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5

2004.03.11

윤교장 자살로 몬 범인 누구인가

‘왕따 동영상’ 세상 비난 ‘악몽 일주일’ … 감당키 힘든 자괴·모멸로 극단의 선택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3-04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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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교장 자살로 몬 범인 누구인가

    ‘왕따 동영상’이 촬영된 3학년 4반 교실 모습과 윤교장이 쓰던 책상(위). 윤교장의 자필 메모(왼쪽).

    2월26일 오전 11시, ‘왕따 동영상’ 사건이 발생한 경남 창원시 B중학교 교정은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이 사건 파문으로 자살한 윤모 교장의 영결식이 열린 후 교직원과 학생들이 모두 장지로 떠났기 때문이다. 텅 빈 교장실에는 윤교장이 쓰던 책상과 서류 뭉치, 자필 메모들만이 남아 그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62년 교편을 잡은 후 40여년간 교육자의 외길을 걸었던 윤교장의 자살은 많은 이들에게 ‘도대체 그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을 남겼다. 경찰 수사에서 윤교장이 네티즌의 협박을 받거나, 교육청 조사관에게 모멸적인 대우를 받은 바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한때 타살 의혹까지 일기도 했다.

    그러나 ‘왕따 동영상’ 파문이 시작된 2월16일부터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22일까지 윤교장을 지켜본 이들은 “자살은 어쩌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라며 극단으로 내몰린 일주일을 안타까워했다. 과연 그동안 윤교장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윤교장의 책상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제목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사 스크랩, 피해 학생 아버지의 언론 인터뷰 등을 출력한 문서들과 2월16일 한 학부모가 보낸 편지가 남겨져 있었다. ‘동영상을 보고 참을 수 없어 남긴다’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내 자식이 이런 일을 당한다면 나는 아마 미쳐서 가해자들에게 어떻게든 보복할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결단을 내리셔야 한다’고 쓰여져 있다. 그 뒤에는 여러 언론사 기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조기 수습 불구 일방 비난과 취조



    B중학교의 한 교사는 “언론에 연일 ‘왕따 동영상’ 사건이 보도되면서 네티즌들의 항의 편지로 학교 홈페이지가 폐쇄되고, 기자들의 취재 전화가 빗발쳤다.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취조하듯 따지는 이들에게 시달리면서 교장 선생님은 자괴감과 모멸감을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사건 초기만 해도 윤교장은 ‘장난으로 시작된 동영상 촬영이 언론에 보도돼 문제가 커졌다’고 보고 조기 수습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 그의 집에서 발견된 ‘정면 돌파’ ‘해명’이라는 자필 메모처럼, 기자들을 만나 취재에 응했고 가해자와 피해자 부모 사이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나서기도 했다. 특히 피해자 조모군은 중학교 1학년 때 김해의 한 중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학생으로 이를 안 윤교장이 전학을 받아준 사실에 대해 항상 고마워했기 때문에 직접 나서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18일 조군의 아버지가 가해자 최모군을 형사고발하겠다는 입장을 접고 위자료를 받는 선에서 합의해주기로 결정하자 윤교장은 사건이 끝난 것으로 여기고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이틀 뒤 모 언론이 동영상은 수업시간에 촬영됐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파문은 오히려 확대됐다. ‘같은 반 친구들 사이의 장난이었다’고 결론 내렸던 경남교육청은 전면 재조사 방침을 밝혔고, 윤교장은 사직서를 내야 했다. 네티즌들은 “윤교장이 모든 것을 알고도 축소·은폐하려 한 것 아니냐”며 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윤교장 자살로 몬 범인 누구인가

    ‘왕따 동영상’ 사건이 벌어진 창원 B중학교와 복도. 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한 반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 사이였다.

