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7

2004.01.08

“공부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나요”

막노동서 사시 합격까지 장승수의 인생역정 … 권투선수·베스트셀러 작가 이어 또 화려한 비상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3-12-31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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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나요”
    막노동판 일꾼, 서울대 법대 수석합격, 권투선수, 사법시험 합격.

    그의 이름 앞에는 언뜻 보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타이틀들이 함께 붙어다닌다. 159cm의 작은 키에 가무잡잡한 얼굴, 왜소하지만 단단한 체구에선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김소진의 소설에서 모순된 인생살이의 희망을 찾듯, 그는 자신의 삶에서 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운 시절,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서울대 진학을 꿈꾼 이 투지의 사내는 이제 험난한 법조인의 길을 걸어갈 채비를 갖췄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로 잘 알려진 장승수씨(32)가 12월23일 제25회 사법시험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서울대 법대 수석합격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가 7년 후 사법시험 합격으로 다시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이다. 2003년 성탄절, 방송 녹화를 마치고 급하게 약속장소에 나타난 그는 “사법시험에 붙어서 다행”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예순이 훌쩍 넘은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렸고, 자신보다 2년 앞서 행정고시에 합격한 동생에게도 체면을 차릴 수 있다는 것. 1999년 본격적인 시험 준비를 시작해, 두 번의 실패 끝에 합격 통지를 받은 그의 얼굴엔 담담한 미소가 번졌다.

    “인세 덕분에 돈 걱정 없이 공부에 몰두”

    그가 여느 서울대 법대 수석합격자보다 더욱 화제가 된 이유는 ‘드라마틱한 인생역정’ 때문이다. 열 살에 아버지를 여읜 그는 1990년 대구 경신고를 졸업하자마자 공사장 막노동일, 택시운전, 가스통 배달, 식당 물수건 배달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공부를 시작했던 그는 고교 졸업 6년 만에 서울대 진학의 꿈을 이뤘다. 그것도 법대 수석합격. 희망이라곤 보일 것 같지 않은 환경에서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그의 의지는 고난을 겪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자신의 수험생활을 담은 책,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는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기본원리와 교과서에 충실한 그의 학습법은 사교육을 맹신하는 교육풍토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할 때도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서울 신림동의 학원수업에 의존해 요령껏 공부하는 것과는 달리 ‘원리 위주 학습법’을 택해 큰 효과를 보았다.

    “학교 전공 수업을 위주로 공부했어요. 저는 학원을 혐오해요. 대부분의 법대생은 학원에 의존하면서 법 원문은 읽지 않고 요약본 판례를 읽습니다. 하지만 저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판례를 꼼꼼히 찾아 읽는 공부 방법을 택했지요. 법원공보를 꼼꼼히 찾아 읽고, 교재 각주에 달린 판례도 거의 다 찾아 읽었습니다. 법원 도서관 판례 모음집 CD도 구입해 읽었고요.”

    사실 그가 이러한 공부 방법을 택한 데는 서울대 법대 양창수 교수의 힘이 컸다고 한다. 1, 2년 먼저 합격하는 것보다 법률을 온전히 이해하고 제대로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는 양교수의 가르침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데 지표가 됐다. 그는 “모르는 걸 알아내는 공부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며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대학이 상아탑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쓴소리를 쏟아냈다.

    “공부만큼 재미있는 일이 또 있나요”

    장승수씨는 프로 권투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대학들이 고시학원이나 직업교육학교로 전락하여 씁쓸합니다. 학문이 천시되는 사회는 장래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법시험 공부는 별개라고 생각하며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하는 법대생들이 안타깝습니다.”

    고난의 순간마다 탁월한 승부사적 삶을 살아온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97년 가을 폐결핵과 늑막염 진단을 받고 1년을 휴학해야 했던 것. 폐결핵에서 회복하는 데만 3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후 체력적 한계에 직면해야 했다. 하지만 오전 9시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밤 11시까지 제자리를 지키는 생활을 이어갔다. 도서관에서 집까지 2km 거리를 달리며 긴장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공부가 아무리 재미있다지만, 시험에서의 실패로 사법시험을 포기하고픈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수한 실패’와 ‘고난’에 이미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다. “2002년 2차 시험 불합격 소식을 듣곤 정말 지쳤습니다. 그런데 퍼져 있는 제 자신을 보는 게 싫어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지요.”

    힘든 순간에 처할수록 더 빛을 발하는 그의 근성은 권투선수 생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2000년 프로복싱 수퍼플라이급 테스트를 통과했고, 2004년 1월 중순 신인왕전의 출전 여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이젠 권투에만 전력투구할 수 없어 선수 생활을 그만두리라 마음먹지만, 그래도 그의 8년 권투 사랑이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원리 위주 학습법’을 택해 큰 효과를 보았다.

    “가난 경험 … 약자 이해하는 법조인 될 터”

    “권투선수가 되는 건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이었어요. 집 근처 체육관을 발견하고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지요. 권투는 인생과도 같습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가르쳐줬어요. 8년간 권투선수로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해왔다고 자부합니다.”

    한편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대학생활이 궁금했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보낸 대학생활은 어땠을까. 사법시험을 준비하느라 대학생활의 낭만을 누릴 여유도 없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그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절 잘 챙겨준 동기들 덕분에 MT도 가보고, 술도 마시고, 실연당한 친구들 위로도 해주고, 대학생활에서 누려야 할 것들은 모두 경험해봤습니다. 친구들이 미팅 자리에도 꼭 절 데리고 나가더군요. 아, 근데 미팅에 나온 여성분들이 처음엔 유명한 사람이라고 저한테 관심을 보이더니 나중엔 자기 또래의 잘생긴 친구들과 이야기합디다. 두 번 이상 만나본 여자가 없어요. 허허.”

    그의 사법시험 합격기는 다시 한번 화제가 될 듯하다. 책을 낼 의향이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미 출판사의 집필 제의를 받은 상태지만 아직 책 쓸 결심을 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인세 덕분에 경제적 걱정 없이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면서, 용기를 얻었다는 독자의 편지가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했다.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후 그는 7년 전과 마찬가지로 언론의 인터뷰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언론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그는 ‘서울대 법대 수석합격’이라는 꼬리표가 자신의 삶을 한정짓는 것이 가장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대학 시절 자신을 따라다닌 꼬리표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했는데, 이젠 ‘사시 합격’이란 꼬리표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그는 “그 꼬리표로부터 자유롭게 살겠다”고 했다. 이는 법조인의 길을 걷다가도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건설직 노동자나 트럭 운전사로 돌아갈 수도 있음을 뜻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직 어떤 길로 갈지 결심하지는 못했지만 치열한 사법연수원 생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양면적인 성격 탓에 법률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도 좋고, 검사가 되어 활동적으로 사건을 수사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열심히 공부하면서 갈 길을 고민해봐야겠죠. 요즘 사법시험 합격자들의 면면을 보면 성장 과정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저는 가난한 삶을 체험해본 만큼 약자의 삶을 이해하는, 균형 감각을 지닌 보다 나은 법률가가 될 수 있겠죠.”

    그와 만난 날은 성탄절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탄절은 두 건의 인터뷰로 지나가고 있었다. 특별한 날을 일에 매여 보내는 게 억울하지 않느냐는 말에 그는 “20대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은 모두 도서관에서 보냈다”며 “나는 비운의 사나이”라며 한술 더 뜬다. 하긴 청춘의 낭만과 즐거움을 모두 누렸다면 지금의 장승수는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 감내와 단련의 묘를 터득한 그는 이제 더 큰 도전을 두 팔 벌려 맞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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