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1

2004.07.01

“살과의 전쟁, 왕도는 없어요”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6-24 16:3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부럽다’는 찬사와 ‘독하다’는 질시가 따라다닌다. 과연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 그 깊고 깊은 ‘비만의 굴레’에서 탈출했을까.

    “살과의 전쟁, 왕도는 없어요”

    160cm, 45kg의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박현주씨.

    박현주

    “중 3때 살 좀 빼라”에 충격…160cm 45kg 마른 체형

    “이 옷, 제일 작은 사이즈로 주세요.”

    박현주씨(26)는 옷가게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 후 항상 이렇게 말한다. 그의 체격은 거의 모든 브랜드의 ‘제일 작은 사이즈’ 자체이기 때문이다.



    160cm 45kg, 군살 하나 없는 팔뚝과 날씬한 실루엣…. 마치 ‘몸매 규격’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모범적인’ 그의 체형을 보면 누구나 “타고난 몸짱이군” 하고 말할 법하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인 중학교 3학년 시절, 그가 담임교사에게 처음 들은 말은 “너 살 좀 빼야 하지 않겠니?”였다고 한다.

    “그 무렵 체중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목욕탕 체중계가 64.5kg을 가리키는 것까지 보고 다시는 몸무게를 재지 않았거든요. 그 후에도 몇 kg 더 쪘을 테니, 키는 지금보다 작고 몸무게는 20kg 넘게 더 나가는 거구였겠죠. 신기한 건, 거의 굴러다니는 체격이었을 텐데도 그 무렵 저는 제가 뚱뚱한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냥 평범하게 생각하고 살다가 ‘뚱뚱하다’는 선생님 말씀에 충격을 받았죠.”

    이때부터 박씨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한 끼에 밥 한 숟가락씩을 덜 먹는 ‘절식’이었다. 방학 때는 수영과 에어로빅 등도 했다. 그러자 살은 신기하게도 ‘부쩍부쩍’ 빠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뺀 살이 10kg. ‘다이어트가 왜 힘들다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살 빼는 게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공부하느라 관리를 멈추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55kg이던 체중은 3학년 때 59kg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한다. 그리고 이 몸무게는 대학에 간 후 아무리 노력해도 줄어들지 않았다.

    “한 달쯤 고생 고생해서 몸무게를 52kg까지 줄여놓고 한숨을 돌리면 며칠 만에 곧 57kg으로 복귀해버리는 식이었죠.”

    대학생활 내내 몸무게와 씨름하던 그를 몸짱으로 바꾸어놓은 것은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한 ‘100일 동안 식사 조절과 운동으로 살을 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아침에는 비타민, 점심에는 탄수화물, 저녁에는 단백질로 식단을 짜고 하루 1시간 넘게 운동을 했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 100일은 굉장히 긴 시간처럼 느껴져요. 당장 날씬한 몸을 갖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무작정 굶거나 무리한 운동을 하게 되죠. 하지만 그러면 곧 지쳐버리거든요. 저는 여러 번 실패한 끝에 ‘힘들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살과의 전쟁, 왕도는 없어요”

    박씨는 지갑에 10kg이 더 나가던 시절의 사진을 넣고 다니며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박씨는 탄수화물 끼니때는 잡곡밥과 우동, 감자 등을, 단백질 끼니때는 우유와 회, 껍질 벗긴 치킨 등을 양껏 먹었다. 차와 커피, 심지어 술도 마셨다. 대신 한 끼에 한 종류 음식만 먹는다는 규칙을 지켰다. 이렇게 할 경우 곧 질리기 때문에 여러 종류를 한꺼번에 먹을 때마다 식사량이 훨씬 줄어드는 것.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걷기와 러닝머신 달리기, 부위별 스트레칭 등을 했다. 처음에는 10~20분에 불과하던 운동시간은 날마다 조금씩 늘어나 100일이 될 무렵에는 2시간 가까이 해도 지치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 때인 2002년 8월, 100일 동안의 다이어트를 끝냈을 때 박씨의 체중은 45kg으로 줄어 있었다.

