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2

2005.07.05

어린이의 적 ‘로타바이러스’ 경계령

여름철이면 나타나는 ‘장염’의 주범 … WHO 등 예방 필요성 인식, 국내 백신 곧 출시

  • 콸라룸푸르=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5-06-30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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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의 적 ‘로타바이러스’ 경계령

    \'멕시코의 한 의료진이 아이에게 로타바이러스 경구용 백신인 로타릭스(오른쪽 원 안)를 먹이고 있다.

    물놀이를 좋아하고, 하루 종일 친구들과 노느라 바쁜 개구쟁이 철수(8)는 갑작스런 설사와 구토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 학교에도 가지 못한 철수의 병명은 ‘장염’. 의사가 내린 정확한 진단명은 전염병의 하나인 ‘로타바이러스(Rotavirus)’에 의한 장염이었다. 의사는 로타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특별히 없으므로 일단 열을 내리고 전해질을 공급하면서 지켜보자고 했다. 철수 어머니는 덜컥 겁이 났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법정 전염병에 걸렸지만, 의사는 학교에 가지 말고 병원에 입원해 격리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날씨가 무덥고 장마가 시작되면서 설사병(장염)의 계절이 찾아왔다. 식생활 환경이 개선되면서 이제 후진국 병이 돼버린 전염성 설사병. 전염의 원인이 되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 및 대비책이 나름대로 개발되어 있는 까닭에 웬만한 설사병은 의료 선진국에선 발생 추이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구토와 설사 동반 … 탈수증으로 사망할 수도

    하지만 한 국가의 공중보건 또는 경제적 수준의 향상과 관계없이 증가 일로에 있는 전염성 장염이 있다. 바로 ‘로타바이러스’에 의한 장염이다. 장 내에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는 심각한 구토 증상과 고열을 동반한 설사가 가장 큰 특징으로, 제대로 처치하지 않을 경우 탈수증으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심각한 점은 나이가 어릴수록 로타바이러스에 의한 설사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것. 주로 생후 6~24개월의 유아들에게 가장 높은 유병률을 보이지만,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그보다 어린 3개월 정도의 영아들도 흔히 감염된다.

    2005년 6월17일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로타바이러스에 관한 미디어 회의에 참가한 필리핀대 의대 룰루 브라보 박사(감염 및 열대병학 전공)는 “로타바이러스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발생하며 국가의 경제적 수준에 상관없이 전 세계 모든 어린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로타바이러스 감염 발생률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비슷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공중위생과 식수 및 상하수도 시설, 보건관리를 향상했음에도 감염을 효과적으로 예방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가한 ‘아시아 로타바이러스 감시망’(Asian Rotavirus Surveillance Network·이하 ASRN) 토니 넬슨 교수(홍콩 중화대학 의학부 소아과)는 “로타바이러스 감염은 영·유아들에게 고통을 주며 부모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길 뿐 아니라, 치료비 및 자녀를 돌보느라 부모가 결근하면서 발생하는 노동력의 손실과 같은 경제적 부담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아시아에서 로타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세계보건기구(WHO)의 노력에 부응해 조직된 ASRN은 감시망을 통해 아시아에서 로타바이러스 감염의 역학적 특성을 밝히고 있는 단체. 연구 결과에 따르면 5세 이하의 어린아이 중 대부분은 로타바이러스에 의한 설사를 경험하며, 5명 중 1명이 병원을 찾고, 65명 중 1명이 입원하며, 293명 중 1명꼴로 사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 세계적으로는 매년 약 1억2500만 건의 로타바이러스성 위장염이 발생하며, 그로 인해 1분에 약 44만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게 의학계의 설명이다.

    어린이의 적 ‘로타바이러스’ 경계령

    로타바이러스 미디어 회의에 참가한 필리핀대 의대 룰루 브라보 교수(왼쪽)와 홍콩 중화대학 의학부 토니 넬슨 교수.

    국내에서는 2003년 442건의 로타바이러스성 장염이 발생했다고 보고된 바 있지만 보고체계의 미비로 정확성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일산 지역에서만 4명의 영·유아가 사망하는 등 로타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영·유아의 사망 사례가 알려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일부 지역에서 잡힌 통계라 믿을 만한 것은 못 된다.

    이처럼 로타바이러스가 위험한 이유는 주로 물에 의해 감염이 일어나는 수인성 전염병과 달리, 구강 경로를 통해 감염이 이루어지기 때문. 음식물의 섭취는 물론이고 물, 사람과 사람의 접촉, 심지어 감염자가 사용한 물건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감염이 일어난다.

    수인성 전염병과 달리 구강 경로 통해 감염

    문제는 현재까지 국내에는 로타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치료제나 백신이 시판되지 않았다는 점. 룰루 브라보 박사는 “현재로서는 로타바이러스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으며 설사와 함께 구토 및 탈수증을 보이는 환자에게 체액을 공급해주는 대중적인 요법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로타바이러스의 감염을 막기 위한 최선책은 이에 대한 백신을 개발·보급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세계보건기구는 로타바이러스 백신의 개발을 공중보건의 우선 과제로 지정했으며, 전 세계 의학전문가들은 로타바이러스의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 개발에 발벗고 나섰다. 현재 유럽과 미국,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서 로타바이러스 백신 개발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며, 그중 세계적 제약사인 글락소 스미스클라인(GSK) 바이올로지컬스는 멕시코(제품명 로타릭스)에서 이미 백신을 상용화한 상태. GSK 백신 개발 담당 김경호 상무는 “임상실험 결과 이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 내약성이 입증되었다”며 “국내에서도 7월에 제품 출시를 위한 임상실험이 시작될 예정이며, 빠른 시일 내에 백신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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