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05.03.15

무선 시대에도 ‘유선’ 포기 못하는 까닭은

  • 입력2005-03-10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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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8월14일 저녁 5시경, 세계 최대의 첨단복합도시 뉴욕은 느닷없이 정전에 빠졌다.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어서 곧이어 도시 전체가 암흑에 잠기자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대혼란이 일어났다. 전력 공급이 재개된 것은 이튿날 오전이었다. 이는 북미 동부지역 전체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고 유선전화망까지 마비되는 사태로 번졌다.

    이 사태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10억 달러 규모가 넘을 것으로 계산됐고, 무선전화망 강화를 요구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뉴욕 정전 때는 시각장애인들이 눈뜬 시민들을 안내하는 기현상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월28일 오전 10시 반부터 약 8시간 동안 수도권 일대와 영남지역의 KT 유선전화망이 마비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휴대전화 보급률도 과포화된 상황에서 유선전화 불통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선전화야말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기간통신망이다. 단순히 개인과 가정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뿐 아니라 금융거래와 산업 정보가 흐르는 VAN(부가가치 통신망)의 구실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망이 먹통되어 있는 시간 동안 업소들의 신용카드 결제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고, 통신망을 이용한 기업들의 폰뱅킹은 마비되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더 위험한 일은 112, 119 등 긴급신고 전화조차 불통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안전망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긴급한 ‘간첩신고’는 비교적 드문 현상이므로 113은 제외하기로 하자). 이번 사태는 휴대전화가 급속하게 우리 신체의 일부처럼 기능하게 되었음에도 유선망에 대한 투자와 관리가 아직도 중요함을 일깨웠다.

    21세기에 접어들어 강력한 산업화 정책을 추진하는 중국의 경우 광활한 영토에 유선망을 매설하는 데 막대한 자본 투자가 필요하여 다른 대안을 찾기도 했다. 아예 차세대 기술을 바로 도입하여 저궤도위성을 통한 무선망을 표준화하거나, 아니면 전력 공급선을 정보통신망으로 겸용화하는 방안 등을 모색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산업화된 대부분의 나라들은 기존의 동축 케이블을 실리콘 섬유로 만들어진 광케이블로 바꿔가면서 여전히 유선망에 의존하고 있다.



    KT가 발표한 원인은 이렇다. 평소 월요일 오전이라면 2900만통 정도이던 통화량이 3·1절 공휴일을 앞두고 4200만통으로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첫째, 수요예측조차 제대로 안 되는 서비스 관리의 문제 둘째, 설혹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8시간 동안 복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느려터진 위기 대응방식은 첨단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시민적 상식으로 볼 때 KT는 유죄인 셈이다. vincent2013@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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