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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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와 盧 완전결별?

두 전직 국정원장 구속으로 관계 급속 악화 … 여당 “개혁 원칙론일 뿐” 파문 확산 경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11-30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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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J와 盧 완전결별?
    11월 초 열린우리당의 K 의원과 또 다른 K 의원이 동교동을 방문했다. 당 지도부가 방문하기 전 사전 정지작업을 위한 선발대였다. DJ는 이들에게 속에 있는 얘기를 다 했다. 동교동을 드나드는 민주당 K 씨는 “검찰의 도청수사에 대한 불만을 있는 대로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두 인사는 동교동을 나와 당 지도부에 “DJ 의 심기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라고 보고했다고 한다. K 씨에 따르면 동교동은 DJ의 이 액션으로 ‘청와대와 여권이 도청수사 문제에 대해 동교동을 배려해줄 것’으로 판단했다. 얼마 후 우리당 정세균 의장이 동교동을 방문했고, DJ는 그에게 ‘정치 계승자’란 훈장을 주었다. 사실상 민주당과의 통합을 부추긴 발언이었다. 이후 동교동과 연이 있는 여권 한 관계자가 동교동을 찾았다.

    “두 사람(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의 혐의가 너무나 뚜렷한 것 같다. 혐의를 인정하면 불구속 처리할 수 있는 길도 있지 않겠느냐. 검찰이 일을 할 수 있게 명분을 줘야 한다.”

    우리당 인사들, 호남 민심 이탈 걱정

    DJ는 이 인사에게 다시 도청수사의 부당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렇지만 전격 구속이 결정됐다. 동교동의 분노가 거센 이유 가운데 하나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임동원 전 원장의 구속 때문이다. K 씨의 설명이다.



    “임동원 원장은 DJ에게 분신과 같은 인물이다. 햇볕정책이라는 실타래를 풀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한 주역이다. 요즘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 동교동을 찾아 햇볕정책을 놓고 말벗이 되고 있다. 은퇴한 DJ에게 친구이자 형제 같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왜….”

    노무현 대통령은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로 DJ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 한 표가 아쉬운 우리당 인사들은 이런 노 대통령의 선택을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호남의 이탈을 감수하면서까지 DJ와 거리를 둘 처지가 못된다는 것.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우리 길을 가자’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동교동과 DJ를 관리할 특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것일까.

    노 대통령이 음모적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이 있다면 이를 추진할 동력이 있어야 한다. DJ를 받쳐주는 호남 정서와 정면으로 대립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도 감안해야 한다.

    그러나 여권 주변에는 이를 치고 나갈 동력도, 호남 정서와 맞서겠다는 의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이다. 우리당은 청와대의 이런 입장을 개혁에 대한 원칙론으로 설명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직 국정원장 구속을 결정한 검찰 활동은 청와대 권한 밖이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때문에 구속과 불구속, 또는 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 시비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합당 반대론의 명분도 이 원칙론으로 설명한다.

    DJ와 盧 완전결별?

    국정원장 시절 국회 정보위에 출석한 임동원 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 씨 구속에 특히 못마땅해했다고 한다.

    합당할 경우 지역구도 극복 명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당 창당의 최대 명분은 지역구도 극복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 명분을 버리면서 민주당과 다시 손을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재선인 우리당 K 의원의 설명.

    “노 대통령은 호남 지지기반 확보라는 눈앞의 이익보다 더 큰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정계 개편을 통해 새로운 민주개혁 세력을 재집결하는 등의 시나리오다. 지금은 현실적으로 와 닿지 않지만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필연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전통적 지지층을 복원하라는 DJ의 발언을 뿌리친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 극복이라는 일관된 정치신념을 선보이며 주도권을 쥐었다. 작은 정치가 아닌 이념과 색깔을 매개로 한 새로운 정치 지형의 창출은 이런 명분을 매기로 충분히 추진할 수 있다.”

    도청 불똥 동교동으로 튈 수도

    K 의원은 노 대통령의 이런 구상이 표면화되는 시기로 2006년 2월, 취임 4주년을 꼽는다. 그때쯤이면 거국내각 구성에 대한 입장과 대통령의 탈당 같은 대규모 정치 이슈들이 잇따라 등장할 수 있다는 것. 경우에 따라 한나라당이 빅뱅의 파트너로 동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DJ의 정치 계승자와 전통적 지지층의 복원 발언은 시기를 잘못 탄 것으로도 보인다.

    동교동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에게 “정신적으로 후원하겠다”며 전략적 변화를 모색했지만 이미 속내는 공개된 뒤였다. 그렇지만 DJ는 역시 노련했다. 노기는 띠되 절대 이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대신 정치적 외형을 두텁게 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고건 전 총리를 부르고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한화갑 대표를 만나 원로로서의 소임에 충실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자연스럽게 언론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DJ를 감싸고 있는 정치 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대북송금 특검에 이어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 광범위한 도·감청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평생 쌓아온 인권운동가로서의 권위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도청 정보의 사용처와 관련 또 다른 측근들의 검찰 소환 가능성이다.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의 발언에 따라 도청 불똥은 동교동을 직접 겨냥할 수도 있게 됐다(상자기사 참조). 도청한 정보 사용처가 청와대로 지목될 경우 DJ의 도덕성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DJ는 요즘 목소리가 수시로 잠긴다. 과거를 회상하고 때로 운명론을 입에 올린다. 그런 그에게서 태산처럼 강하던 예전의 모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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