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8

2004.08.19

‘다음’ 라이코스 삼키고 소화불량?

인수 전후로 주가 ‘뚝’ … 애널리스트들 “뜻밖의 선택” 앞다퉈 부정적 의견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8-13 1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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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라이코스 삼키고 소화불량?
    다음커뮤니케이션(이하 다음)이 미국의 인터넷 포털 라이코스를 인수했다. 세계 시장을 향한 야심 찬 깃발을 올린 셈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썰렁하다. “제 무덤을 팠다”는 극단적 얘기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각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앞다투어 부정적 의견을 내고 있다. 주가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4만원 수준이던 주가가 3만원 언저리로 푹 내려앉았다. 인수설이 본격 제기된 7월29일 8.26%, 인수가격이 공시된 8월2일에는 5.18%가 떨어졌다. 소문이 모락모락 나기 시작한 7월22일부터 8월4일까지를 따져보면 하락률이 무려 24.9%에 이른다.

    이 때문일까, 미디어 에퀴터블에 따르면 닷컴 오너 가운데 난공불락의 주식부자 1위 자리를 지켜온 다음 이재웅 사장이 엔씨소프트 김택진 사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물러앉았다. 지난해 같은 무렵 1766억원이던 주식평가액은 857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코스닥의 전반적 침체 때문이라 하기엔 하락세가 너무 심하다.

    예를 들어 최대 경쟁자인 NHN의 이해진 사장의 경우 네이버와 한게임의 순항 덕에 4일 종가 기준 주식평가액 792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18% 감소에 그쳤다. 다음은 주가가 크게 떨어지자 자사주 매입, 중간 배당 등 여러 가지 주가 부양 조치를 검토하고 있으나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사실 다음 주가가 눈에 띄게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라이코스 인수 전 올 2분기 실적이 공개되면서부터다. 4만5000원 정도이던 주가가 4만원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NHN과의 매출 및 영업이익 격차가 1분기보다 더 벌어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재웅 사장, 닷컴 주식부자 1위서도 밀려

    2003년 초까지만 해도 포털 방문자 순위는 1위 다음, 2위 야후코리아, 3위가 NHN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3월, 2년 동안 유지돼오던 순위에 큰 변화가 생겼다. NHN이 야후코리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올 초에는 다음까지 누르고 1위로 올라섰다. NHN의 블로그 서비스, SK커뮤니케이션스의 싸이월드처럼 획기적 서비스가 등장하지 않는 한 다음이 NHN을 따라잡고 1위를 탈환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뵌다.

    ‘다음’ 라이코스 삼키고 소화불량?

    다음 마케팅연구소의 제주도 사무실 전경.

    NHN이 게임 사이트인 한게임과 손잡기 전, 다음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인터넷 포털이었다. 포털 경쟁은 다양한 서비스로 방문자를 끌어들여 그 크기만큼 시장 지배력을 갖는 게임이다. 다음은 메일 서비스인 한메일넷, 커뮤니티 서비스인 다음카페로 ‘규모’ 실현에 성공했다. 하지만 NHN의 급성장으로 치명타를 입게 됐다. 예를 들어 7월 마지막 주 페이지 뷰를 보면 네이버가 2억1617만2478회, 다음이 1억8086만9424회다(랭키닷컴 제공).

    그럼에도 다음은 공격적 행보를 늦추지 않았다. 다음카페 300만개에 회원 수 2500만명, 한메일넷 이용자 3500만명. 그런 만큼 ‘10원짜리 핀 하나씩만 팔아도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숫자’에 대한 자신감이 여전한 까닭이었다.

    한편으로는 ‘즐거운 실험’이라는 이름이 붙은 ‘제주도 이전 프로젝트’를 시작해 눈길을 모았다. 이미 1, 2차에 걸쳐 53명의 직원이 제주로 내려갔다. 내년에는 100여명의 직원을 추가로 이전할 계획이다. 임직원의 근무 환경과 삶의 질 개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주목적이라 한다. 또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다른 혁신적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설명도 내놓았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한 인터넷 전문 애널리스트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 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도 “법인세 감면액도 20억~30억원밖에 안 되는데 무슨 메리트가 있다는 거냐”고 되물었다. 이사장의 ‘깊은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 초 한때는 “다음이 제주은행을 인수하려 한다”는 헛소문이 돌기도 했다. ‘즐거운 실험’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다음’ 라이코스 삼키고 소화불량?

    SK커뮤니케이션스의 싸이월드 화면

    이런 와중에 라이코스 인수라는 핫이슈가 터져나왔다. M&A는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 그런데 다음의 라이코스 인수는 그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결정됐다. 내부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그만큼 큰 도박인 셈이다. 이사장은 라이코스 인수의 가장 큰 이유로 “좁은 국내시장에서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지속하면 해외 기업들에 인수되는 상황이 오게 된다”는 점을 들었다. “한국이 앞선 인터넷 기술을 보유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3년 정도”라는 것이다.

    국내시장 포화로 미국에서 승부수 의도?

    어쨌거나 경쟁사 임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전혀 뜻밖의 선택”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동원증권은 “경쟁력 약화가 두드러지는 만큼 여유 자금을 핵심 역량 강화를 위한 국내업체 인수에 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각 분야 선두권 업체를 M&A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런데 엉뚱한 선택을 했다. 실적 및 주가에 모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내용의 관련 리포트를 냈다. 다른 증권사들의 판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현대증권 황승택 연구원처럼 “다음의 라이코스 승부수가 제대로 먹혀들 경우 폭발력은 NHN의 ‘한게임 효과’에 비할 바 아닐 것”이라는 등의 긍정적 의견을 내는 이도 없지 않다.

    ‘다음’ 라이코스 삼키고 소화불량?

    네이버 카페 광고 모델 전지현.

    “이사장의 고민과 조바심을 이해한다. 다음은 NHN의 지식검색, SK커뮤니케이션스의 싸이월드에 크게 한 방 먹었다. 국내시장에선 뒤처지고 말았지만 미국에선 한번 승부를 던져볼 만하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 일본, 중국 시장은 이미 다른 포털들이 진출해 있으니 남은 건 미국이다. 이사장은 오래 전부터 나스닥 상장을 이야기해왔을 만큼 미국 시장에 대한 꿈이 큰 사람이다. 그러나 의욕만 넘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한 경쟁사 임원의 말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다음은 다음카페 이후 내놓은 것이 없다. 광고 유치에서도 돌파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우리 인터넷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른 회사는 성장하고 있지 않나. 또 지난 6월 중간 배당 이야기를 하다 곧바로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의 행동을 한 것은 시장의 신뢰를 잃기 딱 좋은 행보”라고 꼬집었다.

    한 포털업체 CEO는 “같은 해외 M&A라도 NHN이 중국 아워게임 구주 50%를 1억 달러에 인수한 것은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아워게임은 중국 내 회원 수, 동시접속자 수 1위의 선두업체이기 때문이다. 아워게임은 NHN에 당장 돈을 벌어다줄 회사다. 물론 라이코스 인수 건이 다음의 계획대로 잘 풀려간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러나 사업 역량 집중을 통한 안정적 행보를 보여주는 NHN이 더 미더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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