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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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철도혁명’ … 한반도가 좁아 진다

고속철도 개통으로 서울-부산 2시간대 … 정차역 중심으로 지역 교통망 대변화 예고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03-24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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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철도혁명’ … 한반도가 좁아   진다
    2000년 9월27일 한국에 보낼 고속전철을 제작하고 있는 프랑스의 알스톰 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는 한국과 프랑스 기술자들이 어울려 길이 388m의 장대한 고속철 차량을 제작하고 있었다. 388m의 고속철은 20량으로 편성돼 두 대의 동력차(기관차)가 끄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은 이것과 함께 한 대의 동력차가 끄는 10량짜리 고속철을 혼성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20량짜리로만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그 차량을 바라보며 무심결에 “센놈이군”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알스톰사의 프랑수아 파바르 이사가 “센놈”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20량짜리를 보고 하나같이 ‘센놈’이라고 하는 바람에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파바르 이사도 ‘센놈’을 알아듣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전용선로 부분개통 탓 기존선로 구간에선 ‘中速鐵’

    이 ‘센놈’들이 4월1일 드디어 상업운행에 들어간다. 프랑스에서는 TGV(Transport tres Grande Vitesse)이고 한국에서는 KTX(Korea Train eXpress)로 부르는 차이가 있을 뿐 두 고속철은 외부 색깔부터 똑같다. 그러나 약간의 차이는 있다. KTX는 모두 46편이 편성되는데, 이중 12편은 알스톰에서 제작한 것이라 TGV의 판박이다. 나머지 36편은 알스톰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기업인 로템이 면허생산했는데 이 KTX는 앞의 것보다 힘이 1.5배 강하다(1만8000여 마력).

    KTX는 전용선로에서만 시속 300km로 달리고, 나머지 선로에서는 새마을호 정도의 속도만 낸다. 기존선로는 시속 300km 속도를 소화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이 유로스타에서도 발견된다. 프랑스와 도버해협을 관통하는 지하터널에는 TGV 전용선로가 깔려 있어 유로스타는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로 달리지만, 아시포드 이후의 영국 땅으로 올라가면 기존의 선로를 달리기 때문에 시속 100여km의 속도밖에 내지 못한다.



    KTX는 완전개통이 아닌 부분개통을 한다. 경부고속철도는 서울-시흥 간과 대전 조차장-옥천 간, 신동-부산 간은 아직 전용선로를 건설하지 못했고, 호남고속전철은 기존의 호남선을 전철화해 KTX를 투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KTX는 서울-부산을 2시간 40분에 주파한다. 그러나 전용선로가 완성되면 1시간 56분으로 줄어든다.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2시간 58분이 소요된다.

    지방도시 철도망 비약적 발전 계기 될 듯

    KTX 개통은 한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그 대답은 1964년 도쿄-오사카를 잇는 도카이도(東海道) 신칸센(新幹線)을 개통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고속철 시대를 연 일본에서 찾아보는 게 좋다. 신칸센 개통으로 6시간 50분(특급) 걸리던 도쿄-오사카 간이 3시간 10분으로 줄어들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69년 이 신칸센을 이용하는 승객 비율이 전체 철도 여객의 66%에 이르렀다. 도쿄-오사카 간은 일본에서 가장 이용객이 많은 노선이라고 하지만 일본 정부 관계자들도 이렇게 폭증할 줄은 몰랐다.

    그후 신칸센이 서는 역을 중심으로 반경 100km 지역을 연결해주는 지하철 등 지선철도망과 버스망이 구축되었다. 일본은 신칸센 정차역을 중심으로 사람과 산업이 밀집하는 ‘마디형’ 구조로 개편된 것이다.

    서울-부산 축선은 도쿄-오사카보다 더 높은 전 인구의 73%, 지역생산의 70% 정도가 밀집해 있는 ‘한국에서 가장 바쁜 지역’이다. 따라서 KTX 노선은 신칸센보다 짧은 시간에 가장 매출이 많을 뿐만 아니라 철도청의 만성적자까지도 해결해주는 ‘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KTX 운행이 본격화되면 천안아산, 대전, 동대구 등 정차역은 일본에서처럼 반경 100km 지역을 이어주는 지선교통망의 축이 된다. 지선교통망의 대표는 큰 도시에서는 지하철이나 전철, 작은 도시에서는 버스가 담당한다. 이중에서도 주목되는 부문이 지선철도망의 구축을 통한 ‘철도 르네상스’의 도래이다.

