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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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아군·적군 구별 안 되네

행정수도 이전 반대 당론으로 우리당 공격 … 한나라당 구애에는 거리 두기 ‘줄타기 행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8-20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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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노당, 아군·적군 구별 안 되네

    8월11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왼쪽)과 민노당 주대환 정책위의장이 수도권 이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나고 있다.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이 한나라당과의 공조 여부와 관련해 ‘몸살’을 앓았다.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의견을 당론으로 결정한 뒤 일부 지지자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 일부 당원들은 “지방분권을 주장해온 정당으로서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한나라당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특히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가운데 성급하게 당론을 결정했다는 지적이 거세다.

    민노당은 무엇보다 한나라당과 ‘공조’했다는 비판에 대해 불편해한다. 민노당 관계자들은 “공조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소리”라면서 “열린우리당의 잘못된 정책에 반대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느라 바쁘다. 박용진 대변인은 “한나라당의 반대 이유와 민노당의 반대 이유는 분명히 다르다”면서 “모판 옮기기 식으로 어설프게 이뤄지는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것이지 한나라당과 공조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경제’는 한나라당과 공조해 與 공격

    민노당을 향한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의 시선은 싸늘하다. 민노당이 ‘우당’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민노당이 반대하고 나선 것은 향후 수도 이전과 관련해 국민을 설득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를 반찬으로 한 민노당의 공격을 못마땅해오던 터였다. 우리당은 “한나라당은 찬반을 오락가락할 수 있어도 민노당은 그러는 게 아니다”면서 민노당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민노당, 아군·적군 구별 안 되네

    7월22일 민노당 김혜경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만나고 있다

    우리당 한 의원은 민노당의 최근 행보를 고스톱의 ‘쇼당’에 비유하면서 섭섭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전형적인 쇼당 정치다. 공통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한나라당과 무엇 때문에 공조를 하고 있겠느냐? 양날의 칼을 세운 듯 행동하면서 우리당에 대해 이유 없이 적개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을 때리는 척하면서 우리당을 더 때리는, 그런 식으로 정치 기반을 마련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 드러난 행보만 보면 민노당의 ‘주적’은 지지층이 일부 겹치는 우리당인 듯하다. 우리당을 향한 공세 수위는 심상치 않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을 세우곤 있지만 우리당에 대한 그것보다는 약하다. 선택적 공조라는 ‘양날의 칼’ 중 한쪽 날이 더 예리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한나라당과 협조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최근 행보에 대해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당과 민노당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잠재적 민노당 지지세력이 우리당 쪽으로 돌아설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민노당의 공식 견해는 당의 뜻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느 당과도 협조할 수 있다”는 선택적 공조다. 노회찬 의원은 “우리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과도 뜻이 맞으면 공조할 수 있다는 게 원칙”이라고 했고, 단병호 의원도 개원 초 “10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느 당과의 공조에 기대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공조할 만한 정당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사안별로 의견이 맞으면 어느 당과도 협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택적 공조는 10석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당과의 공조는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는다. 친일진상규명법과 관련해 한배를 탔고, 국가보안법 폐지 및 3기 의문사위와 관련해 우리당 강경파들과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을 꼽을 수 있을 정도. 양당 정책위의장은 한 차례도 공조를 위해 만난 일이 없다. 특히 경제 문제에서 민노당은 접점을 찾기 힘든 한나라당과 ‘공조’하면서 우리당에 직격탄을 날리는 형국이다. 우리당 한 초선의원은 “정체성이 동떨어진 한나라당은 공격하면서도 도와주고, 궤적이 상당 부분 겹치는 우리당은 비판하기만 한다”고 섭섭함을 내비쳤다.

    민노당, 아군·적군 구별 안 되네

    우리당 신기남 의장과 김혜경 대표

    민노당과 한나라당이 발을 맞춘 것은 예결위 상임위화가 문제의 처음. 이어 카드특감과 경제토론회 등에서 양당은 한목소리를 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 결정은 8월10일 최고위원과 의원단 연석회의에서 이뤄졌는데 우리당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고 한다. 최고의원들은 예외 없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조승수 의원이 “현재 진행되는 행정수도 이전 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도권 집중화를 막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찬성 의사를 내비쳤다.

    ‘여야 3당’ 엇갈린 애증의 삼각관계

    최근 들어 한나라당은 야당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민노당을 향해 노골적으로 구애의 눈짓을 보내고 있다. 한나라당은 민노당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 당론을 결정하자마자 공조 방안을 논의하자며 민노당에 회담을 제의했을 정도다. 양당 정책위의장 회담에서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우리당 주대환 정책위원장에게 “반대 당론부터 정하라”는 면박을 들었지만, 한나라당은 수도 이전과 관련해 대신 싸워줄 우군이 나타났다며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민노당 한 관계자는 “결국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득을 보고 있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민노당은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데 대해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약속을 저버린 우리당의 비개혁적인 행태를 비판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러나 한나라당과의 관계에 대한 비판엔 무척 신경을 쓰는 눈치다. 정체성 논란과 관련해 한나라당을 거세게 공격한 것은 ‘정책 사안별로 공조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면서 야당들의 공조가 정략적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민노당, 아군·적군 구별 안 되네

    8월11일 이해찬 국무총리(가운데)가 행정수도 이전지를 발표하고 있다.

    공조에 대한 부담 탓에 한나라당에 대한 ‘거리 두기’가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민노당은 한나라당이 국가정체성 토론회를 제안하자 ‘박근혜 구하기’라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대환 정책위원장은 이한구 정책위의장과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야권 공조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당론도 정하지 못한 한나라당의 태도를 질타했다. 민노당은 또 행정수도 이전 문제와 관련한 전국 순회 국민토론회 개최 등 한나라당의 공동대응 제의를 거절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는 하지만 공조는 안 한다는 민노당의 줄타기 행보에 머쓱해졌다.

    민노당은 안팎의 비판 탓인지 결국 행정수도 이전 반대는 ‘당론’이지만 ‘최종적이지 않은 당론’이라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민노당과 한나라당은 특정 사안에 대해 비판 의식은 공유하더라도 ‘대안’으로 들어가면 공유할 부분이 거의 없다. 게다가 민노당 지지자들은 한나라당과의 공조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아무튼 우리당 한나라당 민노당의 ‘엇갈린 애증의 삼각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양날의 칼’이 민노당의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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