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1

2004.07.01

靑-檢 힘겨루기 최후 승자는?

‘중수부 폐지설’ 이어 ‘공비처 신설’로 2라운드 … 개혁 공감, 방법은 이견 ‘해법 오리무중’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6-25 16: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靑-檢 힘겨루기 최후 승자는?

    또다시 검찰개혁을 놓고 맞대결을 펼친 강금실 법무부 장관. 그러나 이번 논쟁에서 강장관은 청와대로부터 소외됐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제는 지겨울 법도 하건만 참여정부와 검찰 사이의 힘겨루기는 잊을 만하면 폭발하는 고정 소재가 됐다. 이번 주제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이하 중수부) 폐지론’ 및 ‘공직자비리조사처’(이하 공비처)다. 물론 바뀐 사실도 없지 않다. ‘참여정부’의 간판이자 송광수 검찰총장의 상대역을 자처하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링 밖으로 물러났고, 아예 청와대가 직접 링 중심에 올랐다. 한쪽은 개혁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고, 상처 입은 한쪽은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하고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정부 부처 내의 기묘한 갈등이지만 당사자들의 표정에서는 비장함이 느껴진다. 양측 모두 ‘개혁’이라는 목표에 흔쾌히 동의하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승리만이 개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대립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전쟁이 벌어졌다면 원인과 배경이 있을 터. 우선 검찰 자존심에 ‘올인’한 송광수 총장의 사정을 살펴보자.

    “중수부 폐지론은 지난 1년간 대선자금 수사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검찰의 힘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6월14일 송광수 총장)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한 이날 발언은 ‘중수부 폐지론’에 불을 지핀 전날 KBS 보도에 대한 송총장의 강경 대응이자 검사들의 보편적 정서를 대변한 셈이다. 항명에 가까운 검찰총장의 발언에 대해 대다수 검사들은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우려 섞인 반응을 내비쳤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물론 법무부와도 전혀 핫라인이 없다는 뜻으로 검찰 독립은 증명했지만, 역으로 고립됐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수부 수사가 문제가 된다면 나의 목을 치겠다”며 사실상 총장직을 걸고 중수부 사수를 다짐한 송총장은 일단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다. 화들짝 놀란 강금실 법무장관이 중재에 나서 “중수부 폐지론은 없었던 일이며 재론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기 때문이다. 송총장의 초강수는 지난해에 감찰부를 지켜낸 데 이어 또다시 중수부까지 지켜낸 셈이다.

    송총장 초강수가 중수부 지켰다?

    靑-檢 힘겨루기 최후 승자는?

    송광수 검찰총장.

    사실 중수부는 검찰 독립의 상징으로 검찰 최후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검찰의 꽃’은 서울지검장이지만, 검사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항상 ‘대검 중수부장’이 꼽혀왔다. 이유는 중수부가 지난 15년간 고위공직자 사정 기능을 총괄하며 검찰권 행사의 상징이 됐기 때문. 그래서 중수부 해체란, 검찰의 칼을 빼앗는 ‘검찰 무력화 조치’라는 게 검사들의 보편적 정서일 수밖에 없다.

    “이번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보라. 사실상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는 30여명의 중수부 검사가 서울지검장 휘하의 150여명의 검사도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냈다.”(전직 대검 중수부 검사)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중수부에 의해 대통령 측근들이 다친 이제 와서 중수부 폐지를 논하는 저의가 뭔가?”(재경지검 특수부 검사)

    강금실 장관과의 불화로 사임한 김각영 전임 검찰총장의 배턴을 이어받은 송총장은 지난 1년간 검찰의 여망을 모아 청와대와 법무부의 개혁 공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왔다. 독자적인 개혁안 도출은 물론, ‘불법 대선자금 수사’라는 초강수를 통해 직접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 그러나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끝난 최근 다시 싸늘해진 국민들의 시선에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검찰의 반발을 지켜보는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의 생각은 무엇일까.

    “검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전에 안기부나 기무사를 개혁할 때도 금세 나라가 흔들릴 것 같은 반발이 뒤따랐지만 결과는 좋게 나왔다. 권력을 분산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개혁이다.”(열린우리당 법사위에 내정된 C의원)

    靑-檢 힘겨루기 최후 승자는?

