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1

2016.11.02

사회

허술한 법망, 사람 잡은 사제총기

제작부터 부품 밀수까지 인터넷에 정보 유통…‘총검단속법’은 무용지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10-31 13: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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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설마’ 했지만 결국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지금까지 ‘총기 소유가 법적으로 금지된 한국에서 설마 총기난사 피해자가 나오겠느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10월 19일 이런 안이함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사건이 서울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성병대(46) 씨는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서울 강북구 오패산 터널 인근에서 자신이 만든 사제총기를 경찰을 향해 난사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 한 명이 성씨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우발적 범행이라고 보기엔 성씨의 준비가 너무나 치밀했다. 그는 범행 당시 사제총기 17정과 방탄복으로 완전 무장한 상태였다.

    물론 성씨 사건 외에도 불법 사제총기 관련 사건은 줄곧 이어져왔다.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을 통해 사제총기 만드는 법이 퍼져나가면서 총기 문외한도 불법 총기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경찰 조사 결과 성씨도 인터넷에 공개된 내용을 참고해 사제총기를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그동안의 사건과 다른 점은 조악한 사제총기의 흉탄에 맞아 실제 인명피해가 났다는 점. 이에 정부당국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으로 불법 사제총기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인터넷 전체에 퍼진 사제총기 제작법을 차단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데 고민이 크다. 



    해외에서 올린 제조법 처벌 못 해

    총기 관련법에 따라 국내에서 일반인이 허가 없이 총기를 소지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검단속법) 제12조에 따르면 총이나 석궁 등을 소지하려면 반드시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 총기가 아닌, 총과 유사하게 생긴 연극·영화용 소품도 허가를 받아야 할 만큼 국내 총기 관리는 엄격하다. 만약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총 또는 총 유사품을 소지할 경우 동법 제70조에 의거해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공인사격장에서 사격 체험을 하는 게 전부였던 총기 관련 법망에 구멍이 생긴 것은 나날이 진화하는 인터넷 때문이다. 인터넷 웹사이트에 올라온 총기 제조법을 보고 일각에서 사제총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 2007년 5월에는 충남 천안시 한 공터에서 이모(당시 47세) 씨가 사제총기를 사람에게 발사했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천안의 한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면서 파이프와 목재를 모아 직접 사제총기를 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고등학생 김모(당시 19세) 군이 사제총기를 시험발사한 사건도 있었다. 당시 김군은 이모(당시 18세) 군 등 친구들과 함께 총기 관련 해외 사이트나 백과사전 등에서 정보를 수집해 사제총기를 만들었다. 이들이 제작한 사제총기의 파괴력과 탄환 속도는 현재 군에서 제식 소총으로 활용하는 K2 소총의 3배에 달했다. 같은 해 박모(당시 30세) 씨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고물상과 총기 중간 판매상으로부터 몰래 총기 부품을 사들여 사제총기를 제작했다. 그는 군 사격장에 침입해 이 사제총기에 사용할 실탄과 공포탄 등 총탄 360여 발을 훔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최근에는 도면만 있으면 그대로 제품이 나오는 3D(3차원) 프린터까지 상용화돼 사제총기 제작이 한결 쉬워졌다. 온라인 검색 사이트 구글에서 ‘3D printed gun design’ 혹은 ‘3D printed gun blueprint’ 등으로 검색하면 손쉽게 3D 프린터용 사제총기 설계도를 구할 수 있다. 특히 일부 총기 도면 업체는 직접 만든 3D 프린터용 총기 설계도를 인터넷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을 통해 사제총기 제작법이 확산되자 경찰은 2015년 1월 총검단속법을 일부 개정했다. 이에 따라 사제총기 제조법을 인터넷에 올리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받도록 처벌 규정이 강화됐다(총검단속법 제73조).

    그러나 개정법에도 한계가 있었다. 이 법으로는 해외에서 인터넷에 올리는 총기 제조법을 막을 권한이 없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사제총기 설계도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업로드되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어 단속이 어렵다”고 밝혔다.



    결국 사람 문제, “홍보·교육 강화해야”

    국내 웹사이트가 아니면 단속이 어렵다는 허점을 파고들어 해외 총기 쇼핑 사이트를 통해 부품을 구매한 뒤 국내에서 조립하는 신종 총기 밀수도 늘어나고 있다.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로 몰래 들여오다 적발된 불법 총기류는 2013년 140정, 2014년 170정, 2015년 180정으로 증가세에 있다. 이 가운데 총기 부품류와 모형을 제외한 실제 살상용 완제품 총기는 2013년 18정, 2014년 4정, 2015년 7정으로 총 29정이다. 특히 올해는 8월까지 집계만 봐도 이미 246정(실제 총기 7정)으로 최고치였던 지난해보다 66정이나 더 많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인터넷 쇼핑 등 물류산업이 발달하면서 총기 밀반입 건수가 과거에 비해 많아지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출입국관리소 등에서 금속 탐지기 등 검문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제총기 제작과 밀수로 국내에 유입되는 불법 총기가 늘어나는 와중에 사제총기때문에 경찰관이 순직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청은 10월 21일 무허가 총기 제조 및 소지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규정한 총검단속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징역형 상한을 높이거나 ‘3년 이상’ 등으로 하한을 정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와 동시에 현행 30만 원인 불법 무기 신고 포상금을 대폭 인상할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터넷에 사제총기 제작법을 업로드하는 것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관련 검색어 차단’ 등 조기 적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인터넷에 퍼져 있는 사제총기 제작법을 전부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속과 함께 교육 및 홍보를 통해 총기 자체의 위험성을 알림으로써 민간에서 총기를 제작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웅혁 교수 또한 사람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칼이 위험하다고 부엌칼까지 전부 사용 금지 처분을 내릴 수는 없잖아요. 이번 사건의 경우 폐목재와 완구용 화약, 쇠파이프를 모아 총기를 만들었는데, 그렇다고 완구용 화약을 전면 규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결국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악용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제총기 제작 이력이나 총기 불법 사용 이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경찰 당국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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