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4

2016.09.07

북한

“대북제재는 오히려 돈 벌 기회” 한국 기업들, 北 근로자 편법 고용

中 단둥 일대 공장 중국인 앞세워 10여 곳 운영, 北 내부에 주문도…일본은 모두 철수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09-02 16: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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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잇따른 이후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과 일본 기업인의 행보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일본 기업인은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한 반면, 한국 기업인은 정부 조치를 비웃듯 편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일대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기업인 A씨는 이 지역 북한 근로자 고용 기업들의 최근 동향을 필자에게 알려왔다. 단둥은 중국에서 북한과 경제교류가 가장 활발한 도시다. A씨에 따르면 단둥뿐 아니라 그곳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둥강(東港) 등 그 주변 도시에도 북한 근로자가 상당수 고용돼 있다고 한다. 주변 도시를 포함해 단둥 일대에는 최소 수백 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는 공장이 30여 곳 있고, 이들 공장은 총 3만 명 이상을 고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단둥 일대에는 북한에 직접 들어가 물건 생산을 주문하는 전문업체도 30곳 정도 된다고 한다.

    현행 북한 관련법은 외국 기업이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려면 해당 국가에 진출해 있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로부터 관련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단둥 일대에는 민경련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비밀리에 북한 근로자를 조달해 사업을 하는 공장이 허가받은 공장보다 훨씬 더 많다. 무허가업체에 고용된 북한 근로자도 대부분 정식 취업 허가증이 아닌, 연수나 친·인척 방문 비자를 받아 일하고 있다.



    비밀리에 北 근로자 5000여 명 고용

    3월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역대 최강’이라는 대북제재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북한 근로자가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단둥 일대에서는 큰 혼란이 빚어졌다. 북한 근로자를 고용한 한국 및 일본 사업가들은 사업 철수까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결국 일본 사업가들은 “대북제재에 동참하라”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은 뒤 곧바로 북한 근로자 고용 사업에서 철수했다.



    9월 초 현재 단둥 일대에 진출한 북한 인력 고용 일본 기업인은 대부분 철수한 상태. 북한 근로자 500여 명을 고용한 일본 기업 한 곳 정도가 다른 기업에 공장을 넘기는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업은 한국 원화 기준으로 10억 원 이상 들여 공장 설비를 갖추고 지금까지 신사복 정장을 생산해왔다고 한다.

    일본 기업인의 이런 철수 움직임에 반해 한국 사업가들은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인을 대표로 올려 마치 중국 기업이 운영하는 것처럼 꾸민 뒤 배후에서 실질적으로 경영을 지휘하고 있는 것. 단둥 일대 공장 가운데 이처럼 중국인을 앞세워 비밀리에 공장을 운영하는 한국 기업은 10여 곳이고, 이들이 고용한 북한 근로자는 5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한국 기업 가운데 B사는 북한 근로자 400명을 고용해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B사는 또한 북한에 직접 들어가 현지 공장 측에 생산 주문을 하고 최종 생산품을 가져 나오는 중국인도 10여 명 고용하고 있다.  3만㎡ 이상 되는 건물에 의류 보관 창고를 여러 개 갖춘 채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 이 기업은 최근 중국주재 한국 영사관 측으로부터 “더는 북한 근로자 고용 사업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한 채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 근로자 고용 사업은 접었다”고 거짓말만 하고 있다는 것.

    재중국동포와 결혼해 아내 이름으로 공장을 지어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 중국인 아내 명의로 회사를 세운 한국인 C씨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인 3월 북한 인력 300여 명을 중국으로 들여와 공장을 가동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확정되기 수개월 전 투자하고 공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어차피 이래도 망하고 저래도 망한다. 그러니 기존 계획대로 한다”며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 C씨는 9월 초 현재까지도 공장 운영을 계속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주문이 몰려들어 ‘결과적으론 좋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대북사업가 A씨는 “단둥 일대에서 C씨처럼 재중국동포와 결혼해 아내 명의로 공장을 세운 뒤 북한 인력을 고용한 사람이  5명이나 된다”고 전했다. 이들이 고용한 북한 인력은 회사당 적게는 300명에서 많게는 500명에 이른다는 게 A씨 전언이다.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한 공장도 단둥 현지에서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신사복과 아웃도어 등 3종 의류를 생산하는 이 공장은 북한 근로자를 1000여 명이나 고용 중이다. 일본 기업인 대부분이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재일교포가 대표인 이 공장 한 곳만 버티고 있자 현지에서는 “역시 한국인 핏줄이 섞여서인지 배포가 대단하다”고 수군거린다고 한다.



    北 ‘완장 맨’에겐 뇌물 대목

    단둥 일대에서 이처럼 북한 근로자 고용 기업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공장 운영을 강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북제재 속에서도 주문은 폭주하는 반면, 이를 생산할 공장은 대부분 문을 닫은 상황이라 오히려 지금이 공장을 가동해 큰돈을 벌 수 있는 호기이기 때문. 게다가 처음엔 대북제재 위반 시 강력한 처벌이 걱정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특별한 처벌이 없을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점도 이들의 과감한 편법 공장 운영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편 A씨는 국제사회가 일제히 대북제재에 돌입한 뒤 이른바 ‘완장 찬’ 북한인의 돈벌이 방식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왔다. 대표적 사례가 통관 과정에서 뇌물 받기다. 북한 세관을 통과할 때마다 세관원이나 국가보위부 요원이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통관을 제때 해주지 않는데 이럴 때 뇌물을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 이는 평소에도 종종 있는 일이지만 대북제재 같은 비상상황에서는 뇌물 단가가 더욱 높아진다고 한다. 기존 뇌물 단가가 담배 한 보루였다면 대북제재 같은 비상시국에는 두세 보루까지 커진다는 얘기다. 평양에서 새로운 지시가 떨어질 때마다 이처럼 곳곳에서 ‘뜯어내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는 것이 북한의 특징이라고 한다.

    대북제재 강화로 중국 내 북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정신교육이 하루 두세 차례로 크게 늘어난 점도 ‘완장 맨’에겐 뇌물을 뜯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정신교육을 받으러 가야 한다”며 근로자들이 일하다 말고 몇 시간씩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아지면서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 이럴 때 근로자 감시 및 관리를 위해 파견된 국가보위부 요원에게 100위안(약 1만6000원) 정도를 쥐어주면 “그럼 동무네 공장은 외세의 압박에 맞서 조국을 위해 더욱 열심히 생산 활동에 매진하라”는 격려와 함께 정신교육에서 열외로 해준다고 한다. 이처럼 대북제재라는 위기는 북한 ‘완장 맨’에겐 일종의 뇌물 뜯어내기의 대목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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