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5

2004.12.23

獨, 이슬람문화에 대한 관용 “그만”?

‘이슬람 여성 차별’ 영화화한 감독 피살 발단 … 다문화 정책 수정론 잇단 제기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net

    입력2004-12-16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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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다. 그러나 독일 전국에는 1000개가 넘는 이슬람 사원이 퍼져 있고, 360만여명의 이슬람 신자들이 살고 있다. 독일에 이슬람 신자가 많은 이유는 1950∼60년대 독일 경제 부흥기에 중동 지역, 특히 터키에서 건너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 인력을 파견했던 같은 시기에 독일에 진출한 이슬람 신자들은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이 나라의 경제 부흥에 크게 기여했다.

    이들이 독일 사회 발전에 기여한 바를 부인할 수 없기에 독일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타 문화에 대해 관대한 모습을 보여왔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해왔다. 반세기 전 자기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다 전 세계를 전쟁의 혼돈에 몰아넣었던 아픈 과거를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현 집권세력인 사민당-녹색당 연합정부는 줄곧 다문화(Multi-tur) 정책의 실천을 역설해왔다.

    이슬람 사원에 화염병 던진 사건도 발생

    그러나 이러한 다문화 정책, 특히 이슬람 종교와 문화에 대한 독일 사회의 관용 정신이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 독일인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스럼없이 이용하던 터키인 가게를 꺼리고, 경찰이나 신문 칼럼니스트 등 여론 주도층은 이슬람권 사람들에 대한 경계경보를 울리고 있다. 심지어 쾰러 연방대통령까지 가세해 독일의 다문화 정책이 좌초 직전의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달 일어난 네덜란드 영화감독이자 신문 칼럼니스트인 테오 반 고흐 살해 사건이 이 같은 변화의 발단이 됐다. 현장에서 붙잡힌 용의자는 모로코 태생의 네덜란드 국적을 지닌 이슬람교도였고, 피살자 고흐는 평소 사회 고발적인 발언을 자주 했던 사람이다. 고흐가 제작한 영화 ‘복종’이 8월 TV를 통해 방영됐다. 영화는 이슬람 여성들이 남성들에게서 받는 부당한 대우와 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여성들의 몸, 그것도 구타당해 멍이 든 몸을 보여준 장면은 충격이었다. 이 장면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모독으로도 간주될 수 있는 문제적 도발이었다. 영화가 방영된 뒤 고흐는 수차례 협박을 받았다. 그럼에도 경찰 보호를 거절하다가 11월2일 오전 9시경 암스테르담 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이 사건의 파장은 즉각 독일로 전해졌다. 더욱이 사건의 배후 조정자로 알려진 레두안 알 잇사르가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한 흔적이 드러나자 독일 사회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사건 직후 네덜란드에서는 기독교 교회와 이슬람 사원을 표적물로 삼은 방화 사건이 잇따랐는데, 그 불씨가 독일로 날아와 11월18일 잔스하임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 화염병이 투척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같은 사태를 두고 현재 독일 정치권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논쟁의 주제는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산발적인 테러사건 자체가 아니라, ‘유럽에서 수십년 살았는데도 어떻게 그토록 과격할 수 있는가’란 문제다. 중동 출신의 이슬람 신도라 하더라도 유럽에서 태어나서 정상 교육을 받고 성장했는데 어떻게 테러를 벌일 수 있는지, 원인은 무엇인지, 혹시 독일의 외국인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가 현재 독일 사회의 주된 관심사인 것이다.

    시사주간지 ‘차이트(Zeit)’의 사설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꼬집어 지적하고 있다. 지오반니 디 로렌초 주간은 “터키인 이민과 관련된 정책은 지금까지의 결과로 평가할 때 놀랄 만큼 성과가 없다”고 진단하면서 이슬람권 사람들의 ‘평행세계(Parallelwelt)’로 가는 경향을 지적했다. 독일 연방정부의 오토 실리 내무부 장관 또한 얼마 전 국회 연설에서 “독일이 평생사회로 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평행세계’ 혹은 ‘평생사회’는 사회학에서 쓰는 전문용어인데, 최근 들어서는 도처에서 듣게 되는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이 말은 두 개의 문화가 서로 조화를 이뤄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평행선을 그리며 진행된다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베를린이나 함부르크 같은 대도시에는 터키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다. 이곳에서 터키인들은 터키 상점을 이용하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터키어를 배우며, 집에서는 터키 TV 방송을 본다. 즉 몸은 독일에 있지만 얼마든지 독일인과 접촉하지 않고, 또 독일사회에 동화되지 않은 채 터키 문화에 따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회 갈등 위험요소가 될 뿐 아니라, 국가 운영 측면에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독일어를 제대로 구사하기 어렵고, 학교생활과 취업에 곤란을 겪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사회보장 혜택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외국인이 자신의 언어, 생활습관, 문화 등을 유지하며 살도록 한 것이 외국인에 대한 배려이자 관용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실상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슬람 교도, 설교 통해 독일인 비꼬아

    한편 독일에서 나고 자란 이슬람 여성의 인권문제는 또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일종의 상품처럼 판매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독일에서 성장한 이슬람 여성들이 아버지가 정해놓은 결혼을 거부하다 처절한 복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슬람 문화에 따르면 결혼을 거부하는 행위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가문의 신용과 명예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복수’는 정당하다. 실제로 몇 달 전 슈투트가르트 인근 도시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터키계 변호사 세이란 아테스씨는 한 시사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다른 문화와 전통에 대해 관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여성이 희생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논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한 이슬람사원의 예배 장면이 전국적으로 보도되는 일도 있었다. 11월 초 베를린의 이슬람 사원에서 행해진 설교를 독일 국영방송인 ZDF가 힘겹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은 그 내용이다.

    “좋은 독일인도 있으나 이들은 쓸데없는 비신자일 뿐이다. 이들은 저 세상에서 지옥의 불바다 세례를 받게 된다. 독일인들은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기 때문에 땀과 악취가 난다. 그래서 향수를 사용하며, 향수 제조업체가 육성되었다.”

    방송이 나간 뒤 설교자 아부 카타다는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독일 수도 한복판에서 독일인에 대한 이런 모독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이런 것도 과연 그들의 색다른 문화로 인정해줘야 하는지에 대해 되묻는 계기가 되었다.

    외국인의 다채로운 고유 문화를 인정해주는 것이 독일에도 도움이 된다는 다문화 정책이 현재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슈뢰더 총리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으며, “우리가 외국인을 받아들이려는 성의를 보이면 외국인 측에서도 그만큼의 성의와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야당인 기민당에서는 ‘주도문화’ 개념을 내세우며, 독일 땅에서는 누구나 일단 독일의 가치를 따라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구촌 세계, 그러나 서로 이질적인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며 인류 공영을 꿈꿀 날은 아직 멀기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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