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6

2004.01.01

중병 걸리면 ‘잔인한 선택’ 강요

  • 우석균 / 의사·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입력2003-12-26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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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병 걸리면 ‘잔인한 선택’ 강요
    ‘소피의 선택’이라는 영화가 있다. 메릴 스트립이 여주인공 소피 역을 맡아 아카데미상을 받기도 한 영화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와중에 자신의 두 아이 중 아우슈비츠의 가스실로 끌려갈 아이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어머니의 일생이 이 영화의 소재다.

    먼 나라의 옛이야기 같지만 이런 ‘잔인한 선택’의 강요가 우리 땅에서도 일상사처럼 일어난다. 얼마 전 딸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낸 아버지가 살인죄로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진료비 8000만원을 마련해야 했던 아버지는 집을 팔아 사글셋방으로 옮기고 직장도 그만뒀다. 퇴직금을 진료비에 보탰지만 그것으로도 모자라 친척들에게 빚까지 졌다. 그러기를 3년, 그 ‘못난 아비’는 결국 나머지 가족들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딸을 살릴 것인가라는 ‘선택’에 직면한다.

    의료개혁 실종 서민들 ‘자살’로 몰아서야 되는가

    이 사건이 과연 ‘특별한 사건’일까? 가족 중 한 명이 중병에 걸리면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 않을 가장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건강보험공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족 중 중병에 걸린 사람이 있는 집의 가장은 사실상 이 같은 과정을 똑같이 겪고 있다. 집을 팔고 회사를 그만두고 빚을 얻는다. 지금 대학병원 중환자실 앞에 가보라. 치료비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상황에 직면한 서민들의 또 다른 ‘선택’은 자살이다. IMF 경제위기 때인 1998년 자살자 수가 전년에 비해 42.3% 늘어났다. 이후 줄어들던 자살자 수가 작년에 또다시 그 수치를 넘어섰다. ‘소피의 선택’이라는 영화는 결국 소피의 자살로 끝맺는다. 소피가 강요받은 선택은 오늘 우리 사회의 서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 모든 게 건강보험이, 사회안전망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발생한 ‘현실’이다. 의료비 중 공적재원에 의한 환자 지원율이 45%인 한국은 의료보험 보장률이 80% 이상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가 중 최하위다. 평소에 준비해 재난을 대비하자는 사회보험의 취지조차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다들 재원(財源)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가족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가계가 파탄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제도, 즉 가구당 연 200만원 이상의 의료비가 들면 이를 국가가 대신 부담하는 ‘진료비 본인 부담 상한제’를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 1조2000억원은 한국이 이라크 파병에 쓰려는 비용보다 적다. IMF 관리체제 당시 투자자들의 채권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쓴 공적자금이 190조원이었다. 문제는 재원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의지인 셈이다.

    정부는 최근 의료계의 파업 협박에 밀려 5년간 시범사업까지 벌였던 포괄수가제 도입을 포기했다. 공적보험제도로 진료비를 지급하면서 행위별수가제를 단일제도로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행위별수가제는 과잉진료를 유도해 의료비의 급격한 상승을 초래한다. 또 OECD 회원국가의 공공의료기관비율이 평균 75%인데도 우리나라는 10%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윤을 추구하는 사적 의료기관들이 행위별수가제로 의료보험 재정을 탕진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방치하면서 재원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정부다.

    사회단체들이 의료보장 강화, 행위별수가제 변화, 공공의료기관 강화 등을 주장하는 것은 한국의 의료제도를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깝게 가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공약사항으로 의료보장률을 80%, 공공의료기관비율을 30% 선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공약을 지키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노대통령이 천명한 의료개혁은 후퇴일로에 있다.

    필자는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는 환자 한 분과 2주마다 한 번씩 싸움 아닌 싸움을 한다. 그 환자는 대략 3000만원이 드는 수술비가 자식들에게 부담이 된다며 완강히 수술을 거부하고 있다. 비록 힘든 몸이지만 그는 직장도, 자식도 있는 평범한 서민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사실상의 ‘자살’을 선택했다. 의료개혁의 실종이 이처럼 서민들의 ‘죽음’으로 이어지는데 노무현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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