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3

2005.09.20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해서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하다가 안 되니 남한테 주려는가 … 연정 땐 야당 없는 일당 독주”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5-09-13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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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해서야…”
    바쁜 일정에 늦게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지만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집에 가면 가장 먼저 컴퓨터 책상에 앉는다. 노무현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한 9월7일 저녁에도 박 대표는 어김없이 네티즌(누리꾼)들의 반응을 살폈다. 홈페이지에는 격려의 내용이 주종을 이뤘다. 이를 확인한 박 대표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인 8일 오후, ‘주간동아’ 취재기자와 마주 앉은 박 대표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영수회담 결과에 대한 만족감의 표현이었으리라. 박 대표는 인터뷰에서 영수회담에서의 단호함을 재연했다. “국가의 근본을 뒤흔드는 시도는 온몸으로 막겠다”며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른 한편으로 부드러운 여성성도 드러냈다. 정치권 인사들의 잇따른 결혼 소식과 관련, “그들의 결혼이 부럽기도 한데. 그러나 평생 결혼을 못할 것 같다”는 입장도 토로했다. 또 “국민을 위해 적합한 후보라면 2007년 대선에서 다른 사람을 밀 수 있다”고도 했다.

    -연정은 일단락된 것인가. 반대 이유는.

    “연정을 하면 실질적으로 야당과 그 기능이 없어지다시피 하게 된다. 국민은 야당 없는 정부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야당이 없어지면 비판과 견제가 없는 일당 독주만이 횡행한다. 여권에서 수시로 민주주의를 얘기하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통령도, 지금의 여야 정치구도도 국민이 선거를 통해 만들어준 것이다. 국민의 동의 없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권력을 주고받거나, 정치구도를 바꿔버리는 것은 민의를 거스르는 일이다.”

    -2선 후퇴, 임기단축 등 노 대통령의 강경 발언 배경이 궁금했을 텐데.



    “언론에서도 짚고, 나도 왜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께 여쭤보니 내각제 개헌 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이 없고, ‘다음 수’에 대해서도 특별한 의도가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연정론을 접을 것 같지 않다. 할 말이 있으면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대통령은 한 마디를 하더라도 국민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권한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책임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흥정하고 거래하는 물건이 아니다. 부디 혼자 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를 해주길 바란다.”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여권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선거제도 개편 문제는 어차피 2008년 총선 직전에 인구의 증감에 따라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하게 된다.”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해서야…”

    9월7일 노무현 대통령과 회동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박 대표.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사람도 많다.

    “대통령의 진정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연정은 자체로 안 되는 것, 불가능한 것이다. 연정해서 모든 정책을 의논하자고 하지만 국가보안법, 교육·경제 문제 등 모든 부분에서 노선이 다르지 않느냐. 국민이 대통령에게 권한을 맡긴 것은 대통령이 책임지고 국익을 위해 잘 운용하라는 것이지, 하다가 안 되니 남한테 주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런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다.”

    -2시간 30분 동안 느낀 노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는.

    “대통령이란 자리가 원래 고뇌하고 무한책임이 따르는 자리다. 국민의 어려움은 대통령의 어려움이다. 결국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혼자 해결하고 책임져야 한다.”

    -대선에서 세 번은 울지 않겠다고 했지만 당 분위기를 보면 그보다 훨씬 많은 울음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람을 영원히 일어설 수 없게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라는 말이 있다. 근거 없이 자만에 빠지는 것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내 인사들이 기존의 기득권에 안주한다는 비판이 많다.

    “지금 한나라당에 무슨 기득권이 있나? 당대표도 아무 기득권이 없는데…. 지금의 한나라당은 권력도 없고, 자금도 없고, 오직 국민의 지지로 버텨가고 있다.”

    -4·30 재보궐 선거를 보면 한나라당에 대한 영남 정서가 과거 같지 않다.

    “4·30 재보궐 선거는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아주 소중한 교훈을 준 선거였다. 영남에서 열린우리당이 약진하고, 한나라당이 도저히 발붙이지 못할 것이라던 충청에서 당선이 되었다. 우리 국민들은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가고 있다.”

    -박 대표의 지도력과 관련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조언과 충고를 깊이 새겨듣고 있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야당의 고유 기능은 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저한테 왜 강력하고 화끈하게 투쟁하지 못하느냐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고 옛날 식의 몸싸움이나 장외투쟁 같은 극한적인 투쟁을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부 여당에 대해 따질 것은 따지되, 대안과 정책을 가지고 싸우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근본을 뒤흔드는 시도에 대해서는 온몸으로 막아낼 것이다.”

    -2007년 대선 출마자가 갖춰야 할 지도자 덕목은.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사심 없이 일하는 자세야말로 어느 시대이건 정치 지도자에게 꼭 필요하다. 권력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정치의 정치’를 할 수 있는 지도력을 겸비해야 한다.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 과학기술에 대한 식견과 이공계에 대한 관심, 우리 사회를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경제,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그 가운데 박 대표는 몇 가지나 갖췄나.

    “…국민들이 평가할 부분 같다.”

    -노 대통령은 8·15 경축사를 통해 신(新)과거사 정국을 언급했다. 아무래도 군사정권 시절 국가권력의 인권유린에 맞춰질 수밖에 없을 듯한데.

    “나는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데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2005년 아버지 박정희는 박 대표에게 어떤 의미인가.

    “아버지는 국정에 임하면서 오로지 국익만을 생각했다. 시대를 초월해 정치인으로 늘 가슴속에 새겨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2007년 대선에 출마할 것인가.

    “대선까지는 아직도 2년 반 가까이 남았는데….”

    -대선후보로 다른 사람을 밀 수도 있나.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정말 적합하고 필요한 분이라면 저뿐만 아니라 모든 분들이 밀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를 평가해달라.

    “두 분 모두 일을 열심히 잘하고 있다. 내가 평가한다는 건 적절치 않고, 국민들이 잘 알고 평가하실 것이다. 두 분 모두 우리 한나라당에 든든하고 소중한 분들이다.”

    -대통령이 되면 이것만은 고치겠다는 점이 있다면.

    “대폭적인 감세와 파격적인 규제 혁파로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 시장에 자유를 확대하겠다. 기업가 정신을 북돋아줄 것이다. 좁디좁은 우리 내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시각이 외부세계와 미래로 향하도록 하겠다.”

    -정치인들이 릴레이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 계획은.

    “어떨 때는 조금 부럽기도 한데…. 아무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싶다. 일부러 결혼을 안 하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앞으로도 결혼은 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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