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2004년 어떤 기술이 가장 뜰까

과학자들, 주목할 ‘기술 키워드’로 수소·유비쿼터스·로봇·바이오장기·분자자기조립 꼽아

  • 유지영 / 과학신문 기자 jyryoo@sciencenews.co.kr

    입력2003-12-31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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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어떤 기술이 가장 뜰까

    휴대 단말기로 채소에 이식된 칩의 정보를 확인하는 모습, 대한민국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손꼽힌 디지털 PDP TV(왼쪽부터).

    과학기술의 발전은 역사를 진보케 한 원동력이다. 산업혁명은 사소한 증기기관에서 시작됐고 전기의 발견은 정보화시대를 탄생시켰다. 원자폭탄 같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DNA 발견으로 대표되는 의학의 발달을 전제하지 않고는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

    새로운 사고의 틀을 제시해온 과학기술의 발달은 2004년,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던질 것인가.

    과학자들은 2004년 한해를 뜨겁게 달굴 키워드로 ‘수소’ ‘유비쿼터스’ ‘로봇’ ‘바이오장기’ ‘분자자기조립’을 꼽았다. 이들 기술은 미래산업의 핵심기술이라는 점에서, 또한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인간의 기분을 감지하며 사람처럼 걷고 대화하는 로봇, 수소 에너지로 움직이는 자동차, 인간의 위장을 생산하는 돼지, 분자 단계부터 치밀하게 디자인한 신물질…. 먼 미래에나 실현 가능할 일들이라 생각되지만, 사실 이들 기술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수소 에너지 시대 개막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 전기선을 끌어들이는 대신 수소발전기를 이용해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 주유소에선 석유 대신 수소를 채워넣고, 집집마다 이어진 가스관으로는 LNG(액화석유가스) 대신 수소가 흐른다. 건전지는 사라지고 수소충전지로 대체된다….

    2004년은 화석 에너지의 대안으로 떠오른 수소에 대한 논의로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수소 에너지는 이미 미국과 일본에서 상업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유럽에서도 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미국에서 10Mw급 발전용 연료전지 기술개발에 성공하면서 수소시대에 대한 전망이 한층 밝아졌다.

    우리나라도 수소를 국가 기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본격적인 투자에 들어갔다. 특히 올해는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수소 에너지 보급과 사용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수소 에너지 기술이 완전히 자리잡기까지는 적어도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연료전지센터의 오인환 박사는 “기술적으로는 이미 휴대용 연료전지부터 대용량 발전기술까지 개발이 완료된 상황이지만, 수소를 보다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 및 인프라 구축이 관건이다”고 말했다.

    수소는 여러 측면에서 매우 편리한 에너지원으로 평가받는다. 도시가스처럼 수송관을 통해 곳곳에 배달할 수 있고, 이를 가스처럼 태워서 밥을 짓는가 하면, 가정에서 소형 발전기를 돌려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 수도 있다. 또한 휘발유 대신 자동차 연료로도 사용할 수 있다. 때문에 전기 형태로만 생산 가능한 다른 대안 에너지들에 비해 사용범위가 훨씬 넓어 매력적이다. 이 점이 바로 수소 에너지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 중요한 요소다.

    앉는 사람의 기분에 맞춰 기능이 조절되는 의자, 사용자의 건강 상태와 피곤 정도를 감지해 운동의 강도를 자동으로 조절하고 운동량에 대한 정보를 바로 주치의에게 전달하는 헬스기기, 운전자의 일정을 확인해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는 자동차, 일주일 동안 섭취한 식품을 영양학적으로 분석해 바람직한 식단을 알려주고 필요한 식품을 자동 주문하는 냉장고….

    공상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런 똑똑한 물건들과 우리가 동거동락할 날도 멀지 않았다. 바로 사물에 두뇌를 달아주는 유비쿼터스의 시대가 본격 개막을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IT(정보기술) 분야의 관심은 유비쿼터스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에 집중될 전망이다. 유비쿼터스(Ubiquitous)는 라틴어로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것을 통해서든 온라인 네트워크에 접촉할 수 있다는 의미의 이 신기술은 컴퓨터를 통해서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뒤엎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이미 2002년 유비쿼터스 기술로의 조류 변화는 확인된 바 있다. IT 신기술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정보기기 박람회 ‘텔레콤월드’는 4년 전부터 꾸준하게 IMT2000을 최대 화두로 지목했다. 그 자리를 2003년 유비쿼터스가 대체해버린 것. 자동차 통신기기는 물론이고, 의자 침대 전등 냉장고 등 모든 일상생활기기에 1cm3 정도의 작은 컵퓨터칩을 내장함으로써 최첨단 정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학계는 벌써부터 유비쿼터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고 나섰다. 본격적인 정보통신 사회의 기반에 유비쿼터스 환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공유했기 때문. 여기에 2004년부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업계에서도 관련 연구에 속속 동참할 예정이다.

