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0

2005.11.15

‘생존 몸부림’ 도심을 질주하다

멧돼지 잇단 출현 갈 곳 없는 동물 현주소 … 인간에 대한 생태계 파괴 마지막 경고

  • 기획: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 글: 한상훈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관리팀 팀장

    입력2005-11-09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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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 멧돼지들이 나타나고, 모기가 한겨울에 살인적인 공격을 하며, 바닷가 하늘은 까마귀와 철새들로 불길하게 뒤덮여 있다. 차에 치여 피를 흘리고 죽은 야생동물들의 시체는 점점 더 자주 인간을 불안하게 한다. 또한 도시의 밤을 지배하는 것은 고양이들이다. 도대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환경인식이 높아지고, 동물보호를 위해 노력한 결과일까. 아니면 빌딩 지하, 옹색한 도심의 녹지, 조용한 정화조와 인간이 만든 간척지에 살고 있는 동물들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인간이 선의로 만든 각종 법안과 동물 이동통로는 자연과 동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갈라파고스에서 ‘자연선택’이라는 동물 진화의 메커니즘을 확인한 찰스 다윈이 살아 있다면 서울이라는 인공의 ‘섬’을 새로운 진화의 표본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도심에서 살고 있는 야생동물들의 처절한 생존방식을 알아보았다. -

    ‘생존 몸부림’ 도심을 질주하다

    서식지가 줄어들어 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멧돼지가 소동 끝에 사살됐다

    최근 인구 1000만명이 넘게 모여 사는 거대 도시 서울에 멧돼지의 출현 소식이 심심찮게 전해온다. 올해만 벌써 네 번이나 나타났으며, 수도권 구리에서도, 대전광역시에서도 멧돼지의 출현으로 소란이 있었다. 멧돼지를 사나운 맹수로 보는 오해와 더불어 멧돼지의 수가 증가하면서 먹이가 부족해 도심에까지 출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호랑이나 표범 등의 상위 포식동물이 사라졌기 때문에’라고 분석하는 목소리도 있다.

    멧돼지는 1970년 수렵이 다시 허용된 이후 유해조수와 수렵대상 동물로 지정돼 전국적으로 매년 수천 마리가 포획돼왔다. 다만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 일원은 총기 사용이 금지돼 있어 사실상 유해조수 구제와 수렵이 금지돼왔다. 다산동물인 멧돼지의 수가 30년 이상 증가해왔다면 서울을 위시한 경기 일원의 도심지에 예전부터 멧돼지가 출현해왔어야 하는데 왜 지금 갑자기 늘어난 걸까. 당연히 의문이 든다.

    오늘날 멧돼지의 서식환경이 과거에 비해 더 좋아졌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계속되는 도로 건설에 의해 서식지는 조각조각 나뉘는 분단화가 심화되고, 서식지의 규모 또한 신도시 개발 등으로 감소돼왔다. 과도한 개발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일부 도심 외곽지대를 그린벨트로 지정해 그나마 완충지대와 생태축으로서 멧돼지들을 위시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유지해왔으나, 이젠 그린벨트도 개발의 바람 앞에 마지막 안전지대로서의 구실을 상실했다. 더 이상 갈 곳 없는 동물들이 길을 잃고 도심에까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이 땅에 사는 야생동물의 현주소인 것이다.

    과도한 개발, 동물 서식환경 갈수록 열악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안전한 서식공간과 충분한 먹이 공급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멸종을 면하기 위해서 유전적으로 건강하고, 적정한 개체군이 유지돼야 한다.

    자연계에서 생태계의 유형은 다양하다. 산림, 하천, 산지, 극지, 열대, 사막, 해양 등. 이러한 생태계는 모두 지구가 수십억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자연생태계다.

    ‘생존 몸부림’ 도심을 질주하다

    크게 늘어난 비둘기들은 산성변 등으로 도시의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다. 도시에 사는 야생조류나 너구리 등 동물들은 사람들이 주는 과자나 음식쓰레기 등을 먹으면서 개체수가 이상 증가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인간이 주로 살고 있는 도시생태계는 인간이, 인간만의, 인간중심적 생활을 위해 만든 인위적인 공간이요, 변모된 생태계다. 도시 거주자의 생활과 생산 편리성, 경제성을 최우선시한 특수한 환경인 것이다. 고층 건물과 넘쳐나는 자동차, 매연,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자연생태계를 조각내는 아스팔트 도로, 직선화된 하천, 상가와 주택가에서 쏟아져나오는 음식쓰레기, 극히 제한된 녹지공간, 그리고 생활오수 등등.

