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청담동 문화 터줏대감 변신은 무죄

아름다운 1% 나눔 실천 김용호씨 … “소설가·와인바 사장 시작 우연 아닌 운명”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3-12-31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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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담동 문화 터줏대감 변신은 무죄

    ‘아름다운 재단’의 평범한 기부자들을 사진에 담아 책과 전시로 발표한 사진작가 김용호씨.

    ”요즘 제가 이런저런 일을 한꺼번에 해서, 평소 알던 사람들도 동명이인이 아닌가 헷갈려 하지요.”

    2003년 9월 소설 ‘소년’ 출간, 11월 ‘한국문화예술명인’ 사진전, 12월 ‘아름다운 사람들 나눔의 이야기’전과 사진집 발행, 가수 이혜영 누드 사진 촬영. 그리고 가장 최근인 12월24일엔 와인바 ‘A.O.C’를 시작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피곤한 한 해라 결국 성탄절에 그는 열 살 난 아들과 하루종일 잠만 잤다고 했다. 2003년 무척이나 하는 일이 많고도 넓었던 이 남자는 사진작가이자 패션 에디터들이 ‘청담동 문화를 혼자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용호씨(48)다.

    민족사진가협회 발기인이자 현재 한국패션사진가협회 회장으로 사진계에선 언제나 첫 번째 줄 어딘가에 이름이 놓이는 그는 소설가이자 와인바 사장의 명함을 덧붙였다. 또 10년 전부터 운영해온 광고회사 ‘도프 앤 컴퍼니’를 전문 영역에 따라 ‘컬처 앤 컴퍼니’ ‘솔트 앤 컴퍼니’ 등으로 나누어 명목상은 ‘기업집단’ 총수가 부럽지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도프 앤 컴퍼니’는 상업적인 광고와 이벤트 등을 계속하고, ‘컬처 앤 컴퍼니’는 한국 문화의 뿌리를 찾는 일처럼 ‘돈 안 될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시작한다. ‘한국문화예술명인’전과 ‘아름다운 사람들 나눔의 이야기’전은 그 첫 번째 사업이다.



    누드·다큐 사진작가로 명성

    ‘한국문화예술명인’전은 서양화가 권옥연, 시인 김남조, 인간문화재 이매방,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등 말 그대로 평생을 한국 문화계와 함께한 스물여덟 예술가들의 ‘초상화’전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무대나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에서 아티스트를 설명한 사진이 아니라 사진관에서 찍은 흑백 증명사진들처럼 보인다. 얼굴의 면과 선만으로 예술가의 ‘증명’사진을 만들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진을 워낙 많이 찍은 분들이라 그저 얼굴 사진을 찍겠다는 이번 기획을 설명하는 데 무척 어려웠어요. 뭔가 좋은 걸 만들어보자는 약속만으로 이뤄진 거지요.”

    그는 최근 인터뷰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백남준씨도 뉴욕에서 촬영해와 화제가 됐다. 그는 이 사진들을 2×3m의 거대한 크기로 스타타워 빌딩에 설치했다. 압도적인 규모에 인물들의 존재감이 부여된 전시다.

    명인들의 사진을 찍는 동안 그는 ‘아름다운 1%의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촬영해달라는 또 다른 제안을 받았다. 이번에도 스물여덟, 평범하지만 자기가 가진 돈의 1%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아름다운 재단’(이하 재단)의 기부자들이다. 그는 한 달 넘게 전국을 누비며 이들을 취재했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능력을 나눔으로써 스물여덟 번째 기부자가 되었다.

    “워커힐 호텔에서 제 소설의 출판기념회를 후원해주었어요. 도움을 받았으니 저도 그만큼 좋은 일을 하고 싶었지요. 방송사 기자인 후배가 ‘재단’을 추천해 소설의 인세 30%를 기부하기로 한 것이 재단을 알게 된 계기가 됐지요.”

    안국동에서 함경도식 순댓국집을 하는 월남 노인 부부,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 지난해 과로사한 가장의 마음을 이어 1% 기부자가 된 가족 등 전혀 부자가 아닌 이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모습들이 그의 카메라에 담겼다.

    “초등학교 3학년인 우창이나 국악 신동 성현이처럼 용돈을 모아 기부하는 어린아이들이 제겐 참 놀랍더군요. 망설이지 않고 제 취재수첩에 ‘우리나라에 봉사단체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써주더라니까요.”

    인사동에서 ‘아름다운 사람들 나눔의 이야기’전이 열린 2003년 12월17일 기부자들의 글을 담은 그의 연두색 취재수첩도 사진집이 되어 나왔다 .

