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0

2005.11.15

야생동물들 ‘비운의 로드킬’

23개 고속도로에서만 하루 평균 2.4마리 희생 … 이동통로 절대 부족, 그나마 유명무실

  • 정용미·녹색연합 백두대간 보전팀장/ 사진·이용욱

    입력2005-11-09 14: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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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동물들 ‘비운의 로드킬’

    도로를 건너려다 차에 치여 죽은 청설모, 너구리, 멧토끼(왼쪽부터). 작은 야생동물들에게 넓은 도로는 잔인한‘환경’이다.

    도시가 팽창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도로를 건설한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뻗은 도로는 인간의 이동과 물류 유통에 큰 도움을 주지만, 커다란 딜레마도 안기고 있다. 야생동물이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road-kill)’이 바로 그것. 요즘 1시간 정도 차를 몰고 국도나 지방도로를 달리다 보면 곳곳에서 차에 희생된 야생동물들의 시체를 보게 된다.

    한국도로공사의 집계에 따르면 1998년 로드킬 조사가 처음 시행된 이후 올 6월까지 전국 23개 고속도로(총연장 2778km)에서 6388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됐다. 이는 월 평균 71마리, 하루 평균 2.4마리의 야생동물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실제 로드킬 규모는 한국도로공사의 통계보다 훨씬 크다.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는 ‘2004년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지리산권 도로 123km를 조사한 결과 1년 동안 3000마리의 동물이 로드킬 됐다’고 밝혔다. 종류도 너구리, 고라니, 삵, 하늘다람쥐, 무산쇠족제비 등의 천연기념물부터 양서류, 파충류, 조류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도로 곳곳에 동물 시체 … 관계기관 엉성한 조사

    대표적인 로드킬 구간은 88고속도로 남원-함양 사이의 42km 구간이다. 7월 한 달 동안 100마리가 넘는 야생동물이 죽었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8개월 동안 88고속도로에서 일어난 로드킬 건수는 무려 783건. 하지만 한국도로공사가 1998년 6월 말부터 올 6월 말까지 83개월간 조사한 88고속도로의 로드킬은 589곳에 불과했다.



    왜 도로공사의 조사는 서울대 조사보다 결과가 빈약할까. 한국도로공사 환경관리팀은 “고객지원단 순찰원들이 도로나 시설물 상황을 점검하는 업무를 하며 야생동물 로드킬을 조사하고 있다”며 “야생동물 전문가도 아니고 너구리, 고라니 등 중대형 종이 아니면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차에 치이면서 시체가 심각하게 훼손돼 파악이 안 되는 것도 있어 도공의 로드킬 규모가 작다”고 밝혔다.

    9월20일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7월 전국 국도 및 지방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은 631마리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조사도 405군데에서 발견된 동물 시체만을 집계한 것일 뿐이다. 9월30일 전주지방환경청이 2003년 3월부터 2년간 도내 도로에서 조사한 로드킬 실태도 429마리에 불과했다. 환경계획연구소가 8개월 동안 88고속도로에서 조사한 783건의 로드킬 규모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이는 관계기관의 로드킬 조사가 아직은 엉성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전국 도로에서 발생하는 연간 로드킬은 수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동물들 ‘비운의 로드킬’

    야생동물이 도로를 건널 수 있게 만든 이동통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선의’라면 최적의 위치에 설치되고 관리되어야 할 것이다.

    로드킬 방지를 위한 동물 이동통로 건설이 추진되고 있으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환경부는 1998년 지리산 시암재에 이동통로를 시범설치한 뒤 올해 6월 말까지 전국 주요 도로에 92개의 이동통로를 설치했다. 그러나 위치선정 문제와 도로라고 하는 환경이 주는 이질감, 부실한 사후관리 등으로 인해 야생동물 이동에는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는 “로드킬 방지를 위해서는 로드킬이 발생하는 위치를 알고 이동통로를 설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어떤 동물이 어디서 많이 죽는지를 알아야 로드킬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외국의 경우 이동통로를 만들려면 최소 1~2년간 로드킬 조사를 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92개 이동통로는 로드킬 조사 없이 만들어졌다. 전북지방경찰청이 2003년 3월부터 2년간 도내 주요 도로 로드킬 실태를 조사한 뒤 “이처럼 많은 수의 야생동물이 희생되는 것은 도내에 설치돼 있는 11개의 이동통로가 주변의 지형지물 및 산림식생과 맞지 않아 야생동물이 이용하기에 적당치 않기 때문”이라고 밝힐 정도다.

    우리나라 100개 이상 생태계 파편으로 조각나

    이동통로는 동물이 늘 다니는 길에 그들이 안심하고 맘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온 야생동물은 조심성이 많고 예민해 주변 환경이 조금만 달라져도 접근을 꺼리는 특성이 있다.

    백두대간에 설치된 이동통로를 방문해보면 주변 식생과 전혀 다른 영산홍, 누브라 참나무 등의 외래종을 심어둔 곳이 많았다. 그나마도 이 나무들은 다리 위에 심어져 있는 상태라 거의가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또 유도벽을 설치하지 않아 이동통로 앞뒤에서 야생동물이 죽은 경우도 있었다. 이동통로 위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등산객도 있었다.

    백두대간보전시민연대 김태경 사무국장은 “백두대간에는 12곳의 이동통로가 있으나 5곳이 야생동물 접근이 힘든 급경사에 설치돼 있고, 10곳은 사람들의 통로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었다”며, 또한 “백두대간 진고개에 설치된 야생동물 이동통로는 사람도 기어서 오를 수 없는 급격한 경사에 설치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통로를 건설한 뒤 야생동물 이동 모니터링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92개의 이동통로 가운데 백두대간 12곳을 빼고는 모니터링 장치를 단 곳은 아예 없었다. 백두대간 12곳에 설치된 이동통로도 1년에 한 번 모니터링할 뿐이다.

    이동통로 업무는 건교부, 행자부, 환경부로 업무가 분산되어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야생동물연합 조범준 사무국장은 “위치선정과 설계 및 시공은 건교부가, 사후관리는 환경부가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당 고속도로 연장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6위다. 하지만 오늘도 건설 경기 부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도로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도로와 송전선로 등으로 인해 100개 이상의 생태계 파편으로 조각나 있다.

    2004년 말 현재 전국의 도로 연장은 총 10만278km이다. 그러나 이동통로는 불과 92개뿐이다. 이동통로 폭을 30m라 봤을 때 2760m의 이동통로가 놓여져 있을 뿐이다(전국 도로 연장의 0.03%).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의 최태영 연구원은 “도로와 차량은 늘고 있지만 야생동물 이동통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로드킬 수와 지점을 파악하는 기초조사를 하고, 도로의 문제점을 발견해 구조 개선과 이동통로를 설치하고, 사후 모니터링을 해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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