들이, 그리고 미국 매체에서 그녀의 비중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김윤진의 한국 영화 출연 계획은 당분간 없다. ‘로스트’ 촬영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이다. ‘6월의 일기’만 해도 ‘로스트’ 1부가 끝나고 2부 들어가기 전의 빈틈을 이용해서 두 달 동안 찍었다. 내년 5월까지 김윤진은 하와이에서 ‘로스트’ 2부를 찍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세계 시장으로 진출한 본격적인 한국 배우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우리가 그녀의 다음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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