    무엇 하나 자연스런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수많은 도시 거주자를 위해 주변 전원지역의 농경 생산방법도 달라졌다. 기존의 논밭이 경제적인 이유로 연중 채소 재배가 가능한 비닐하우스 단지로 변화했다. 여름에는 냉방을 위한 과도한 에어컨 사용으로 열대야가 계속되고, 겨울엔 과도하게 난방기를 사용한 탓에 도시 전체가 온실화하고 있다.

    도시 외곽의 전원지대에 비해 평균 기온이 2~3℃ 이상 높아 도시는 열섬(heat island)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 외곽의 전원 지대에서는 여름엔 도시에서 방출되는 스모그와 도심지에서 뿜어나오는 열에 의해 만들어진 구름으로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리는 현상이 많아지고, 겨울엔 열섬화된 도시로 유입되는 기온의 변화에 의해 오히려 추워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도시생태계는 한마디로 외부의 생태계를 잡아먹고 사는 거대한 생명체와도 같다.

    그러나 이러한 변모된 도시생태계 내에서도 동물들은 적응하며 살아간다. 대부분이 인간생활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모기, 파리, 깔따구, 바퀴벌레, 흰개미 등의 위생곤충과 시궁쥐, 곰쥐 등의 위생동물이다. 더불어 곤충을 먹고사는 집박쥐와 비둘기 등을 포식하는 황조롱이가 지하 배수구 터널과 고층아파트의 베란다, 옥상을 집으로 해 살고 있다. 원래의 녹지공간이 남아 있는 도시 산림지대와 공원들, 한강 수변지구에서는 두더지, 다람쥐, 족제비와 너구리 등 포유동물과 소쩍새, 꾀꼬리 등 야생조류도 관찰된다.

    물론 구성원과 구조가 단순화한 도시생태계에 가장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동물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 인간이다.

    1000만명 이상의 생활 터전인 서울과 같은 대도시의 생태계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희생되는 자연이 있다. 안전한 식수 확보를 위한 대형 댐 건설로 인한 산림 감소, 식량 증산을 위한 대규모 갯벌 매립, 넓은 주거용 토지 확보를 위한 산지와 농지 감소, 도시로의 물자 유입을 위한 전국적인 고속도로망 건설 등이 그것이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도시로 진출하는 인구 증가로 농촌의 공동화 현상은 더 이상 자연의 힘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도시환경 종합 마스터플랜 수립 시급

    도시생태계는 인간 중심의 인위적 생태계다. 그러나 인간도 본질적으로 자연계의 건전한 생태적 상호작용의 바탕 위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생명체다. 따라서 건강한 도시생태계관리계획(UEMS·Urban Ecosystem Management System) 수립과 도시생태학이라는 학술연구 발전이 필요하다.

    도시 지역의 내부와 인간 거주지, 주위 자연계 사이에서 관찰되는 생태학적 단계와 상호 유·무기적 작용을 명확히 파악해 환경을 최우선하는 종합적인 도시환경 마스터플랜 수립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토지 이용, 교통망, 빈 터, 자연보호 지역 등 도시생태계의 구조와 기능 분석. 대기·물·태양방사·기후·기상·경관 등 도시환경 요인, 에너지 생산과 소비, 공업생산, 공업에 사용되는 자연자원, 인간과 자재·제품·유통·쓰레기 처리 등 인간 생활로 인한 환경으로의 영향, 도시환경 제어(환경의 질적 규제와 유지) 등에 관한 연구가 요구된다.

    19세기 유럽에서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업화와 더불어 도시화가 발전했다. 건강한 도시 발전을 위해 당시의 도시 규모는 인구 10만명 이내, 건축 높이 3층 이하의 도시구조가 이상형으로 인식돼 이런 형태로 유럽 전역의 도시가 발전해왔다.

    멧돼지가 아파트촌에 나타나고, 철새가 갑자기 늘거나 야생동물들의 시체를 길에서 볼 수 있다고 이를 결코 자연생태계의 회복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자연생태계 파괴에 대한 동물들의 마지막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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