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8

2004.08.19

黨-靑 엇박자 행진 언제까지 …

파병·분양원가 문제 등 현안마다 딴 목소리 … 양측 연결할 ‘정무라인’ 부재에 당내 혼란 겹쳐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4-08-13 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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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黨-靑 엇박자 행진 언제까지 …

    열린우리당 의원 총회. 의원들은 당론보다 개인적 소신을 강조한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문희상 의원은 최근 서울 영등포 당사에 들렀다 머쓱한 일을 겪었다. 한 당직자가 “어떻게 오셨느냐”고 손님 맞이하듯 물은 것.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3선 중진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당사에선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당직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는 ‘사건’이 일어나는가 하면 위계 질서도 느슨해지고 있다. 국회와의 ‘거리’ 탓인지 여당 당사 특유의 북적거림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부 의원들도 당이나 정권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 데 오히려 힘을 쓰는 듯한 모습이다. 의원들이 당내 의견 수렴 없이 법안을 쏟아내 혼선을 빚는 일도 잦다. 법안을 제출하기 전 정책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합작품’을 만드는 방안을 마련했을 정도. 노무현 대통령의 처지는 아랑곳 않고 개인적 소신을 고수하겠다는 분위기도 거세 청와대의 의중을 거스르는 의견도 곳곳에서 제기된다.

    일부 의원들 “소신 고수” … 튀는 행동

    우리당 W의원은 의원들이 청와대의 견해와 다른 주장을 거리낌 없이 제기하는 모습은 역대 어느 정당도 구현한 바 없는 당내 민주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 정당사에서 가장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정당이 우리당이다. 우리당만큼 당 운영이 민주적으로 운영된 곳은 없었다. 당내 불협화음이니 당-청 엇박자니 하는 지적은 모두 과거 패러다임에 근거해 판단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과거의 잣대로 우리당을 평가하거나 비판해서는 곤란하다.”



    과연 그럴까. 민주당 시절부터 정당 생활을 한 당료들은 “우리당은 한마디로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당내 역학 관계도 명확치 않다. 관료 출신, 개혁당 출신, 재야 출신, 친노직계 등으로 출신 성분이 다양하다 보니 계파 간 움직임 또한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밀접한 ‘바른정치모임’,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지지성향인 ‘국민정치연구회’ 등이 외연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유시민 의원 주축의 ‘참여정치연구회’, 이광재 의원이 구심점인 친노 소장파 모임도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각 계파들은 전당대회에서 당권 향방을 가름 하는 기간당원의 선발 요건을 두고 벌써부터 힘겨루기에 나섰다. 국민정치연구회는 최근 장영달 의원을 이사장으로 선출하면서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우선 과제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한 관계자는 “정동영 김근태 장관의 입각으로 차기 경쟁은 잠복했지만 각 계파의 세 불리기는 물밑에서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당의 민주화는 대통령의 영향력 약화를 의미한다”면서 “레임덕이 전임 대통령들보다 빨리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영남 출신 인사들의 소외감도 불확실성을 부추기고 있다. 당은 지도부 진용을 갖추며 잇따라 호남 출신 의원을 중용했다. 최근 의장특보단장으로 전남 여수 출신의 김성곤 의원을, 당 사무처장에 전북 김제·완주 출신의 최규성 의원을 임명하는 등 주요 당직은 호남 출신이 거의 독식했다. 호남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다면서 불거진 청와대 및 정부의 호남소외론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PK(부산 경남) 인사 중심으로 짜여진 정수장학회 진상조사단의 경우도 지역 정서를 고려치 않고 구성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남 출신 당직자들은 영남권 방문을 예정했다 돌연 휴가를 떠난 신기남 의장의 처신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辛-千 투 톱 사이에서도 잇단 견해차

    상당수 의원들은, 각자 소신에 따라 의원들이 제가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며 발전된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당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내에선 당-청의 고리 구실을 하는 정무 라인의 부재로 당이 내풍과 외풍에 휘둘리면서 방향을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당-청 간의 엇박자 행보가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 분양가 원가 공개, 고비처 기소권 논란 등 현안에 대해 각각의 의원들이 청와대 혹은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당-청의 동선이 거푸 엇갈리는 형국이다.

    黨-靑 엇박자 행진 언제까지 …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만나 주요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 공개는 25.7평 이하 아파트에 대해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뒤늦게 조율됐으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를 대통령 소속에서 국회로 이관하는 방안을 놓고 당-청 간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혼선이 또 빚어졌다. 청와대는 의문사위의 청와대 소속 존속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였으나 당은 반대로 의문사위의 조사대상 및 권한을 넓히는 쪽으로 이끌었기 때문. 더하여 정부가 2005년 7월 폐지를 기정사실화한 중소기업의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를 당 쪽에서 1, 2년간 유예하겠다고 밝히고 나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중소기업 정책은 노대통령이 직접 관장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로 정부가 중시하는 정책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공격에 청와대가 응전하는 형식으로 시작된 ‘정체성 논란’에서도 당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했다. 신의장은 8월5일 느닷없이 휴가를 떠났다. 노대통령과 박대표 간 유신 및 정체성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야전사령관이 전장을 비운 것이다. 수도권 한 의원은 “처음엔 대응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바로 다음날 공격하면 대응한다고 전략을 바꾸더니 종국엔 휴가를 가버린 건 세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신의장은 최근 “8·15 특별사면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가 “계획이 없다”는 청와대의 ‘다른 소리’에 계면쩍어하기도 했다.

    신기남 의장-천정배 원내대표 투 톱 사이의 견해차도 당내 혼란을 일으킨다. 당과 원내대표실로 시스템이 이원화된 게 당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 현안에 대해 투 톱이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북한 경비정과의 교신 내용 보고누락 및 기밀유출 사건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인 게 대표적 사례.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신의장은 ‘폐지’를, 천대표는 ‘절충’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당이 내세우는 화두는 ‘민생’이다. 정쟁을 지양하고 경제 문제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한국투자공사설치법, 재래시장육성특별법, 기초생활보장법 등 민생 관련 법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할 요량. 그런데 머리를 맞대야 할 카운터파트의 개인사를 거세게 공격하는 등 종잡을 수 없다. 당 일각에선 “지도부가 하는 일이 뭐냐”면서 조기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여당의 혼란은 이질적인 인적 구성과 수평적 리더십, 당-청 분리로 상징되는 ‘새로운 도전’에서 파생됐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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