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1

2016.11.02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우울한 시대의 상념

세상의 무게를 느낄 때…“마빈 게이가 돼라”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10-31 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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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걸까. 최근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질문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는 게 허망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직업병일까, 일련의 혼란스러운 일을 겪으면서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대통령은 100초간의 일방적 사과에서 ‘순수한 마음’을 언급했다. 야, 이거 모던록 밴드의 앨범 제목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언니네 이발관의 2집 ‘후일담’에 담긴 ‘순수함이라곤 없는 정’도 떠올랐다. 그렇지, 최순실이 어디 순수한 마음으로 그랬겠나. 현재 대통령의 순수한 마음의 결과는 고통 그 자체일 터. 내한공연도 했던 미국 뉴욕 출신 밴드 ‘더 페인스 오브 빙 퓨어 앳 하트(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는 밴드 이름 자체로 그분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순수한 마음의 고통이라니. 2009년 데뷔할 때 몇 년 후 한국 지도자가 자신들 이름 그대로의 감정을 느끼리라 예견했을까. 왠지 1990년대 일본 밴드 ‘유라유라테이코쿠(ゆらゆら帝·흔들흔들 제국)’도 생각나지만 그러려니 하자.

    농담은 잠시 접어두고, 사실 일련의 뉴스를 보면서 꺼내 든 앨범이 있다. 마빈 게이의 1971년 작인 ‘What’s Going On’이다. 39년 미국 워싱턴에서 태어난 마빈 게이는 61년 모타운 레코드에 발탁, 음악생활을 시작한다. 그 후 ‘Let’s Get It On’을 빌보드차트 1위에 올리는 등 샘 쿡의 뒤를 잇는 솔 뮤지션으로 평가받으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간다. 당시 모타운에는 철칙이 있었다. 음악에서건, 음악 외에서건 아티스트의 정치·사회적 발언을 금한 것이었다. 아직 흑인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자칫 회사가 타격을 입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를 깬 첫 번째 앨범이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이다.

    1970년 5월 4일 오하이오 주 켄트주립대에서 군대가 반전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학생 4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하는 켄트대 발포사건이 일어난다. 반정부 감정이 극에 달했다. 이에 더해 마빈 게이의 동생이 베트남에서 돌아와 전장의 참혹함을 증언한다. 여기에 자극받은 마빈 게이는 전쟁의 참상과 사회 혼란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하고 ‘What’s Going On’을 만든다. 회사에선 이 앨범의 발매를 거부했지만, 그는 앞으로 모타운에서 어떤 레코딩도 하지 않겠다는 초강수를 쓴 끝에 뜻을 관철했다. 결과는? 8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모타운 설립 이후 최다 앨범 판매 기록을 세웠다. 메타비평 사이트 ‘어클레임드 뮤직’에서 이 앨범은 역대 7위 명반에 올라 있기도 하다.

    “세상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 어떻게 섹시하게 미소 지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비극을 승리로 바꾸고, 그러면서 동시에 솔 음악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마빈 게이가 되는 것이다”라는 해외 평론가의 말처럼, 이 앨범은 어이없는 뉴스가 뒤덮은 신문 1면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라고 실소하는 지금 순간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음악적 승화다. 그런 음악은, 이 앨범이 말해주듯 세월이 지나도 가치가 흔들리는 법이 없다.



    한 가지 더, 내년 1월 11일 메탈리카의 내한공연이 있다. 1998, 2006, 2013년에 이은 네 번째 방한이다. 이들 공연의 백미는 역시 3집 타이틀곡인 ‘Master Of Puppets’다. 장장 8분에 이르는 대곡임에도 관객은 기타 솔로까지 따라 합창하며 장관을 이룬다. 공연시장에선 보기 드물게 남성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기에 테너와 바리톤의 웅장한 향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동안의 내한공연과 달리, 이번에는 이 노래를 따라 부를 때 전에 없던 소회가 느껴질 듯하다. 본래는 마약중독으로 황폐해지는 심신을 묘사한 곡이지만, 꼭두각시를 움직이는, 마약보다 무서운 ‘주인’이 따로 있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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