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우리나라는 핵융합 선진국 그러나 정치 눈치 보느라 …

  • 박성래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입력2003-12-31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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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말, 미국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는 ‘국제핵융합로(ITER)’ 건설부지를 결정하는 각료급 회의가 열렸다. 후보지 대상에는 이미 일본(아오모리현 6개 마을)과 프랑스(카다라슈시)가 자원하고 나섰다. 7개 회원국 가운데 캐나다가 불참한 가운데 투표가 진행됐지만 3대 3으로 팽팽히 맞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프랑스를 지지했고, 미국과 한국은 일본을 지지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사실은 국내 언론에는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은 어차피 핵융합로 건설지로 선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12월10일 프랑스의 대통령 특사가 한국을 방문해 외교통상부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를 만난 일은 자그마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프랑스 특사는 한국 정부를 설득하려 노력했음은 물론 기자회견을 열어 만일 한국이 프랑스를 지지해준다면 한국과 핵융합에 관한 과학기술을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핵융합이란 수소폭탄의 평화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원자폭탄의 평화적 모습이 오늘날 세계에 널리 이용되는 원자력발전소라면, 수소폭탄은 핵융합발전소로 활용 가능하다. 이는 바다 속에 거의 무한정으로 있는 자원인 중수소(重水素·deuterium)와 삼중수소(三重水素·tritium)를 이용하여 방사능 우려가 거의 없는 에너지원으로 만들 수 있다. 원자력발전이 무거운 원소의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라면, 핵융합은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1억℃ 이상의 높은 온도의 플라스마 상태에서 결합시켜 중성자와 알파입자(헬륨의 원자핵)로 변환하여 발생된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다.

    수소폭탄은 미국(1952년)과 러시아(1953년)에서 실험에 성공했고, 그후 계속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것이 대체에너지 개발을 위한 기술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한국도 이미 1980년대부터 기초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1990년대에는 대전의 기초과학연구소에 핵융합개발단(KSTAR)을 만들어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한국의 핵융합로 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그 수준을 평가할 자격이 없지만 프랑스와 일본에 비해 뒤떨어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도 만만치 않아서 선진국 몇몇 나라와 함께 이 국제계획에 포함된 것이다.



    이 국제 프로젝트의 총 예산은 무려 13조원에 달한다. 지름 20m의 거대한 도넛 모양으로 진공시설을 만들어 핵융합로 실험을 하는데, 1억℃ 이상의 높은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당연히 그 고온의 플라스마를 그릇에 담아둘 수는 없는 일. 다행히 플라스마는 전기를 띤 알갱이들이기 때문에 강한 자기장을 만들어 그 플라스마를 공중에 띄운 채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 핵융합로는 쉽게 설명하자면 ‘지상의 태양’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가장 유망한 장치로는 40년 전 러시아에서 처음 개발했다는 토카막(Tokamak)형이다. 유럽연합은 이 장치를 만들어 이미 6분 정도 가동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다. 15분 이상 가동하면 상업적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는 이를 유치하려 해도 그 장소를 결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할지 모른다. 또한 이번에 우리 정부가 프랑스를 지지하지 않고 일본 편에 선 것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6자 회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과 정치가 만나는 모습을 엿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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