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5

2004.03.11

전쟁 탈출 … 사랑 찾아 “고향 앞으로”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03-04 17: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쟁 탈출 … 사랑 찾아  “고향 앞으로”
    앤터니 밍겔라의 신작 ‘콜드 마운틴’은 줄거리와 제작진 명단만 본다면 남북전쟁을 무대로 한 그의 전작 ‘잉글리시 페이션트’처럼 보인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전쟁의 폐허를 무대로 한 로맨스, 만날 듯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어긋나는 연인들의 운명.

    그러나 이 영화에서 ‘잉글리시 페이션트’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와 같은 뜨거운 로맨스를 기대하지는 마시라. ‘콜드 마운틴’은 그런 종류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콜드 마운틴’은 남북전쟁판 ‘잉글리시 페이션트’보다 남북전쟁판 ‘오디세이’에 가깝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인 인만과 에이다는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이다. 영화 초반에 잠시 만나 사랑을 속삭이던 이들은 남북전쟁으로 인해 헤어진다. 3년 동안 끔찍한 전쟁을 겪은 인만은 결국 탈영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하고, 목사인 아버지가 죽고 홀로 남겨진 에이다는 목장 일꾼인 루비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익혀나간다.

    이 영화가 은근히 공허하다는 느낌을 준다면, 그건 그 공허함이 어느 정도 영화와 원작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콜드 마운틴’은 격정적인 로맨스 영화가 아니다. 인만과 에이다는 그런 사랑에 이를 만큼 자주 만나지도 않고 서로를 깊이 알지도 못한다. 그들이 서로를 갈망하는 이유는 오히려 끔찍한 전쟁이 상대방을 이상화했기 때문이다. 인만과 에이다는 서로에게서 이미 사라져버린 문명화되고 안전한 세계의 상징이다.

    우리는 두 주인공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영화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발버둥치는 탈영병과 힘겹게 목장을 운영해나가는 목사의 딸 이야기는 설득력 있고 때로는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영화 대부분 두 주인공이 만나지도 못하고 떨어져 있는 이야기를 영화로 풀려면, 두 주인공 역에 주드 로와 니콜 키드먼이란 매력 있는 스타를 캐스팅하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는 중심도 없이 흐트러져 있다가 충분한 극적 긴장이나 갈등 없이 맥 빠진 채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콜드 마운틴’은 전체보다 부분 부분이 더 재미있는 영화다. 인만과 에이다의 이야기는 따로 떼어놓고 감상하면 더 쉽게 다가온다. 이들의 이야기는 나탈리 포트먼, 조바니 리비시, 브랜든 글리슨과 같은 능력 있는 배우들이 연기한 흥미로운 조연들에 의해 보완된다. ‘잉글리시 페이션트’와 ‘리플리’가 그랬던 것처럼 노련한 프로페셔널들이 만든 이미지와 사운드는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밍겔라는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전쟁 스펙터클을 종종 집어넣기도 한다. 특히 도입부에 나오는 전투 장면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이 모든 기술적 장점들을 고려한다고 해도 ‘콜드 마운틴’은 여전히 조금 미심쩍은 영화로 남는다. 제작사인 미라맥스의 아카데미용 영화들의 밑천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는 것일까?





    영화평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