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9

2005.08.23

국정원 숙청, 직원을 敵 만들다

정권 바뀔 때마다 칼바람… 수십년 몸담은 조직서 쫓겨난 직원들 배신감에 치 떨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8-18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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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숙청, 직원을 敵 만들다
    # 에피소드 1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1999년 4월13일) 환송회는커녕 짐 하나 들어주는 사람 없이 도망치듯 차를 몰아 빠져나오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불법 도청조직 미림팀을 이끈 공운영(58·구속) 씨는 변호인에게 20년 넘게 일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서 쫓겨날 때의 어수선한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도 공운영 씨의 심정과 똑같았다.”

    국정원 간부(부이사관) L 씨가 ‘숙청’된 건 김대중(DJ)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1998년



    4월, 총무국 무보직으로 발령받으면서였다. 명예퇴직 종용에 맞서 버티다가 직권면직돼 국정원을 떠난 게 99년 봄. 중정에 들어온 지 꼭 23년 만의 일이었다.

    L 씨 역시 공 씨와 마찬가지로 비가 어수선하게 내리던 4월의 그날을 잊지 못한다. L 씨 같은 간부 100여명과 공 씨 같은 비간부 수백명이 청춘을 불사른 ‘직장’을 타의로 떠났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들이닥친 ‘점령군’에게 ‘숙청’당한 것이다.

    “하루아침에 쫓겨난 배신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공운영 씨가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지만 그가 당시에 느꼈을 배신감만큼은 이해한다.”

    면직된 직원들 복직 투쟁도 불사

    L 씨는 TK(대구 경북) 출신이다. 면직된 직원들의 상당수는 특정 지역 출신이었다. 50년 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진 만큼, DJ의 국정원은 지난 정권에 협조한 이들에 대한 청산을 바랐다.

    “조직이 조직원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조직원은 조직을 배반하게 마련이다.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대통령이 바뀌어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정보를 다루면 되는 게 정보기관이다. 그런데 국정원은 직원들을 적으로 만드는 일을 저질렀다.”

    # 에피소드 2

    이언오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삼성 근무 시절 기자들에게 아이디어의 보고로 통했다. 찾아온 기자에게 ‘기삿거리’를 꼭 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정보력도 뛰어났다.

    이런 그가 최근 국정원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긴 게 확인됐다(주간동아 496호 ‘News in News’의 보도 참조). 국정원 역시 그의 아이디어와 능력을 탐낸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숙청, 직원을 敵 만들다

    국정원을 방문한 김영삼,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왼쪽부터).

    이 전 전무의 국정원행(行)의 배경과 의미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국정원 측은 “직원에 대해 어떠한 것도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주간동아는 비공식적으로 그의 국정원 입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전 전무는 국정원 기조실장과 동향(부산)이기도 하다.

    국내 유수 기업의 임원을 거친 인사가 국정원으로 자리를 옮긴 건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기부 X파일(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전 회장의 대화)을 읽어본 이들은 대화 내용뿐 아니라 삼성의 정보력에도 놀랐다. 삼성 구조본 정보팀은 ‘SCIA’로도 불린다. 국내 기업 정보팀 중 정보력에서 최고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주요 정보가 집약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다. 이 전 전무가 옛 직장 동료를 만나면 어떻게 되겠느냐. 사석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실수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경제계 인사 C 씨)

    이 전 전무가 함부로 국정원의 일을 외부로 전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비딱한 시선을 마냥 나무랄 수도 없다.

    전직 국정원 직원 A 씨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기관을 거듭나게 한다면서 별별 일을 다 했다. 기업 출신 인사를 뽑는 것보다 직원들의 신분을 보장해 사기를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 에피소드 3

    DJ 정부 때 직권면직된 앞서의 L 씨는 이후 지루한 복직 투쟁에 나섰다. 공직자로서 명예회복을 원했기 때문이란다. 정권의 주인이 바뀐 2003년 가을, L 씨는 다시 선후배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면직이 부당하다며 국정원과 벌인 법정 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L 씨를 비롯해 복직한 이들에게 보직을 주지 않았다. 적응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교육과정을 이수토록 한 게 전부였다. 국정원은 계급정년을 이용해 다시 L 씨를 쫓아내다시피 한다.

    L 씨는 2004년 6월30일 계급정년에 달하여 ‘당연퇴직’된다는 통보를 받는다. 국정원에서 면직된 기간에 승진심사를 받지 못해 옛 국가정보원직원법에 따라 계급정년에 걸린 것이다. 3급 직원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2급으로 승진하는 게 관례였다고 L 씨는 주장한다.

    “배신감이 다시 하늘을 찔렀다.”

    L 씨는 다시 소송에 나섰고 재판에서 거푸 승리했다. 1심 법원은 L 씨의 계급정년 확인 청구에 대해 계급정년이 2008년 11월6일까지라고 확인했다. 법원은 또 원고들의 다른 요구도 ‘모두’ 인용(認容)했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불복하고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간다. 옛 직원을 ‘두 번 죽이고 또 한 번 죽이려’ 하는 것이다. 대법원 재판 결과에 따라 2006년 상반기께 다시 국정원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이는 L 씨는 지루한 소송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서다. 조직이 조직원을 보호해주지 않으면 누가 조직을 위해 일하겠는가. 99년 숙청은 줄 서기와 보신 의식을 만연케 했다. 지금 바로잡지 못하면 제2의 공운영은 물론이고, 외국에 정보를 팔아넘기는 직원까지 나타날지도 모른다.”

    줄 서기 만연·사기는 바닥 ‘부작용’

    인사는 만사다. 국정원 인사는 직원들이 국가보다 권력에 충성하도록 부채질했다. 공운영 씨 사건은 ‘나도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 ‘권력에 줄을 대야 살아남는다’는 풍조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얘기다. YS 정부 때 YS의 차남 현철 씨 등 권력 실세가 국정원 인사를 좌지우지하면서 권력에 대한 충성 경쟁이 시작됐다. DJ의 정권이 자행한 대대적인 조직원 숙청은 이러한 풍조에 불을 질렀다.

    국정원은 61년 중앙정보부로 출범한 이래 수장이 내부 승진으로 임명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으며, 원장 아래 최고위직인 차장의 경우도 외부 인사로 채워진 경우가 많았다. 역대 국정원장들은 정권 실세의 사적인 정보기관장 노릇을 했다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정원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앞세운 인적 청산이 반복돼왔다”면서 “권력보다 국가를 우선시하기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군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계급정년’은 L 씨의 경우처럼 ‘비주류’를 숙청하는 도구로 이용됐다. 전직 직원 B 씨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는 원장은 임기제를 시행하고, 차장은 내부 승진을 규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직원들의 신분도 규정돼야 정권의 사조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신분 보장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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