    역사상 최초로 검찰을 정권의 품에서 떠나보낸 노무현 대통령은 부패방지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정서가 이미 여권 핵심부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은 이번 사태를 통해서 곧바로 확인됐다. 청와대와 송총장의 갈등이 강장관에 의해 봉합되자마자 즉각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와 문희상 의원이 “중수부를 폐지하고, 공비처에 기소권을 준다”고 언급하며 공론화 작업에 들어간 것. 청와대 관계자는 “중수부는 대통령령으로 만들어졌는데 대통령이 폐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당정 내에서도 검찰 권한 분산에 공감대

    여권에서는 중수부 폐지안이 설사 실패하더라도 공비처가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 추후에 경찰의 수사권 독립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검찰의 제자리 찾기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부 역시 검찰 개혁안에 대한 꾸준한 연구를 바탕으로 청와대와 검찰개혁 의견을 조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개혁의 중심에는 ‘법무부 정책기획단’(이하 기획단·단장 대검 이훈규 형사부장)이 자리잡고 있다. 이미 1년 전 활동에 들어간 기획단은 엘리트 검사와 외부 자문위원단을 중심으로 검찰조직 개편안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시켜왔다. ‘감찰부 이관’ ‘형사부 강화’ ‘중수부-공안부 축소론’ ‘범죄정보기획관실 축소론’ 등은 모두 기획단에서 제기한 것이라는 게 검찰 측의 시각이다.

    물론 강장관은 6월16일 기자회견에서 “중수부 폐지 논의가 정식으로 안건에 상정된 적이 없다”고 발뺌했지만 이미 1년간 논의된 검찰조직 개편안에 중수부는 언제나 단골 메뉴였다는 것이 검찰과 법무부 관계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게다가 검찰 개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강장관은 이미 부패방지위원회(이하 부방위) 비상임위원을 거친 인물로 부방위 역할론에 강력한 지지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인사 통해 송총장 고립 심화

    靑-檢 힘겨루기 최후 승자는?
    검찰의 시각에 다소간의 음모론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불법 대선자금 수사대상이었던 여당의 일부 386인사들이 여전히 권력 핵심을 차지하고 있으며, 검찰은 이미 그들의 치부를 파헤친 전력을 갖고 있다. 또한 여권이 부방위 산하 공비처를 내세워 현재 중수부 영역으로 굳어진 고위공직자 사정기능을 맡긴다는 것도 송총장으로선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송총장이 ‘중수부 폐지론’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중수부 폐지론’이 중수부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중수부의 기능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유창종 전 중수부장은 중수부장 재임 시절 중수부 기능 축소를 적극 주장하기도 했다.

    대검이 검찰조직 개편안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범죄정보기획관실(범정) 폐지되나’(주간동아 437호) 기사에 대한 반응으로도 엿볼 수 있다. 이 기사는 즉시 보고 라인을 따라 총장실로 보고되어 총장이 진상 파악을 지시했고, 이정수 대검차장은 재벌 기업 수사로 이름을 떨친 이인규 신임 범정기획관한테서 “이 같은 뒷말이 나오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송총장의 고립이 심화됐다는 점. 최근 검찰 인사를 통해 검찰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대검 조직이 강장관에게 기운 점도 의미심장한 변화다. ‘형사부 강화’란 임무를 띠고 내려온 강장관의 복심 A검사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됐던 B검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들. 게다가 대검 마약부가 강력부로 통합됐고, 공안부 축소가 확정됐으며, 중부수 역시 기능 축소가 불가피해 송총장의 힘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인사를 마무리한 송총장은 임기가 끝나는 내년 봄까지 무조건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

    대검의 한 중견 검사는 “검찰 개혁의 주도권을 법무부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도된 ‘검찰혁신위원회’ ‘감찰부의 내실 있는 사정’ ‘대국민 이미지 개선사업’ 등의 효과가 크지만 수세에 몰린 현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폭발력은 없다는 게 대검의 고민이다”고 말한다. 결국 검찰은 힘겹게 사수한 중수부를 무기로 공비처와 생존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렸다.

    대선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겨울 송총장은 검찰 독립의 진행 정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 독립에는 적어도 5명의 검찰총장이 옷을 벗어야 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검찰의 기소 독점권 해소가 과연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