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4

2004.12.16

공안 검찰이 살아남는 법

  • 차 병 직ㅣ변호사ㆍ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입력2004-12-10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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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 법안 상정을 두고 여야 간 신경전이 대단하다. 50년 넘게 이 사회의 한구석을 지배해온 이 법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노무현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이 법이 사라질지 자못 흥미진진하다.

    어쨌든 국보법 폐지의 실현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런 초유의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국보법을 무기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검찰 공안부의 위상이 국보법과 함께 흔들리고 있다.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는 ‘검찰 공안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공안부를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정말 격세지감이 든다.

    공안(公安)이란 그야말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다. 그렇다면 모든 법 규범의 목적이 공안일 수 있다. 범위를 조금 좁히면, 모든 형사법의 목적은 분명히 공안 유지다. 그럼에도 검찰에 공안부를 따로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과 친숙한 서비스 ‘발상의 전환’ 필요한 때





    우리가 이해하기로는, 공안 검찰이 맡은 기능은 자유와 권리의 주체인 개인이나 단체가 불러일으키는 혼란과 질서를 조율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검찰 공안부의 업무 범위는 작위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공과 남북교류 관련 사건 외에도 학원·노동·외사·선거·집회 등의 사건을 공안 사건 또는 공안 관련 사건이라 이름 붙여놓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이 공안부의 업무 대상이어야 할 필연적인 사유는 없다. 공안 검찰 스스로 업무 범위를 확장하여 정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것을 위세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공안 업무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 업무를 공안부라는 이름의 울타리 안에 둘 근거는 전혀 없다. 공안 사건은 반드시 처리해야 할 대상이지만, 공안부는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다. 공안부란 사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공안부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축소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폐지할 것인가. 그 결정권은 공안 검찰 스스로가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검찰 공안부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검찰에 개인의 사상과 이념을 검증하는 권한이 계속 부여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국보법은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폐지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래 사회에서는 개인이 사상이나 이념에 의해 곤경에 처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나 테러 같은 물리적 폭력이 현실의 위험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공안 검찰은 사상과 양심을 저울질하던 과거의 습관에서 벗어나 서둘러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갖추어야 한다.

    대검찰청에 공안부가 설치된 지 30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여곡절의 영욕을 거쳤다. 김대중 정부 시절엔 신공안 개념이란 걸 내세워 탈바꿈을 시도해본 적도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다시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신선한 공안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첫 번째로 인식해야 할 것은 검찰을 위한 공안이 아닌 국민을 위한 공안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쉽고 당연한 말 같지만, 새삼 확실한 인식의 변환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공안 검찰이 나름대로 노력을 했는데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거기에 있다. 스스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했을지 모르나, 공안 검찰이 권한을 휘두르는 모양새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안 검찰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국민에게 좀더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구태의연하게 두려움만 조성하는 공안 검찰은 미래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다. 미래 공안 검찰의 수단은 권위와 강제가 아닌 친숙과 설득이어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공안도 서비스여야 한다. 막연히 “친절하게 굴어서야 어디 제대로 수사를 하겠는가”라며 불평을 늘어놓아서는 곤란하다. 피의자 앞에서 굽실거리라는 게 아니라, 어떻게 공안이 서비스가 될 수 있는지 발상을 전환하라는 말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검찰의 공안 업무가 검사의 권위나 기득권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 향유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데 성공해야 한다.

    공안 검찰이 살아남는 법
    만사가 그렇듯, 때로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이미지다. 공안 검찰이 미래에도 왜 필요한 존재인지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새 이미지가 필요하다. 낡은 탈을 빨리 벗어던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새 시대에 맞는 공안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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