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8

2005.11.01

고국 그리워 하늘 끝에서 차 마시노라

  • 입력2005-10-31 08: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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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국 그리워 하늘 끝에서 차 마시노라
    사명대사의 혼이 서린 밀양의 표충사를 들른 뒤 해인사로 가는 길이다. 밀양은 사명대사의 고향이자 차의 고장이다. 다죽리(茶竹里), 다원동(茶院洞), 다촌(茶村), 사명대사의 생가 터 이웃마을인 다례리(茶禮里) 등 차와 관련된 지명이 많은 곳이다.

    지금 나그네가 가는 곳은 사명대사가 열반한 해인사 홍제암이다. 호국의 수행자로 잘 알려진 사명대사가 다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가 남긴 다시(茶詩) 한 편을 보면 다선일여(茶禪一如) 수행자였음을 금세 짐작할 수 있다.

    조계(혜능)를 이어 나온 먼 손(孫)/ 행장 이르는 곳마다 사슴과 벗을 삼네/ 사람들아, 헛되이 날을 보낸다 하지 마오/ 차 달이는 틈에 흰 구름 본다네(係出曹溪百代孫 行裝隨處鹿爲群 傍人莫道虛消日 煮茶餘閑看白雲).

    ‘지호선백에게 주다(贈智湖禪佰)’란 제목의 다시인데, 차를 달이는 동안 흰 구름을 응시하며 인생을 관조하는 선적인 정경이 손에 잡힐 것 같다.

    스님의 법명은 유정, 당호는 사명이다. 중종 39년(1545)에 태어나 15세에 어머니를, 16세에 아버지를 잃고 직지사로 출가한다. 2년 만에 승과에 합격한 뒤,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된다. 이후 32세 때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나 사양하고 묘향산으로 들어가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어 3년 동안 용맹 정진한다. 이후 운수납자가 되어 10여년 동안 만행을 했고, 43세 때 옥천 상동암에서 소낙비에 떨어진 꽃을 보고 무상의 도리를 깨달았다.



    49세 때 임진왜란을 맞았는데, 고성의 적진에 들어가 왜장을 감화하기도 하고 영동의 아홉 마을을 참화로부터 벗어나게도 한다. 더 나아가 사명은 재약사(현 표충사)에서 의병들을 모아 이끌고 서산대사(휴정)의 휘하로 들어간다. 그 무렵 서산대사는 왕명으로 승병을 총지휘하고 있었다. 이듬해 정월, 사명은 명군과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운다. 선조 26년(1593)에는 선교양종판사가 되며 뒤이어 전공을 인정받아 숭유배불의 분위기 속에서 벼슬이 당상직(堂上職)에 오른다.

    선조 27년에 사명은 울산 서생포에 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진중으로 들어가 적정을 탐색한다. 그때 사명은 가토 기요마사와 대화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가토 기요마사가 먼저 “당신네 나라에 보배가 많지요?” 하고 물었다. 이에 사명은 “우리나라에는 별달리 보배가 없고 오로지 장군의 머리를 보배로 여깁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그게 무슨 말이오?”라고 묻자 사명은 “우리나라에서는

    1천 근의 황금과 1만 호의 식읍을 현상금으로 내걸고 장군의 머리를 구하니 보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라고 말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명을 존숭(尊崇)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사명은 가토 기요마사의 진영을 세 번이나 드나들었던 것이다.

    선조 37년 사명의 나이 62세 때에는 쓰시마섬을 거쳐 왜 본토로 들어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만나 화친을 맺는다. 이와 함께 동포 3000여명을 데리고 귀국하여 선조에게 복명하자 선조는 사명에게 가의대부 품계를 내린다. 그해 10월, 사명은 묘향산으로 가 스승 서산대사의 영탑을 참배하고 선조 40년에는 치악산으로 들어가 병을 치료한다. 병이 더 깊어지자 사명은 해인사로 내려가 요양하던 중 광해군 2년(1610)에 입적한다.

    사명대사가 남긴 다시 중에는 왜국에서 지어진 것들이 있는데, 고국을 그리워하는 대사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고국 이별한 지 해가 지났는데/ 멀리 하늘 끝에 노니누나./ (중략)/ 사미가 찻잔을 내놓고/ 호백은 방석을 펴내.

    사명대사가 요양 중에 열반한 홍제암에 드니 막 저녁 범종소리가 난다. 마음에 불을 당기는 듯한 종소리가 마치 담대한 대사의 음성 같다. 나그네는 대사의 부도 앞에서 범종소리가 끝날 때까지 합장한 채 걸음을 멈춘다.

    ☞ 가는길

    남해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에서 해인사로 직진하면 홍제암에 이른다. 홍제암은 해인사 산문 밖 왼쪽 길 끝에 있다.



    茶人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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