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0

2005.11.15

첫 작품 흥행 성적표 A … “대단해요 방 감독”

  • 입력2005-11-09 15: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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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작품 흥행 성적표 A … “대단해요 방 감독”

    10월 개봉 예정인 엄정화, 문성근 주연의 스릴러 ‘오로라 공주’`로 감독에 데뷔하는 배우 방은진.

    배우가 감독으로 변신하는 것은 영화작업 영역 안에서 단지 연기에서 연출로 직종이 바뀌었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작품과 만나지만, 많은 배우들은 영화라는 예술은 배우의 것이 아니라 감독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허구적으로 구성된 영화 속의 삶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감독은 영화 제작 현장에서 신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배우는 자신이 맡은 역할 안에서만 움직일 뿐이다.

    할리우드 영화사를 보면 배우 출신 감독의 계보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낯익은 이름들이 그 속에는 상당수 끼여 있다. ‘용서받지 못한 자’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뒤 지난해 ‘미스틱 리버’로 숀 펜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을 비롯해서 워렌 비티, 케빈 스페이시, 케빈 코스트너, 조디 포스터, 최근의 조지 클루니 등이 그 계보에 속한다.

    국내 개봉을 앞둔 ‘플라이트 플랜’의 조디 포스터는 ‘피고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지만, ‘천재 소년 데이트’로 감독 데뷔한 바 있다. ‘늑대와 춤을’의 케빈 코스트너도 최근 국내 개봉한 ‘오픈 레인지’로 ‘포스트 맨’의 실패를 만회하고 있다. 또한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멜 깁슨을 비롯해서 케빈 스페이시나 알 파치노도 감독을 했다. 그리고 올해 칸영화제 최대의 화제작은 조지 클루니의 감독 데뷔작 ‘굿 나이트 앤 굿 럭’이었다.

    그러나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면, 배우 출신 감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성과는 미미하다. 김진규, 최무룡, 박노식, 신성일 등 60년대 한국 영화 전성기에 활동하던 배우들이 감독으로 전업한 경우도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작품은 내놓지 못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과 뒤에 서는 것은 위치의 변화만이 아니라 역할의 변화도 뒤따라야 한다. 배우들 중에서 자신의 배역에만 머물지 않고,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큰 그림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다. 방은진이 바로 그런 배우다.

    개봉 첫 주말 35만명 동원



    감독 방은진이라는 호칭은 아직은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녀의 감독 데뷔작 ‘오로라 공주’가 흥행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개봉 첫 주말 전국 250여개 극장에서 35만명을 동원했다. 아주 좋은 성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괜찮은 흥행 성적표다. 감독의 데뷔작 흥행지수는 곧바로 다음 작품 펀드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원래는 그 며칠 전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그녀가 술병이 나서 연기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미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감독 데뷔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내가 처음 그녀가 감독으로 변신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5년 전이었다. 소설가 심상대의 ‘떨림’을 영화화하려 한다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첫 작품 흥행 성적표 A … “대단해요 방 감독”
    “이 영화 나오면 분명히 에로 영화 패러디 나올 거야, ‘꼴림’이라고.” 우리는 웃었다. 그러나 패러디 영화는 나올 수가 없었다. ‘떨림’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자작 시나리오 ‘첼로’를 영화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작품도 중간에 엎어졌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데뷔작을 만든 것이니만큼 축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데뷔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첼로’가 프리 프로덕션을 다 끝내고 촬영 들어가려고 하는데, 남자 캐스팅에 문제가 생겼다. 그 과정에서 투자사의 변동이 있었고, 결국 영화는 시작되지 못했다. 이걸 안 하면 감독은 못해, 이건 아니었다. 감독을 하는 것만이 살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감정이 있었다. 선배 감독에게 누가 되는 말인지는 몰라도, 감정을 다루는 건 쉽게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차분하게 감독 의자에 앉아서 촬영하는 신은 몇 개 안 된다. 사람들에게 ‘오로라 공주’는 상업영화라고 얘기한다. 상업영화에 편승하는 쪽을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내가 나 자신을 재발견하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나는 자신이 섬세하고 감성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프로듀서는 내가 현장에서 남성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화는 중성적이다.”

    첫 작품 흥행 성적표 A … “대단해요 방 감독”

    ‘301·302’

    ‘오로라 공주’는 올해 3월14일 크랭크인 해서 7월31일 크랭크업을 했다. 넉 달 넘게 찍은 셈이다. 중간에 장마가 있어서 기간이 길어졌다. 모두 67회차 촬영으로 완성했다. 감독 방은진은 카메라 뒤에서 고민했다.

    “카메라 뒤에 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연쇄살인 사건 수사관 역을 맡은 문성근 씨는 내가 카메라 옆에 있으면서도 배우랑 같이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연출한다고 해서 배우였을 때와 입장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대신 상대 배우의 호흡이 아니라, 한 사람이건 네 사람이건 그들이 서로 어떻게 호흡하는가를 주목했다.”

    ‘오로라 공주’는 딸이 유괴범에게 희생되자 복수에 나서는 어머니의 이야기다. 영화 초반부터 연쇄살인의 범인이 여주인공 정순정(엄정화 분)이라는 게 노출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스릴러나 미스터리가 아니다. 왜 그녀가 다섯 건의 연쇄살인을 하게 되었는가, 그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결국 정순정은 미친 척까지 하면서 자기가 목표로 하는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다. 그것은 복수를 이루려는 무서운 집념이다.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에는 난감했다. 그래서 한 가지만 가지고 가자. 세상을 향한 것이든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든, 여주인공의 분노라는 감정 하나는 꼭 살리자, 이렇게 생각했다. 그 분노는 결국 사랑에서 변화된 감정이다. 이 영화는 장르 영화라기보다는 드라마다. 여주인공 정순정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담당 수사관이 남편이다, 원작 시나리오의 이런 기둥은 남겨두고 많이 각색했다. 원작에서 형사는 더 노회하고, 여주인공의 의도는 그 남편 손에 잡히는 거였다. 인물들이 통속적이고 전형적이어서 조금 변화시켰다. 자기의 과오나 실수를 똑바로 보고 싶지 않은 그런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국민대 의상학과를 나온 방은진은 대학로 연극무대에서 연기수업을 받았다. 영화 데뷔작은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1994년). 이후 박철수 감독의 ‘301·302’를 시작으로 ‘학생부군신위’ ‘산부인과’ 등에 출연해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배우 방은진은 극단적인 캐릭터를 깊이 있게 묘사했다.

    배우 시절엔 개성 있는 연기

    그녀는 90년대 후반부터 감독 방은진으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단편 ‘장롱’에서 조감독을 했고,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다니면서 ‘파출부, 아니다’라는 단편을 만들었다. 그녀의 첫 장편 ‘오로라 공주’는 극전 반전은 있지만 그것이 대단한 매력으로 관객을 휘어잡는 작품은 아니다. 내러티브는 낯이 익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영리한 시나리오를 쓰려는 목적이 없었다. 좀더 스타일리시하게 멋을 부리며 찍을 수도 있었지만 정직하게 가려고 했다. 이게 악덕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최종 편집을 마치고 패닉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개봉 첫 주가 지난 지금, 그녀는 한결 여유를 되찾고 있다. 관객의 반응이야말로 감독의 가장 큰 재산이다. 그녀는 감독 방은진으로서의 두 번째 작품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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