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6

2005.03.15

‘수프’의 깊은 맛, ‘오리구이’의 진한 맛

  • 입력2005-03-10 17: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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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프’의 깊은 맛, ‘오리구이’의 진한 맛

    씹을수록 바삭한 껍질과 육즙이 감도는 살이 와인 소스로 버무려진 ‘오리가슴살 구이’.

    최근 인기 있는 요리 만화 ‘식객’이나 ‘미스터 초밥왕’, 그리고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 등을 보면 요리 솜씨를 겨루는 장면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물론 이러한 장면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끌어가기 위한 장치이기는 하지만,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 마치 무림 고수들이 벌이는 결투처럼 자못 긴장감을 준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요리 세계 또한 솜씨 있는 요리사들이 서로의 기량을 알아보려는 욕망이 강한 곳이다. 어떤 식당에 ‘빵빵한’ 주방팀이 꾸려졌다는 소문을 들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 확인해보는 이가 바로 요리사일 것이다. 음식을 받아 들고 맛있게 먹기보다는 얼마나 좋은 재료를 들여왔는지, 재료를 제대로 다루었는지를 보는 것이 요리사의 직업 근성이다. 이렇듯 상대방의 ‘내공’ 정도를 탐지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음식을 음미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근처에 위치한 ‘듀파르’에 솜씨와 열정을 갖춘 요리사들이 모였다고 한다. 올해 새로 문을 연 프랑스 레스토랑 ‘듀파르’가 자리잡은 건물 1층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핸드 드립 커피와 직접 만드는 케이크로 소문난 같은 이름의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우아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와 커피, 케이크의 섬세한 맛에 매료되어 이 카페를 즐겨 찾는 이들이 꽤 많다.

    레스토랑 실내 또한 차분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은은한 조명 아래 식탁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포도주 잔과 식기들도 신중하게 선택된 것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의상 디자이너의 세심한 손길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또한 차분하게 손님을 맞는 종업원들의 움직임도 전체 분위기와 잘 어우러진다.

    ‘수프’의 깊은 맛, ‘오리구이’의 진한 맛

    ‘듀파르’의 인테리어와 테이블웨어에서 주인의 세심함이 느껴진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설렘이 앞선다. 사실 어수룩한 요리사가 고수에게 한 수 배우러 온 셈이니까. 입맛을 깨우기 위해 가장 먼저 나온 ‘캐비어와 감자퓨레’는 앙증맞다. 흰 접시 위에 감자와 함께 놓여 있는 캐비어는 화폭에 찍혀 있는 한 점이라고나 할까. 잠시 머뭇거리다 한 입에 집어넣은 캐비어와 간 감자가 입 안에서 녹아내린다. 아쉬운 듯하면서도 은근히 퍼져가는 맛이 깔끔하기 이를 데 없다. 절제미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다음에 나온 ‘신선한 허브와 해산물 샐러드’는 풍성하다. 양에서의 강약 조절인가. 각종 야채와 가리비, 게살, 새우 등이 프렌치 드레싱과 함께 접시에 그득하다. 해산물이 싱싱한 생물이라 맛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가끔씩 냉동된 것을 쓰면서 맛이 강한 드레싱으로 이를 감추려는 해산물 샐러드와는 확연히 다르다. 올리브유와 와인 식초로 이루어진 프렌치 드레싱은 야채와 해산물 자체의 맛을 그대로 살려준다. 자칫하면 샐러드의 맛을 밋밋하게 할 수 있는 이 드레싱의 사용은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음식은 재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만, 재료를 살려내는 솜씨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수프’의 깊은 맛, ‘오리구이’의 진한 맛

    싱싱한 생물 해산물로 차려진 ‘허브와 해산물 샐러드’(위).세계 각국의 와인 150여종이 갖춰진 와인 셀러와 케이크 쇼케이스

    ‘프렌치 양파 수프’는 깊은 맛을 낸다. 한 숟가락 떠넣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다. 이 수프는 단순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어느 수프보다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만만하게 보았다가 실패한 적이 많아 알게 된 것이다. 양파를 너무 볶으면 자칫 태우기 쉬워 수프에서 쓴맛이 나며, 양파를 설볶으면 육수에 풀어져 수프가 양파죽이 되어버린다. 마늘, 후추 같은 향신료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시원하고 깊은 국물 맛을 내지 못한다. 프랑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프렌치 양파 수프’는 우리의 된장국처럼 요리사의 음식 솜씨를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척도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팬에 구운 ‘프와 그라’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크림 같아 고소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가져다준다.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다. ‘농어구이’ 또한 껍질 쪽을 바삭하게 구우면서도 육즙을 잘 보전하여, 칼을 대면 부드럽게 잘린다. 다시금 쿠킹의 중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크림소스와 촉촉한 생선살의 어우러짐이 사뿐하다.

    ‘오리가슴살 구이’는 오리 특유의 냄새 때문에 우리에게 좀 낯설지만, 그 독특한 맛에 빠져들면 어떤 육류 요리보다 더 찾게 된다. 오리가슴살은 껍질 쪽을 천천히 가열해 기름을 빼내면서 구워낸다. 씹을수록 바삭한 껍질과 붉은 육즙이 감도는 살은 달콤한 포르토 와인 소스와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낸다.

    디저트로 나오는 ‘라즈베리 아이스크림’은 마무리로 그만이다. 다양한 종류의 차와 커피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미 마니아들 사이에 정평이 나 있으니 이를 마셔보는 것은 행운인 셈이다. 하지만 진짜 행운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재료의 맛을 풍부하게 살려낸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더욱이 그 음식과 분위기가 잘 어우러진 레스토랑에서.

    레스토랑 안에 널찍하게 자리잡고 있는 와인 셀러에는 다양한 나라의 와인 150여종이 갖춰져 있어 훌륭한 음식들에 어울릴 와인을 고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위스키와 코냑, 맥주, 칵테일 등도 있어 음료의 선택 폭이 넓다. 2인에서 10인까지 수용할 수 있는 별실도 마련되어 있다. 둘이서 오붓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장미색 톤의 별실이 인상적이다. 화창한 날씨에 식사하기 좋은 뒷마당도 이 레스토랑의 매력이다.

    chjparis@hanmail.net

    ‘수프’의 깊은 맛, ‘오리구이’의 진한 맛
    ‘듀파르’

    위치 :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서울고 방향으로 가다 보면 서초3동 사거리 지나자마자 왼편에 있다.

    연락처 : 02-3474-3006

    추천 메뉴 : 해산물 샐러드(1만7000원), 프와 그라(1만8000원), 모듬 육류요리(4만원)

    점심 정식(2만9000원부터), 저녁 정식(5만원부터)

    영업시간 : 12:00-15:30(14:30 주문 마감), 18:00-22:30(21:30 주문 마감)

    휴무 : 설, 추석 명절 당일, 주차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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