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6

2005.03.15

따분한 그녀 … 알고 보니 비밀 덩어리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3-10 16:5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따분한 그녀 … 알고 보니 비밀 덩어리
    영화는 동적이고 외향적인 장르다. 흥미로운 영화가 되려면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을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게 밖으로 터뜨려야 하고 그걸 곧 그럴싸한 액션과 연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디아나 존스는 이상적인 영화 주인공이다. 그의 갈등과 고민은 단순하고, 그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악당들을 때려잡고 고고학적 유물들을 발견한다.

    인디아나 존스의 대척점에 ‘여자, 정혜’의 주인공인 정혜가 있다. 정혜는 언뜻 보면 영화 감독의 악몽이다.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는 이 여자는 도대체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무표정한 킬러라도 되어 밤마다 정부 요인들을 암살하러 다니는 것도 아니다. 정혜는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이 보기에도 지겨울 만큼 뻔한 삶을 반복한다. 가끔 직장 동료들과 외식을 하고 TV 홈쇼핑에서 김치를 주문해다 먹고…. 그나마 극적인 일이라면 길 잃은 새끼고양이를 주워다 키우는 것이다. 이런 영화를 두 시간 동안 봐야 하나? 젠장.

    그러나 ‘여자, 정혜’는 생각 외로 흥미진진하고 극적이다. 이 따분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여자를 따라가는 동안 관객들은 자신들이 하나의 미스터리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 책 커버만으로 내용을 평가할 수는 없다. 멀끔한 외모의 우체국 직원이라는 정혜의 커버 밑에는 흥미진진한 이중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는 결코 평범하다고 할 수 없는 정혜의 성격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성격의 기원이거나 적어도 몇몇 행동의 동기를 설명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비밀이다. 영화는 정혜의 평범한 듯한 삶을 느긋하게 따라가면서 그 비밀을 양파껍질 벗기듯 조금씩 벗겨낸다. 두 번째 비밀은 솔직히 조금 평범한 선택이라(그렇다고 덜 잔인하다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덜 재미있다는 건 아니다. 결국 미스터리에서 중요한 건 결말이 아니라 미스터리 자체와 그걸 해결하는 과정에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두 번째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정혜는 여전히 흥미진진한 인물로 남는다.

    ‘여자, 정혜’는 감독 이윤기의 데뷔작이고, 탤런트 김지수의 첫 번째 영화다. 만약 지난 10여년 동안 김지수의 연기 경력을 따라왔던 사람들이라면 이 배우의 익숙하면서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낯선 모습에 놀랄 것이다. 테크닉이 특별히 달라진 건 아니다. 그렇다고 외모에 변화를 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익숙한 듯한 연기가 끈질기게 따라붙는 이윤기의 카메라 속에 들어오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여자, 정혜’는 김지수라는 배우의 재발견이기도 하지만, 같은 연기와 테크닉이 다루는 방식과 재료에 따라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증명해주는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하다.



    영화평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