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9

2005.06.14

‘순창고추장’ 이름 함부로 쓰지 말라

  • 강지남 기자 larya@donga.com

    입력2005-06-10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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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고추장’ 이름 함부로 쓰지 말라
    대상㈜이 2년에 걸친 소송 끝에 미국에서 순창고추장의 이름을 지켜냈다. 아시아 식품 유통전문업체 R사(社)를 상대로 진행한 ‘상표 무효화 및 업무방해 금지’ 소송에서 승소한 것. 메릴랜드주 연방법원은 ‘R사의 순창 상표 사용 행위는 지리적 오인 표시 행위이므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최종 판결했다. R사는 1987년 순창을 ‘순수한 창(Pure Spear)’이란 뜻을 가진 단어라며 상표권을 등록한 뒤 중국에서 수입한 고추장을 순창고추장으로 판매해왔다.

    싸움은 미국에서 아시아 음식 시장이 성장하면서 비롯됐다. 미국의 대도시 등지에서 한국 음식을 비롯해 아시아 식재료를 파는 가게가 대형 할인마트 규모로 커지면서 R사의 순창고추장과 대상의 청정원 순창고추장이 경쟁하게 된 것. R사가 대상 제품을 유통하는 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업체들은 대상 제품 판매에 난색을 표했다.

    이에 대상 품질경영실은 ‘순창고추장’ 지키기에 나섰다. 이번 소송을 진두지휘하면서 미국을 10여 차례 다녀온 김학태 품질경영실 실장은 “미국인 변호사들과 미국 재판정에 순창이 지구상 어디에 있는 지명인지, 고추장이 어떤 음식인지 등을 이해시키는 등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상대가 순창고추장은 자신들이 개발한 브랜드며, 오히려 한국에서 순창고추장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해 기가 막혔습니다. 단지 청정원 순창고추장 판로를 잃지 않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지역특산물 브랜드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소송을 이끌었습니다.”

    승소하는 데는 조지워싱턴 대학의 언어학자 교수와 아시아문화학 교수의 증언에 힘입은 바가 컸다. 언어학자는 재판부에 순창이 고유 지명임을 설명했고, 아시아문화학 교수는 순창이 전통적으로 고추장의 산지로 유명했음을 알렸다. ‘중앙 공무원들이 순창으로 출장 갔다 오면서 순창고추장을 선물로 사왔다’는 한 일간지의 1959년 기사는 순창고추장이 지역특산물임을 입증하는 주요한 증거가 됐다.



    대상이 이번 소송에 들인 비용은 무려 200만 달러(약 20억2000만원). 청정원 순창고추장의 미국 수출액이 연간 300만 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매우 큰 비용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미국 일부 유통업체에서는 한국의 지역특산품을 이상한 뜻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상표등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완도를 ‘Complete island’로, 영광굴비의 영광을 ‘Grace’로 등록하는 등 전통 지역명을 훼손하는 것이지요. 이번 승소가 이런 잘못된 상표권 등록을 시정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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