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5

2004.03.11

서산 간척지 농지분양 함정 없을까

영농조합들, 투자·주말농장 등 명목으로 도시민 유혹 … 지역업자들 “개발 불가능” 폄훼 의견 많아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3-04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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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 간척지 농지분양 함정 없을까

    ‘현대가 만든 서산 간척지\'가 조각조각 도시민에게 분양되고 있다. 농지로서는 최고의 땅이지만 부동산 투기 바람에 휩쓸려 농지 가격이 상승할 경우 이는 ‘영농조합\'의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전국 최고의 투자가치가 있는 서산 땅에 투자하고 우리 농어촌도 살리는….’(A영농조합) ‘개발특수 타고 껑충껑충 시세 뛰지, 친환경 쌀 140kg씩 보내오지, 자식들에게 번듯한 땅 남겨주지….’(B영농조합)

    ‘서산 간척농지 300평 소유권 등기, 매년 친환경쌀 120kg 증정, 주말농장 5평 무상 이용, 특급별장(펜션) 이용권 제공….’(C영농조합)

    최근 몇 달간 신문지면에 자주 나오는 엇비슷한 광고문구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배 물막이 공사’로 유명한, 서산 간척지 천수만 AㆍB지구 특별 분양광고다. 현란한 선전문구가 ‘땅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도시민의 정서를 강하게 자극하는 데다 충남지역의 ‘묻지 마 투자열풍’과 맞물리면서 불과 반년 만에 3만명 이상의 투자자가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곳에서는 ‘서해안 영농조합’이 지난해 6월 처음 분양에 들어가 30만평 이상의 분양 실적을 거두자, 우후죽순처럼 영농조합들이 급조돼 현재는 10여개 업체들이 분양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에 자극받아 충남 당진대호지구 조합들이 가세했고 심지어는 제주도 감귤농장까지 합류해 가히 농지조합의 땅 분양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투자에 따른 위험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분쟁의 소지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천수만 AㆍB지구는 어떤 땅인가



    서산 간척지 농지분양 함정 없을까

    1984년 고 정주영 회장은 폐유조선을 이용한 ‘배 물막이 공사’(일명 정주영 공법)로 여의도의 48배에 해당하는 서해안을 간척했다. 이것이 지금의 서산농장이다. 천수만 A·B지구 일대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부각되고 있다.

    현대건설이 1980년대 조성한 ‘서산 A·B지구 간척농지’는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의 1%에 해당하는 3100만평에 이르는 초대형 농지다. 완전 기계화 영농이 가능해 국내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농지인 이곳은,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로 부각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2000년 말 유동성 위기에 놓이면서 일반 매각을 추진해 2001~2002년 700여명에게 약 1000만평을 팔 수밖에 없었다. 현대건설의 모 이사가 “분하고 치욕적인 상황이었다”고 통탄했을 만큼 이곳은 현대그룹의 상징적 자산이었다. 게다가 2003년에는 1448만평을 평당 2만원에 피해 농어민 우선 매각분으로 처분했는데, 현재 도시민 1인당 300평으로 쪼개지고 있는 땅은 현대건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피해농어민 보상분이다. 이것이 도시민에게 주말농장이란 이름으로 재분양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인기의 실체는 거품?

    “조합에 농사지을 땅을 달라는 농민들의 문의가 쇄도합니다. 결국 지역농민들은 안정적인 소유 구조를 갖춰 대규모 경작을 할 수 있게 됐고, 도시민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품질 좋은 쌀을 공급받을 수 있는 이상적인 영농모델입니다.”(서해안 영농조합 관계자)

    사업내용은 300평의 논에서 기계화 영농을 통해 80kg 쌀 5가마가 나온다면, 1가마 반은 도시민에게, 1가마 반은 영농조합과 비용 등으로, 나머지 2가마는 농민이 가지는 형식이다.

    현재 판매되는 상품 내용은 거의 비슷해 도시민에게 주말농장용으로 300평을 평당 4만3000원에 분양한다는 내용이다. 영농조합들은 한결같이 위탁영농을 조합에 일임하는 것을 전제로 소유권 이전등기는 물론 연간 120~160kg의 쌀 제공, 5평 텃밭, 농어촌 체험행사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투자모델이 나올 수 있게 된 이유는 올 1월 농지법이 개정돼 도시민이 농지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농업 부문의 농지수요가 감소하고 농지가격이 하락함에 따른 농지거래를 활성화하고, 도시민에게 농촌 투자 기회를 주기 위해’ 개정된 농지법에 따라 도시민 1가구당 302평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농지분양 사업이 인기를 끄는 것은 언젠가 땅값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 때문이다. 분양관계자들은 “이 기대는 이미 현실화돼 “2만원에 거래되던 땅이 현재는 2만8000원을 넘어서 3만원에 육박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충남지역의 땅값은 최근 두 달 새 50%가 오를 정도로 치솟고 있다. 땅 투기 열풍의 새 중심지로 서산과 당진 등 서해안 지역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산지역 한 부동산업자는 “서울에서 밀려드는 투기꾼들로 매물이 사라지고 호가만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서산 AㆍB지구 농지 분양대금도 꾸준하게 올랐다. 지난해 분양물이 평당 4만원이었다면, 올 초에 분양된 물량은 대개 4만3000원, 2월 말에 분양 공고된 농지는 4만6000원까지 상승했다.

    그렇다면 농지 분양에는 함정이 없는가. 현대건설과 서산 간척지 농민들은 서산 간척지가 건전한 주말농장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용으로 전락한 점을 문제 삼는다. 오로지 농지로만 활용될 수 있는 땅이 ‘투기 열풍’으로 인해 가격만 상승할 경우 그 거품의 폐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4만 6000원은 턱없이 높은 가격이다.

    실제로 초기의 농지조합을 제외한 대부분의 농지조합은 부동산 컨설팅업체들이 농민들과 결합해 만들어졌다. 일부 컨설팅업체는 지난해 말 농민들이 2만원에 불하받은 딱지를 웃돈을 주고 매입해 원소유주인 현대건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영농조합의 본업이 부동산 장사로 귀결된다면 지속적인 영농사업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서산지역 부동산업자 중에는 “이 땅은 서산지역 사람들이 관심조차 갖지 않는 땅이며 우리 시대에는 개발이 불가능하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는 사람도 있다. 실제 거래가격은 2만원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장기보유 목적 이외로 토지를 매입할 경우 가격을 많이 낮추지 않고는 쉽게 현금화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 농민들은 “도시민들의 장기적인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농업을 위한 내실 있는 영농조합 건설과 땅값 논란을 잠재우는 일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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