    “친구들은 저에게 ‘너는 말랐는데도 나보다 훨씬 더 힘이 좋다’고들 해요. 굶지 않고 운동을 해서 살을 뺀 덕분이죠. 이제는 운동하면 몸이 개운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운동을 하고, 식성이 변해서 굳이 주의하지 않아도 건강식만 먹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박씨가 하는 다이어트는 뚱뚱했던 시절의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니면서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 보는 정도가 전부다. 혹시 게을러질지 모르는 마음을, 그래서 다시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지 모르는 몸을 그렇게 다잡는 것이다.

    “살과의 전쟁, 왕도는 없어요”

    177cm, 85kg의 탄탄한 체격인 정창민씨.

    정창민

    나쁜 조건 비만 삻을 바꿔준 멋진 무기

    “죄송합니다만 몸무게 100kg이 넘는 분은 생명보험에 가입하실 수 없습니다.”

    “예?”

    2002년 여름, 키 177cm에 몸무게 130kg이었던 정창민씨(28)는 생명보험 가입을 거부당했다. 너무 살이 쪘다는 이유에서였다.

    “제가 체격이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보험에도 가입할 수 없는 몸이라니,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죠.”

    보험사 직원의 말에는 “100kg이 넘는 사람은 병에 걸리거나 죽을 확률이 현저히 높은 것 아니냐”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20여년 동안 단 한 번도 ‘가볍게’ 살아본 적이 없던 정씨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시간과 몸’뿐이다. 내 시간을 투자해 건강을 지키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바로 생활을 바꾸었다.

    밤이면 친구들과 만나 늦은 식사를 하기 일쑤였던 생활태도를 고치기 위해 영어학원 새벽반에 등록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영어 수업을 들은 후 회사에 출근했고, 퇴근 후에는 헬스클럽에서 2시간씩 운동했다. 사람을 만날 틈도 없었고, 만나지도 않았다.

    “제가 한 번 러닝머신에서 뛰는 동안 옆 기계의 사람은 5명씩 바뀔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헬스클럽에서 거의 ‘전설’로 통했죠. 현미밥과 야채, 두유를 주로 먹었고요, 염분 흡수가 지방분해를 방해한다는 말을 듣고는 김치도 끊었어요.”

    ‘독하게’ 운동과 식이요법에 따른 대신, 체중계에는 거의 올라가지 않았다. 너무 빨리 살을 빼려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신 체격보다 두 사이즈쯤 작은 바지를 샀다. 처음에 꽉 끼던 옷이 어느 순간 몸에 맞다가 점점 헐렁해지는 순간을 즐긴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바지를 갈아입은 후 다이어트 시작 7개월 만에 영어회화반의 최고급 과정 수료증과 85kg으로 줄어든 몸무게를 함께 얻었다.

    하지만 정씨는 ‘-45kg’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무작정 굶기만 해도 뺄 수 있는 ‘수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과정에서 ‘나도 뭔가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살과의 전쟁, 왕도는 없어요”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몸무게가 130kg에 달해 생명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비만인’이었다.

    사실 정씨가 처음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네가 얼마나 가겠어”라고 비아냥대는 이들도 많았다. ‘뚱뚱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불성실하고 느긋해 보이는 인상 때문이었다. 그런 반응을 느낄 때마다 정씨는 “이번 기회에 내 이미지를 바꾸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삶은 정말 180도 바뀌었다. 그의 첫인상은 ‘둔해 보인다’에서 이제는 ‘너무 날카로워 보인다’는 말을 듣는 수준이 됐다.

    “제가 만약 위절제 수술이나 다이어트 약을 먹어 살을 뺐다면 이렇게 삶이 바뀌었을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끔씩 저는 ‘내가 만약 평범한 체격으로 살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대단하다라는 평가를 들을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비만’은 제 인생에서 가장 나쁜 조건이었지만, 반대로 저의 이미지와 성실성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게 도와준 멋진 무기였어요.”

    정씨는 이제 2차 다이어트에 들어갈 계획이다. 아직 채 빠지지 않은 군살들을 마저 정리해 69kg의 날씬한 체격을 만드는 것이 목표. 하지만 그가 정말 바라는 바는 이번 다이어트를 통해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불성실함과 게으름을 또 한 번 고쳐내는 일이다.

    “살과의 전쟁, 왕도는 없어요”

    160cm, 53kg의 건강한 ‘몸짱’ 김희정씨.