    일본 2위의 도시인 오사카(인구 260만명)에는 8개 지하철 노선이 있다. 여기에 도쿄로 가는 장거리 노선(신칸센)과 교토나 고베 등의 인근 대도시와 간사이공항을 잇는 철도가 그물처럼 감싸고 있어 오사카에서는 자동차가 없어도 원하는 곳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반면 한국의 2위 도시인 부산(371만명)에는 2개, 3위인 대구(252만명)에는 겨우 1개의 지하철 노선만 있다. KTX의 개통은 빈약한 지방도시의 지선철도망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KTX를 공급한 알스톰은 이미 이러한 것을 예측해 한국에 유코레일이라는 자회사를 두고 대구 지하철 신호사업 참여를 필두로 신규 전철사업에 진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의 철차(鐵車)업체는 수주물량 부족으로 세 회사가 통합해 로템이라는 단일 회사가 되었는데, 로템 역시 철도 르네상스에 대비해 갖가지 신형 도시철도를 준비해놓고 있다.

    KTX 개통은 정차역을 복합 콤플렉스로 만들 전망이다. 파리와 도쿄 등 대도시의 고속전철역은 지하철 등 지선철도는 물론이고 쇼핑센터와 호텔 극장 등을 포괄한 지역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역’으로서의 단일 기능만을 위해 존재해온 한국의 기차역 또한 KTX 개통을 계기로 복합 콤플렉스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KTX 정차역은 교통과 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4·1  철도혁명’ … 한반도가 좁아   진다

    차기 고속전철들. 왼쪽부터 한국 로템이 개발한 G7, 2층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E1 신칸센과 역시 2층인 프랑스의 차기 TGV.

    프랑스의 드골국제공항은 프랑스와 유럽 각지로 향하는 TGV 열차와 파리 일대로 나가는 각종 지선전철이 들어오는 역을 포괄하고 있다. 때문에 여객 처리 속도가 매우 빨라 세계적인 허브 공항으로 발전했다. 인천공항이 진정한 허브 공항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곳까지 고속철과 서울의 지하철이 들어와야 한다. 이러한 구상도 철도 르네상스를 실현하는 방안이 된다.

    KTX 정차역을 중심으로 사람과 산업이 몰리는 마디형 구조가 정착될 즈음 한국은 차기 고속철 개발에 본격 참여하게 된다. KTX 13편부터 알스톰의 기술을 받아 면허 생산한 로템은 자력으로 시속 350km를 달릴 수 있는 차기 고속철 G7을 개발해 2007년 상업운전에 투입한다는 계획하에 갖가지 시험을 하고 있다. 또 로템은 2005년 세계 4위의 철차 제작사가 되겠다는 야심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로템의 성장은 원조 개발사인 알스톰에 부메랑이 될 수가 있다.

    이에 대해 알스톰측은 “로템에 제공된 것은 1994년 기술이다. 그 사이 우리는 시속 500km를 달리는 4세대 고속철을 개발했다. 일본과 독일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일본의 미쓰비시는 운송력을 40% 증가시킨 2층 객차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시속 300km대의 1층 고속철을 원하는 국가가 있다면 로템과 알스톰은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말로 자신감을 표현했다. KTX 개통은 한국이 ‘중저가’ 세계 고속철 시장에 진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센놈이 나오면 더 센놈이 나오는 고속철 시대는 당분간 한국을 더욱 바쁘게 만들 것이다. 용산역과 천안아산역, 그리고 대전역 일대는 미군기지 이전과 신행정수도 건설 등과 맞물려 땅값이 초고속 상승하는 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고속철이 정착된 일본과 프랑스 독일에서는 부동산 투기도 없이 차분하기만 한다. 고속철도 개통은 차분하면서도 성숙된 문화로 가기 위한 한국 사회의 ‘마지막 잰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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