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4

2005.05.10

어린 형제에게 떨어진 돈벼락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5-04 17: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어린 형제에게 떨어진 돈벼락
    대니 보일 감독의 신작 ‘밀리언즈’에는 욕도 안 나오고 폭력도 없다. 결정적으로 주인공은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두 소년이다. ‘트레인스포팅’과 ‘섈로우 그레이브’의 감독이었던 이 남자가 갑자기 정신이 나간 건가?

    하지만 꼭 대니 보일의 이름에만 매달려 ‘밀리언즈’를 볼 필요는 없다. 그의 영화들은 각본가를 많이 타는 편이기 때문이다. ‘섈로우 그레이브’ 이후 그가 거둔 성공의 반은 그의 각본가 파트너였던 존 호지의 공로다. 그리고 ‘트레인스포팅’의 성공에서 어빈 웰시가 쓴 원작의 무게를 무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면 ‘밀리언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대니 보일이 아니라 원작자이며 각본가인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다. 그리고 ‘24 파티 피플’에서부터 ‘밀리언즈’에 이르는 넓은 창작 세계를 자랑스럽게 과시할 수 있는 인물도 보이스다.

    ‘밀리언즈’의 기본 설정은 폴 베르나의 동화 ‘머리 없는 말’과 비슷하다. 영국에서 파운드화가 유로화로 바뀌기 직전, 대규모의 현금 강탈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돈의 일부가 막 이사온 소년이 아지트 삼아 철도 옆에 만든 종이상자 집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 뒤부터 흘러가는 이야기는 악당들과 싸우는 아이들을 내세운 단순한 모험담이었던 ‘머리 없는 말’의 설정에서 벗어난다. 소년의 형이 유로화 통합 전 열흘 동안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돈을 쓰느라 정신없는 동안 소년은 어떻게 하면 이 돈으로 세상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이 소년이 가톨릭 성자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고, 툭하면 이 사람들이 나오는 환상 혹은 비전을 본다는 이야기를 했던가?

    원작자인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는 ‘밀리언즈’에서 소유의 문제와 영적 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한다. 자칫 따분하고 위선적이 될 수 있는 이 주제가 빛을 발하는 건 그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의 주제를 재구성하였기 때문이다. 주인공 소년 데미안의 논리는 일곱 살짜리 소년의 사고 수준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이치에 맞는 전개를 거치면서도 디테일의 결여와 아이다운 비약이 가득하다. 덕택에 영화는 은근히 이 세상의 정상적인 논리에서 벗어난 초현실주의적 분위기를 풍긴다.



    ‘어린이 영화’에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밀리언즈’는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다. 성인용 영화에서는 다소 불필요한 잔재주처럼 느껴졌던 대니 보일의 스타일이 이 정신 나간 아이들의 이야기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아이들의 이야기’라는 핑계를 통해 보이스와 보일은 다른 데서라면 쑥스러워서라도 못할 법한 다양한 영화적 시도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종종 그런 장식이 지나쳐 신경질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밀리언즈’는 주제 면에서나 스타일 면에서나 알맹이가 꽉 찬 영화다. 5월4일 개봉예정.

    어린 형제에게 떨어진 돈벼락
    ● Tips

    대니 보일

    1997년 전 세계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한 영국 감독. 데뷔작 ‘섈로우 그레이브’와 출세작 ‘트레인스포팅’ ‘인질’ ‘비치’는 충격적 소재와 섹스, 폭력, 마약, 욕설 등으로 점철되었다 ‘밀리언즈’는 이전의 영화들과 많이 다르지만, 풍자와 위트는 여전히 유쾌하다.





    영화평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