    청담동 문화 터줏대감 변신은 무죄

    김용호씨의 ‘아름다운 기부자들’. 함경도식 순댓국집을 운영하며1% 기부에 참여하는 최규학, 전순원씨 부부. 용돈을 모아 기부하는‘흥보가 완창’의 국악신동 이성현군(위부터).

    ‘한국문화예술명인’전과 ‘아름다운 사람들 나눔의 이야기’전이 그의 한 부분이듯 연예인 이혜영의 누드사진을 찍고 청담동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상업공간으로 바꿔놓은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도 그의 일부분이다.

    “누구는 그러던데 발기가 되면 외설이고, 발기가 되지 않으면 예술이라고.(웃음) 농담이지만 두 가지 요구를 다 만족시켜야 하는 작업이란 건 분명해요. 전 사진 상업작가니까, 클라이언트가 보수를 주고 일을 요구하면 그 일을 하는 겁니다. 일단 카메라를 든 사람에겐 대상이 누드든 명인의 얼굴이든, 다큐멘터리든 똑같아요. 똑같이 최선을 다하니까요.”

    이혜영을 10년 넘게 촬영해와 모델로서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가수인 이상민이 프로듀서가 돼 더 편했다는 것, 사진이 인터넷으로 서비스되기 때문에 포르노그래피 사이트를 질리도록 봤다는 것, 결과가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스러웠다는 것 등이 그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였다.

    그가 청담동에서 사진을 찍어온 10년은 청담동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문화와 취향의 상징으로 알려진 10년과 일치한다. 그동안 청담동은 패션지의 협찬 장소로, 또 시사고발프로의 카메라 현장으로 무수히 언론에 오르내렸다.

    “압구정동에서 일하다 조용한 곳을 찾아 온 게 청담동이었는데 내가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네요.”

    1996년 그는 청담동에 ‘도프 앤 컴퍼니’ 사옥을 지어 이사를 했다. 사옥 지하엔 와인바를, 1층엔 카페 ‘플로라’를 냈다. 지금 청담동의 상업 건물들이 대개 이런 형태지만, 당시는 아주 새로운 공간이었다. ‘도프’ 사옥은 그와 친분 있는 사진작가, 연극인, 모델 등으로 북적댔다. 연극인 박정자씨가 자발적으로 와인바 운영을 맡기도 했으니 청담동에선전무후무하게 순수한 사교 공간이 형성된 시절이었다. 이후 이곳에서 와인과 시가, 그리고 파티라는 청담동 스타일의 문화가 시작됐다.

    “늘 있던 것 새롭게 보여주는 편”

    외환위기 이후 광고주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자 사옥을 팔고 60명이던 직원도 줄여 옆 건물로 이사했지만, 그는 여전히 청담동 피플의 대명사다.

    10년 전 경복궁에서 핸드백과 구두를 촬영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듯-이 사진으로 많은 수상을 했다-그는 “뭔가 대단한 걸 창조한다기보다 늘 있는 것을 새롭게 보여주는 편”이라고 한다. 청담동에서 그가 한 일도 한두 사람씩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파티라는 투명한 ‘쇼윈도’ 안으로 모아서 보여준 일이다. 물론 색다른 조명과 무대 연출이 더해졌다.

    그러자 한국의 5% 마켓을 노리고 청담동에 상륙한 외국 브랜드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그를 찾아 홍보 파티의 기획을 맡겼다. 조직을 갖진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청담동 열풍 속에서 어떤 이가 자신을 바보처럼 과시하고 어떤 이가 자신을 성공적으로 포장하는 동안, 정작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리에서 주목을 받는 것이 불편하고, 간혹 그런 일이 생기면 극심한 후회에 빠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의 눈을 끌기 싫어 그는 불편하고 손해봐도 ‘기본’과 ‘형식’을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모임이 있을 땐 물론이고 촬영 때도 흰 셔츠에 검은 양복을 입는데, 그것이 도리어 청담동의 베스트드레서들 중에서도 베스트로 꼽히는 이유가 되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별로 논리적인 설명이 될 것 같진 않아서 말하지 않았는데, 제 인생에선 우연이란 부분이 컸어요. 사진을 찍게 된 것부터 청담동에 오거나 재단을 알게 된 것까지 다 그렇죠. 요즘 재단과 관련해 라디오 출연을 몇 번 했는데, 말할 때마다 세련되기는커녕 내 말이 진심인가 문득 자신이 없어져요. 결국 운명인가보다 하지요.”

    그를 잠시라도 만난 사람은 눈치챌 것이다. 그가 그 우연한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며,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하다는 점을 말이다. 그것을 그는 운명이라고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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