    이에 대해 B중학교의 한 교사는 “두 학생은 같은 반에서 짝을 오래 한 친구였고, 이 동영상을 찍은 바로 다음날 졸업식에서 함께 사진도 찍었다. 최군이 친구가 별로 없고 소심한 조군에게 ‘심한 장난’을 친 것은 맞지만, 언론과 네티즌들이 학교 교사와 친구들의 말은 믿지 않은 채 이것을 무조건 폭력사건으로 몰고 갔다. 그 상황에서 교육자의 양심과 자존심은 무엇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그 동영상이 수업시간에 촬영됐다는 언론 보도는 명백히 과장된 것”이라며 “그것이 윤교장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왕따 동영상’이 촬영된 11일은 졸업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고, 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정상적인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

    “그날은 인근 고등학교의 반 배치고사가 있어서 3학년 학생의 절반 정도가 등교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동영상이 촬영된 3교시에는 담당 교사가 출산 휴가를 가고 없어 1학년 교사가 대신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놀아도 그냥 ‘조용히 좀 있어, 이놈들아’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죠. 그걸 수업시간에 교사가 왕따를 방치했다고 보도하는 게 말이 됩니까.”

    그는 “그 동영상에서 수업시간에 찍은 부분은 3교시가 끝나기 전 43초 가량에 불과하다”며 “언론의 취재경쟁으로 사건이 부풀려지지만 않았으면 애당초 사건조차 될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윤교장은 자신이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교장실 책상에는 ‘A사는 기자 4명이 취재해 사안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B사는 직접 취재한 이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알 일을…’이라며 언론사의 보도 태도를 평가해놓은 자필 메모가 놓여 있었다.

    자신의 간접적인 중재로 상당한 액수의 위자료를 받은 피해자 부모가 사건 수습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은 점도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유족들은 윤교장이 수업시간 촬영 사실이 보도된 후 “나는 정말 몰랐다. 하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새 학기를 준비할 수가 없다. 사표가 반려된다 해도 교직을 그만둘 것”이라며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교사 긍지·학생 사랑한 삶뿐인데…”

    윤교장의 부산사범 시절 동기도 “죽기 며칠 전에 함께 식사를 하며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위로하고 좋게 헤어졌는데 세 시간쯤 지나 갑자기 전화를 해서 ‘내 사표를 반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는 게 사실이냐. 하지 마라’라고 하며 화를 내 깜짝 놀랐다. 감정 동요가 심하고 신경이 예민해졌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윤교장은 이 사건 이후 스트레스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윤교장이 사망한 22일 오전 그의 집을 찾았던 동서 어모씨는 “안방에 누워 있다가 나오는 모습을 보니 정신이 몽롱해 보였다. ‘일주일 내내 30분 이상 못 잤고, 매일 오전 2~3시에 들어왔다. 때로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하더라”며 “함께 병원에 가서 영양제와 신경안정제 링거를 맞게 했다”고 말했다.

    주사를 맞은 후 윤교장은 처음으로 밥 한 그릇을 비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이 식사 도중 남긴 “사표를 제출하면 모두 정리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관련자 처벌이 더 강해질 것 같다. 사건이 마무리된 후 사표를 썼어야 하는데, 다른 교사들에게 피해만 준 것 같아 미안하다.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라는 말은 그의 유언이 됐다.

    이날 오후 7시15분경 윤교장은 그의 부탁을 받은 아내가 담배를 사가지고 들어온 5분 사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에 따르면 윤교장은 소파에 기댄 채 부엌칼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21cm 길이의 칼날이 모두 박혀 폐와 심장이 관통될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10년째 강력계에 근무한다는 창원서부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그동안 많은 자살사건을 접했지만 칼을 이용한 것은 2건밖에 못 봤다. 제정신으로는 이렇게 죽을 수 없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끔찍한 자살이었다.

    언론사 기자들의 빈소 접근을 막던 한 유족은 “그분은 평생을 교사로서의 자존심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만으로 산 분이다. 그것을 의심하고 모함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 살 의미를 잃었을 것”이라며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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