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9

2005.11.08

민주당 “빚 때문에 못 살겠네”

2002년 지방선거 때 빌린 10억원 뒤늦게 문제 … 변제 비용으로 연말 국고보조금 다 쓸 판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11-02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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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 ‘희망가’가 울려퍼지던 민주당과 한화갑 대표 주변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2002년 지방선거와 관련, 숨어 있던 빚 10억원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2002년 대선 당시 빌린 선거 빚 42억원 때문에 국고보조금을 차압당해 열린우리당(우리당)과 험악한 꼴까지 겪은 상태다.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던 10억원의 등장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

    9월21일 우리당을 탈당한 신중식 의원(전남 고흥·보성)의 입당을 계기로 당 주변에는 희망가가 울려퍼졌다. 의원 한 명의 입당이지만, 그의 등장은 한 석을 능가하는 고부가가치로 평가됐다. 유종필 대변인은 “명실상부한 원내 3당의 지위를 확보했다”고 평가했고, 선거에서 민주노동당(민노당)에 빼앗겼던 기호 3번까지 되찾았다. 특히 신 의원의 입당으로 호남을 대표하는 정당임을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 여세를 몰아 민주당은 10월12일 당사도 정치의 중심인 여의도로 옮겼다. 날벼락처럼 닥친 분당과 총선 참패 충격을 뒤로한 채 당사를 처분하고 여의도를 떠난 지 1년여, 조용하지만 힘찬 부활의 노래가 민주당 주변에서 울려퍼진 것이다.

    “원내 3당되고 당사도 옮겼는데 웬 악재”

    그러나 민주당 외곽을 향해 몰아치는 북풍한설도 좀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먼저 2002년 지방선거 당시 빌린 10억원의 차용금이 발등의 불로 다가온 것. 채권자인 J 전 의원은 이미 모든 법적 절차를 밟아놓고 연말 국고보조금 지급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은 국고보조금을 한 푼도 만져보기 힘들게 됐다. 대선 당시 홍보물 등과 관련 43억원의 빚 문제로 골치를 앓던 민주당으로서는 또 한번 시련이 닥친 셈이다.



    10억원의 채권 문제는 2002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6월6일 지방선거를 지휘하던 김원길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은 선거자금이 바닥난 것을 알고 당 중앙위원이자 재정위원이었던 J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큰일 났다. 선거자금이 바낙 났다. 내가 책임질 테니 10억원만 만들어달라.”

    김 총장은 “선거가 끝나면 중앙당 후원회를 개최해 곧바로 돈을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J 전 의원은 고민 끝에 회사 명의로 금융기관에서 10억원을 대출받아 김 총장에게 전달했다. 김 총장은 ‘10억원을 정히 영수함’이라는 차용증에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김원길 명의의 서명을 했다.

    그러나 서울시장 및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등 수도권 빅3 지역은 물론 전국에서 민주당이 참패하면서 문제가 터졌다.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부상했고, 이 여론에 따라 김 총장이 사퇴해버린 것. 더 큰 문제는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지지도가 추락하고 당 내분이 심화되면서 후원회 개최가 무산된 점이다. 2002년 10월에는 노 후보의 정체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던 김 총장이 민주당을 탈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후 J 전 의원이 빌려준 10억원은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빚 때문에 못 살겠네”

    2004년 12월16일 민주당 한화갑 대표(왼쪽에서 네 번째) 등 당직자 300여 명은 청와대 인근에서 집회를 열고 열린우리당에 지난 대선 당시의 빚을 변제하라고 촉구했다.

    대선이 끝난 뒤 J 전 의원은 몇 차례 채무이행을 독촉했다. 그러나 당에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고 “김 총장에게 물어보라”는 퉁명한 답변만 돌아왔다. 2004년 여름 J 전 의원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다. “2004년 7월7일까지 차용금 10억원을 변제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강경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J 전 의원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갔다. 2005년 1월27일 서울중앙지법은 “민주당은 J 전 의원에게 10억원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따라 민주당은 J 전 의원이 소송을 제기한 날로부터 연 20%의 이자도 지급해야 하는 이중부담을 떠안게 됐다. 2004년 8월 소송을 제기한 날로부터 계산된 이자는 10월 말 현재 2억원이 넘는다.

    J 전 의원은 현재 국고보조금을 차압하기 위해 추심을 신청해놓았다. 국고보조금에 대한 차압은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J 전 의원은 “조만간 이 문제가 풀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 경우 민주당에 지급될 연말 국고보조금은 고스란히 2002년 지방선거 자금 변제 비용으로 나갈 전망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곤혹스러운 눈치다.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최근 민주당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는데 풀기 어려운 난제가 터졌다”며 해법 찾기에 골몰했다. 억울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선거 때 당에 준 돈을 갚으라는 것은 어불성설 아니냐”며 J 전 의원의 문제제기를 반박했다.

    그러나 J 전 의원의 주장은 다르다.

    “당 재정위원으로 당에 기여한 부분도 많다. 그러나 문제가 된 10억원은 차용증을 받고 빌려준 돈”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그 돈은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으로 지금까지 이자를 물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에 대한 사무처 인사들의 불신도 문제

    민주당 일각에서는 책임론을 놓고 우리당 귀책 사유를 제기하기도 한다.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우리당 사람들이 떠나면서 남긴 선거 빚 43억원 외에 또 다른 빚이 있었다는 점이 충격”이라며 “우리당이 이런 사정을 알고 최소한의 도리를 해주기를 기대한다”며 우리당 책임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국고보조금의 경우 당 사무처 직원들 봉급 등 당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라며 “차라리 빚잔치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의견도 내놓았다.

    민주당을 괴롭히는 것은 비단 선거 빚만이 아니다. 당 지도부에 대한 당 사무처 인사들의 불신과 문제제기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른다. 9월15일 민주당 사무처 인사 30여명은 ‘희망을 만드는 당직자 모임’ 명의로 된 건의문을 비밀리에 한 대표에게 전달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이 자료에 따르면 당직자들은 한 대표에게 4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 ‘음해성 보고를 차단해달라’는 것과 ‘비공식 라인의 당무 및 인사 개입을 자제시켜 달라’는 대목이 특히 눈에 띈다. 계약직으로 전환한 당직자의 신분을 정규직으로 전환, 확실하게 보장해달라는 요구도 제시했다.

    ‘희망을 만드는 당직자 모임’의 한 사람은 “당 지도부의 당 운영 형태에 대한 불만들이 쌓여 있었고 이를 한 대표에게 건의하자는 취지에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음해성 보고서들이 횡행했고 비공식 라인의 당무 인사 개입설이 거론되었다”면서 “이 때문에 당 사무처 인사들이 신분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한 측근은 이 보고서와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변인실 한 관계자는 “그들이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견 통일이 있었거나 조직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들의 요구가 마치 당 또는 한 대표의 지도력에 대한 문제제기로 연결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당내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당을 이끌고 있는 한 대표로서는 선거 빚은 물론 당내를 관통하고 있는 이런 불협화음과 이견들을 취합, 일사불란한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이중부담에 직면한 상태다. 한 대표의 노력 여하에 따라 민주당에 다시 희망가가 울려퍼질지, 아니면 내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지가 결정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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