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6

2004.01.01

오후 4시만 되면 온몸은 종합병동

겨울철 밀폐된 실내공간 발병 ‘4시병’ … 수시 환기, 물 자주 마셔야 예방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12-24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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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4시만 되면 온몸은 종합병동

    두통이나 재채기가 반복된다면 일단 사무실을 나와보자.

    벤처 회사에 다니는 김모씨(32)의 요즘 별명은 ‘4시맨’이다. 오후 4시만 되면 종적을 감추기 때문에 붙여진 닉네임. 슬그머니 사무실을 빠져나간 그가 찾는 곳은 건물 옥상. 동료들이 그 이유를 물으면 언제나 “잠시 쉬려고” 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는 왜 이 엄동설한에 굳이 옥상으로 올라가는 걸까.

    김씨가 ‘4시맨’이 된 데는 다 그만한 속사정이 있다. 그는 이상하게 4시만 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재채기에 콧물까지 나와 도저히 자리를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감기약이나 두통약을 먹어도 전혀 효과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오후만 되면 온몸이 천근만근. 그런 그가 발견한 탈출구가 바로 옥상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

    요즘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며 이비인후과나 내과를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해맑은이비인후과 이화식 원장은 “한겨울 난방으로 인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건조한 공기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 저항력을 떨어뜨린다”며 “요즘 콧물, 재채기, 두통 등 알레르기 비염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몸은 쑤시고 눈은 따끔거리고

    본격적으로 날씨가 추워지면서 난방시간이 늘어나고 건물마다 창문을 꼭꼭 닫고 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처럼 밀폐된 건물 안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다보면 두통, 현기증이나 목과 눈이 따끔거리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는 모두 건조한 공기로 인해 코 점막이 마르면서 발생하는 증상. 수분조절 기능 저하는 인체의 저항력을 급속히 떨어뜨려, 이때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비염에 걸리기 쉽다. 또 코막힘 때문에 입으로 숨을 쉬면 먼지, 세균, 바이러스 등이 인·후두를 거쳐 기관지로 들어가 인두염, 후두염, 기관지염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증세는 사무실의 공기오염과 스트레스·피로가 최고조에 달하는 오후 4시경을 전후해 정점을 이루기 때문에 흔히 ‘4시병’으로 불린다.



    대기업 인사부에 근무하는 안모씨(28·여)도 전형적인 ‘4시병’ 환자. 종일 컴퓨터로 일하는 업무의 특성상 오후만 되면 목이 뻣뻣해져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어렵다. 심한 날은 어깨를 펴기도 힘들다. 사실 그가 더 고통스럽게 느끼는 건 눈이다. 수년째 렌즈를 끼는 안씨는 오후만 되면 렌즈를 빼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 이유는 눈이 건조해지기 때문. 이럴 때는 인공 눈물을 넣기도 하지만 임시방편일 뿐 금세 다시 눈이 아프고 충혈되기 때문에 여간 괴롭지 않다.

    안씨의 증상은 전형적인 VDT(Visual Display Terminals)증후군에 속한다. VDT증후군은 TV, 비디오 게임기, 컴퓨터 등을 장시간 사용할 때 생기는 여러 형태의 복합적인 증세를 일컫는다. 오랫동안 게임기나 컴퓨터 화면을 보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등의 반복 동작, 적당하지 않은 조명, 좋지 않은 자세 등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전에는 비교적 증세가 약하게 나타나지만 오후가 되면 본격적으로 눈이 아프고 몸이 결리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왜 오후 4시만 되면 몸이 아픈 것일까? ‘4시병’은 흔히 잘못된 업무 환경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현대인은 아파트나 사무실뿐만 아니라 실내작업장, 공공건물, 실내 편의시설, 지하시설물, 자동차 등 실내공간에서 하루의 80% 이상을 생활한다. 이러한 오염된 실내공간에서의 활동이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좋지 않은 환경은 잘못된 습관을 들이기 쉽고 이는 결국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겨울철 실내공기가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건조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밀폐된 공간구조에서 연유하기도 하다. 요즘의 최첨단 건물은 대부분 창이 없다. 공기가 순환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더럽혀진 실내공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여기에다 도로에서 나오는 각종 유해가스와 담배 연기는 실내오염을 더욱 악화시킨다. 인체의 생리기능을 거스를 정도로 높거나 낮은 실내 온도 및 습도는 최악의 작업환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여성이나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2배 정도 이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대부분 이런 환경 탓으로 나타나는 4시병은 오염된 공기가 그 원인인 만큼 맑은 공기를 쐬면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간혹 이런 증상이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질환이나 만성질환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 ‘4시병’을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 있다. 근무환경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바꾸면 된다. 하루 2, 3회 15분 정도씩 환기를 하고 가스나 석유난로로 난방을 하는 경우에는 1시간에 1, 2회 5분 정도씩 환기한다. 실내에 천연 공기정화기 역할을 하는 녹색식물을 키우면 도움이 되고, 금연은 필수사항이다. 습도조절을 위해 사무실에 수족관 등을 두는 것도 좋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은 가습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보통 습도가 40% 이하로 떨어지는데, 중앙난방 시스템인 경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일반 빌딩보다 더욱 건조해져 습도가 20∼30%로 떨어지기 쉽다. 이때는 인위적으로 습도를 높여야 한다. 다만 습도가 60%를 넘으면 진드기나 세균 등이 서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한다.

    건물의 채광이나 온·습도, 환기, 공기정화 기능을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자주 바깥 공기를 쐬고, 하루 1.5ℓ 정도의 물을 마시면 질병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 다음은 충분한 휴식. 1시간 작업한 뒤에는 무조건 10분 정도 쉰다. 쉴 때는 되도록 건물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쐬면서 간단한 눈 마사지나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다. 일할 때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은 기본이다. 특히 컴퓨터 작업을 할 때는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로 앉으며,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는 것은 가급적 피한다.

    한양대병원 호흡기내과 윤호주 교수는 “특히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요즘과 같은 날씨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겨울철 실내공기의 오염으로 인한 문제는 사무실뿐만 아니라 고층아파트나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주상복합식 건물 등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도 자주 환기하고 공기를 깨끗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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