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2

2016.11.09

사회

이제 10대도 ‘탈조선’ 시대

“좋은 대학 가도 행복하지 않아요”…기술자격증 따고 조기 유학 대신 ‘조기 이민’ 선택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1-07 12: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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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성남시에 사는 김모(15) 군은 올 여름방학 처음으로 부모와 크게 다퉜다. 김군이 특성화고교에 진학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김군은 “부모님은 학업성적이 좋으니 일반계 고교나 자립형사립고교(자사고)에 진학해 대학에 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특성화고교에 진학해 기술 이민을 통한 해외 취업을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인 김군이 벌써부터 이민을 생각하는 이유는 행복해지고 싶어서다. 김군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구해도 높은 업무 강도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행복할 것 같지 않다. 한국보다 업무 강도가 낮은 해외에서 취업해 일과 내 생활의 균형을 찾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며 해외 취업을 목표로 하는 이유를 밝혔다.

    한국 청년은 한 번쯤 ‘탈조선’(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민 가는 것)을 꿈꾼다. 인터넷 취업 전문 포털사이트 ‘잡코리아’는 6월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사이트 ‘알바몬’과 함께 성인 남녀 2662명을 대상으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나요’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94.4%가 ‘이민을 꿈꿔본 적 있다’고 답했다. 이민을 꿈꾼 이유로는 ‘사는 것이 팍팍하고 고되어서’(57%·복수응답),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고 싶어서’(37.8%)를 주로 꼽았다. 문제는 성인뿐 아니라 일부 청소년까지 해외 취업을 통한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 한 이민상담센터 관계자는 “고교 3학년 학생이 찾아와 기술 이민에 대해 물어보고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 상담을 받고 가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밝혔다.

    청소년조차 한국을 떠나려는 이유는 한국에서 삶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염유식 교수팀이 발표한 ‘2016 제8차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의 주관적 행복지수는 82점으로 조사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다. 주관적 행복지수란 조사 대상이 스스로 생각하는 행복 정도를 OECD 평균(100점)과 비교해 점수화한 수치다.



    “뭐든지 1등, 일류 아니면 힘들잖아요”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낮으니 해외 이민을 뜻하는 ‘탈조선’은 청소년 사이에서도 이미 유행어 수준이다. 대입을 앞둔 청소년이 모인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탈조선’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민에 적극적인 청소년은 자격증을 취득해 실제 해외 취업을 준비하기도 한다. 고용노동부가 2014년 발표한 ‘국가기술자격 취업률 등 현황분석’에 따르면 10, 20대 청년이 전체 국가기술자격증 취득자의 57.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입 수험생인 이모(18) 군은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모의평가)를 보고 일찌감치 4년제 대학 입학을 포기했다. 모의평가 성적만 보면 서울 내 4년제 대학 진학이 가능하지만 이군은 전문대 진학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군은 “최상위권 대학이 아니면 4년제 대학 진학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까스로 입학하더라도 취업시장에서 학벌 덕을 보기 어려울 텐데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가며 4년이란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전문대에 진학해 기술자격증을 취득한 뒤 해외 취업을 할 생각이다. 그에 맞게 해당 언어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유명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는 유모(22) 씨는 진작 국제영어능력시험(IELTS)을 준비 중이다. IELTS는 원래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대학에 입학하는 데 필요한 영어시험이지만 현재 국내에선 기술 이민의 척도로도 사용된다. 유씨의 목표는 IELTS에서 7.0 등급을 받는 것이다. 이 등급이라면 미국 아이비리그 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씨의 최종 목표는 유학이 아니다. 그는 “IELTS를 준비한다고 하면 유학 가느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졸업 후 해외 취업을 할 생각이다. 국내 유수 대기업에 취업한 뒤 긴 업무시간과 잦은 야근에 힘들어하는 선배들을 볼 때면 안타까웠다. 그래서 해외 취업은 물론, 아예 이민까지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박모(56) 씨는 기술 이민을 꿈꾸는 자녀에게 컨설팅 비용부터 자료 수집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박씨는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는 일자리도 많았고 일만 열심히 하면 남 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 자녀 세대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적고 일자리를 구해 열심히 일해도 가정을 꾸리기 위한 돈이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보다 많이 드는 것 같다”며 자녀의 이민을 돕는 배경을 밝혔다.



    부모도 이민 말리지 않아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한국이 싫어 떠난다는 청년의 불평, 불만은 젊은 세대의 단순한 투정이라고 받아들였지만 학부모에게는 자녀의 취업 실패와 생활 불안 등이 당면한 사회문제다. 결국 청년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공감대가 중·장년층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고 확실한 계획 없이 해외 취업을 노리는 것은 위험하다. 기술 이민을 주선하는 현장에서는 해외 취업 등의 이민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 이민컨설턴트는 “기술 이민은 이름 때문에 자격증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자격증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나라에서 일할 수 있을 정도의 외국어 실력이다. 성인도 외국어 장벽에 가로막혀 해외 취업에 난항을 겪는 만큼, 이민을 희망하는 청소년이라면 외국어 실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미 일본에 취업해 정착한 윤모(28) 씨는 “일본에 취업하니 한국보다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덜하고, 업무시간도 적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하지만 항상 외국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문화 차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크다. 해외 취업을 준비할 때는 그 나라가 자신에게 잘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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