    김희정

    출산 후 망가진 몸매 충격 딛고 처녀 모습 환원

    “내가 처녀 때는 바람 불면 날아갈 만큼 호리호리했어.”

    “내가 처녀 때는 피부가 얼마나 뽀얗고 예뻤는데.”

    “내가 처녀 때는 한겨울에 미니스커트를 입고도 추운 줄 몰랐지.”

    대한민국 주부들의 ‘처녀시절 과거담’이다. 일곱 살 된 아들을 둔 주부 김희정씨(37)의 처녀시절도 그랬다. 하지만 그의 과거담을 믿어준 사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없었다. 현실의 김씨는 무릎이 아파 걸음을 제대로 못 걷고 수시로 편두통에 시달리는, 나이보다 열 살쯤 더 많아 보이는 ‘아줌마’였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후 몸이 회복되질 않았어요. 임신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살이 붙더군요. 그러면서 건강도 나빠졌죠. 오른쪽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픈 편두통 때문에 하루에 진통제를 10알씩 먹곤 했어요. 엄지발가락 혈관이 다 터지고, 무릎도 아프고, 팔 다리에 마비 증상이 나타나고….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갔는데, 어린 아들과 남편을 두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병원에서는 ‘뇌압이 지나치게 높다’고 할 뿐 원인을 모르더군요.”

    그래서 찾은 한의원에서 그는 ‘비만’ 진단을 받았다. 지나치게 찐 살이 신진대사를 가로막아 생긴 병이라는 것. 당시 김씨는 키 160cm에 몸무게 75kg. 처녀 시절 50kg을 넘지 않던 김씨의 신체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무리한 상태였다.

    “한의원에서 검사를 마치더니 신체 나이는 이미 56살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하면 좋으냐’며 엉엉 울었어요.”

    “살과의 전쟁, 왕도는 없어요”
    김씨는 살찐 원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선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문제였다. 잠을 자다가도 오전 2~3시에 깨어나 밥 한 공기를 먹고 다시 잠들었을 정도로 항상 배가 고팠다. 포만감을 위해 한 끼에 ‘밥 2공기, 케이크 반쪽’을 혼자 먹어치운 날도 있었다. 그러면서 동네 산보 같은 간단한 신체활동조차 전혀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이 그가 할 일이었다.

    “몸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일단 치료도 받았어요. 비만 침도 맞고, 한약도 먹었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식사량 조절과 운동이었습니다. 아침, 점심은 꼬박꼬박 먹었지만, 저녁에는 생식을 먹고 간식을 끊었어요. 하루 1시간씩 꾸준히 운동도 했죠.”

    간식을 먹고 싶거나 편히 쉬고 싶을 때면 ‘살이 빠져야 온몸의 통증이 사라진다’는 생각으로 식사 조절과 운동에 더 매달렸다.

    현재 그의 체중은 53kg. 키에 딱 맞는 정상 몸무게다. 살이 빠지면서 예전의 귀여운 외모와 뽀얀 피부가 되살아나 가끔은 ‘처녀 아니냐’는 기분 좋은 오해를 사기도 한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이제는 아무 곳도 아프지 않다는 것. 주말이면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 아들과 함께 축구공을 쫓아 뛰어다니기도 한다.

    “살과의 전쟁, 왕도는 없어요”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전 김씨의 몸무게는 75kg에 달했고, 아프지 않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리고 몸이 좋아지면서 이제는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갖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탤런트 김희애씨 팔이 너무 예쁘잖아요. 날씬하면서도 근육이 탄탄한 그런 몸을 갖고 싶어요. 다이어트를 하면서 깨달은 건 ‘몸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거죠.”

    인터뷰를 하면서 김씨에게 “가장 자랑하고 싶은 부분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그가 보여준 것은 의외로 신발이었다. 빨간 끈이 날씬하게 발을 감싸는, 5cm 정도의 굽이 있는 샌들. 몸무게에 짓눌려 언제나 혈관이 몇 개씩 터져 있거나 퉁퉁 부어 있던 예전의 발로는 결코 신을 수 없었을 신발이다. 김씨는 샌들을 신을 때마다 발끝까지 하얗고 날씬해진 자신의 모습을 마음껏 즐긴다고 털어놓았다. 그에게 샌들은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찬란한 선물인 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