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2005.09.13

희망 쿵쿵 따 ‘숭고한 질주’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05-09-07 14: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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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쿵쿵 따 ‘숭고한 질주’
    테리는 달리기 시작했다. 왼발로 두 번 쿵쿵 뛰고, 다시 의족인 오른발로 땅을 찍었다. 쿵쿵 따 쿵쿵 따 소리를 내며 달리는 그의 주법을 사람들은 ‘폭스 트로트(Fox Trot)’라 불렀다. 테리는 손을 단호하게 움켜쥐고, 균형을 잡기 위해 엉덩이를 있는 대로 씰룩거리면서 어깨까지 동원해 희망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갔다.”

    ‘스물 둘에 별이 된 테리’(원제 TERRY FOX; HIS STORY)는 암에 걸렸지만 좌절하지 않고 불굴의 정신으로 세상에 위대한 빛을 밝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한 청년의 감동적 이야기다. 테리 폭스는 1982년과 2000년 두 차례 우표로 발행됐을 정도로 ‘가장 영향력 있고 훌륭한 캐나다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또 올봄 캐나다 1달러짜리 화폐에 테리가 달리는 모습이 새겨져 유통되고 있어 그가 얼마나 귀중한 유산을 남겼는지 짐작케 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던 테리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열일곱 살이 되던 1976년. 오른쪽 다리에 종양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병원을 찾았다가 당시 완치율이 아주 낮은 암이었던 ‘악성 골종양(bone cancer)’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결국 다리를 자르는 수술만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최선책. 수술 전날 평소 따르던 농구 코치의 병문안을 받는 자리에서 딕 트라움이라는 사람이 뉴욕마라톤에 휠체어를 타고 출전해 완주한 ‘러너스 월드’ 잡지 기사를 읽고 캐나다 대륙을 횡단하는 꿈을 꾼다.

    수술 후 주변의 도움으로 절망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된 테리는 소아병동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이 세상에서 암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암 연구 기금’을 모으기로 다짐한다. 테리는 퇴원 후 처음에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상체 힘을 키우고 나중엔 의족을 차고 걷기 연습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걸을 뿐만 아니라 제법 빠르게 달릴 수 있게 된다.

    “엄마, 나 캐나다 횡단 마라톤을 해볼래요.” “넌 안 돼.” “할 거예요.” 달리는 것에 자신감이 붙은 테리는 그동안 품어왔던 계획을 실천하기로 작정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린다. 정상인도 하기 어려운 8400km 캐나다 횡단 계획, 이름 하여 ‘희망의 마라톤’이다.



    1980년 4월11일 캐나다 동쪽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에서 테리는 그 위대한 첫걸음을 떼었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 평균 42km를 달리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주위의 무관심, 의족의 고장, 다리 절단 부위의 상처 등으로 ‘희망의 마라톤’은 ‘고난의 마라톤’이 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서서히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내놓기 시작한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가며 143일 동안 5374km를 달렸을 때, 완치되었다고 여겼던 암이 허파로 전이되어 결국 병원으로 실려간다.

    테리는 중도 포기로 지켜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희망의 마라톤 기간에 약 300억원의 암 연구 기금이 조성되고 암 퇴치 모금의 불길도 타오르기 시작했다.

    테리는 1981년 6월28일 세상을 떴다. 그러나 그의 뜻은 전 세계로 퍼져 해마다 56개국에서 ‘테리 폭스 달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국내에서도 1992년 25명으로 시작해 해마다 참가 인원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9월10일 여의도공원에서 열려, 인류의 암 정복 의지를 다진다.

    “노력하기만 하면 그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꿈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암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던 수많은 테리 폭스가 여전히 우리 곁을 달리고 있다.

    레슬리 스크리브너 지음/ 용호숙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 376쪽/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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