    분자기 조립 - 新물질의 창조

    2004년 어떤 기술이 가장 뜰까

    단백질 분자구조 모형. 분자단계에서 치밀하게 디자인한 신물질의 개발이 눈앞에 다가왔다.

    전국체전이나 올림픽 개막 행사의 단골 메뉴 중 하나인 매스게임. 무질서하게 운동장으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어느새 오와 열을 맞추더니 하나의 그림을 완성한다. 또 대열을 흩뜨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또 다른 그림을 그려 관객을 환호하게 한다.

    이 매스게임처럼 분자들도 화학자의 의도에 따라 분자 스스로 결합하여 새로운 물질로 변화하는 데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이른바 분자자기조립이라는 고난도 기술. 무질서하게 운동장으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이미 정해진 자기 위치로 가는 것처럼, 자기조립은 분자간의 상호 인력 작용에 의해 분자질서가 정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이 기술을 응용하면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고분자를 이어붙이는 블록공중합체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NT(나노기술)의 중심 기술로 거론되는 이 분자자기조립 기술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재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2004년 주요 관심대상으로 떠올랐다.

    분자마다의 개별적 성질과 분자와 분자 간의 물리적 성질을 파악하면, 필요한 물질의 합성이 가능해진다. 이는 화학물질을 벌크 단위로 합성하고 이중에서 유용한 성분만을 골라서 사용하던 기존의 화학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식.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분자자기조립에 주목하는 이유다.

    또한 이 기술은 생명과학 분야에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생명체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DNA, RNA, 단백질 등 생체 고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분자결합구조를 먼저 규명해야 하는데, 이는 분자자기조립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이 분자자기조립은 생명 창조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기술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로봇 기술은 2004년에도 여전히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2003년 말, 소니가 제작한 로봇 ‘큐리오’는 인간처럼 자연스런 움직임을 선보여 로봇 기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큐리오는 공중으로 점프해 100분의 4초 정도 떠 있을 수 있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빠른 걸음으로 1분에 14m 정도의 거리를 이동할 수 있다. 또 옆으로 이동하거나 돌기, 공 던지기, 부채춤 추기 등 다양한 운동 기능도 선보였다.

    큐리오가 인간의 운동형태를 훌륭하게 재연해냈다면, 사람의 기능을 일부 흉내낸 로봇들도 속속 등장했다. 청소하는 로봇이나 책 읽어주는 로봇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이 같은 기술의 발전을 바탕으로 올해를 고비로 로봇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로봇산업의 부가가치 비율은 무려 50%대에 육박한다. 또한 세계시장 규모는 2005년 1500억 달러에서 2012년에는 2500억 달러로 증가하고, 2020년경에는 자동차 산업을 능가한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특히 로봇은 단순한 제조기술이 아니라 기계-전자-생체-나노-정보기술의 종합체라는 점에서 여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매우 크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등 굵직한 기업들이 로봇산업에 관심을 보이며 대학, 연구소 등에서도 관련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천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5년 가량 뒤진 상태지만 기계 및 메카트로닉스 산업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에 놓쳐서는 안 될 분야이며, 머지않아 선진국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바이오 장기로 생명연장의 꿈

    인간의 오장육부를 기기 부속품 갈아 끼우듯 교체하는 일이 가능할까. 이 물음에 대해 과학자들은 ‘시간문제’라고 답한다. 이미 관절이나 뼈는 물론이고 심장 혈관 고막 항문 혈액까지 다양한 신체부위가 과학의 발전에 따라 생산되어 교체되는 수술까지 시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동물을 이용해 인간의 장기를 생산하는 바이오장기 분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과학계의 주요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이미 국내 BT(생명기술) 분야의 중심축도 바이오장기 분야로 급속하게 옮아갔다. 2002년과 2003년을 뜨겁게 달군 유전자 분석 연구와 유전자 치료 연구 분야가 주춤한 틈을 타고, 신산업 창출 가능성이 큰 ‘바이오장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바이오 산업계에서는 새로운 사업 모델로 바이오장기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상태. 이는 정부가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바이오신약 및 바이오장기를 택한 영향도 크게 작용했다. 이 분야에 연구비가 대거 몰릴 것이라는 관측이 BT 분야로의 이동을 부추긴다는 설명이다.

    바이오장기는 폴리에틸렌 테플론 등 인공고분자를 이용해 만든 기존 인공장기와 달리 동물에서 직접 얻음으로써 보다 생체 친화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천문학적 숫자에 달할 전망이다.

    특히 우리 연구진이 바이오장기 연구의 선행조건이라 할 수 있는 ‘면역돼지’ 생산기술을 확보한 사실은 중요한 강점으로 꼽힌다. 면역돼지는 유전학적으로 완전한 무질병에 무균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적어도 30년간의 집중적인 관리 아래 교배를 해야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생물자원이다. 시작은 늦었지만, 국제경쟁에서 선진 그룹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여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선정하여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2004년에 유행할 5가지 키워드와 일치하는 분야가 적지 않다. 앞으로는 성공하는 과학기술의 조건이란 상업적으로도 성공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또 한번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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