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6

2004.01.01

썬앤문 정치권 커넥션 ‘일파만파’

盧 측근·한나라당 의원에 자금 제공 속속 드러나 … “전방위 접촉 통해 정치 꿈 키웠을 것”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3-12-24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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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앤문 정치권 커넥션 ‘일파만파’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

    ‘썬앤문 게이트’의 파도가 정치권을 덮치면서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구속)과 김성래 전 부회장(구속)의 정치권 커넥션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4년 후배인 문씨가 2002년 대선 당시 노대통령 측근들에게 ‘불법 대선자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데다 김씨 역시 9월 담당 재판부에 보낸 탄원서에서 “2002년 대선 당시 여야 양쪽에서 도움을 요청해와 바빴다”는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취재 결과 썬앤문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권 인사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한나라당 박원홍 의원도 김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박의원 외에도 한나라당 K, H의원 등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떠들고 다녔다는 게 김씨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박의원은 12월20일 전화통화에서 “김씨를 전혀 모른다. 김씨가 후원금을 제공했는지는 확인해보겠다”고 했으나 22일에는 “후원금을 받은 적이 없다. 검찰에 확인해보라”고 딱 잡아떼면서 자신의 이름을 거론할 경우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김씨 측근은 “박의원이 후원금을 받고도 부인하는 것을 보면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문씨와 김씨는 이들 외에도 노대통령 측근들과 한나라당 인사들에게도 돈을 건넨 것으로 드러났거나 정황 증거가 포착됐다. 검찰 수사 결과 문씨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대통령과 가까운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과 노대통령 측근인 이광재 전 대통령국정상황실장, 여택수 대통령제1부속실 행정관에게 각각 2000만원, 1억원, 3000만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다. 또 문씨가 노대통령의 또 다른 핵심 측근인 안희정씨(구속)에게 감세 청탁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큰 도움 안 받았다” 대통령 적극 해명



    검찰은 또 김씨가 제3자를 통해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양경자 한나라당 서울 도봉갑지구당 위원장도 썬앤문측에서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 전 대표는 “썬앤문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면서 이를 강력히 부인해 배달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양위원장도 “김씨에게 돈을 빌렸으나 나중에 되돌려주었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미 노대통령과 문씨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문씨 주변에서도 노대통령이 썬앤문그룹 고문변호사를 지내는 등 노대통령과 문씨는 오래 전부터 막역한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얘기한다. 썬앤문그룹 관계자는 12월20일 전화통화에서 “썬앤문그룹에는 고문변호사 제도가 없다. 다만 문회장이 사업을 확장하며 생긴 법률적 문제를 노무현 변호사에게 전화 또는 직접 만나 자문한 사실은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문을 구할 경우 자문료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썬앤문 정치권 커넥션 ‘일파만파’

    2003년 1월 썬앤문그룹 문병욱 회장 소유 뉴월드 호텔에서 열린 재경 부산상고 동창회 모임(위쪽). 12월3일 검찰이 썬앤문그룹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1999년과 2000년 문씨 소유의 경기 이천시 미란다호텔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해 파업을 했을 때 노무현 변호사가 변론활동에 나섰다는 게 한나라당측의 주장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고문 변호사를 맡은 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노대통령은 9월1일 이천 도자기 축제가 열렸을 당시 이 호텔에서 지역 경제인들과 다과회를 가지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썬앤문 게이트’가 ‘노무현-문병욱 커넥션’으로 성격이 바뀌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적극 해명에 나섰다. 노대통령은 12월18일 충북지역 언론인과의 간담회에서 “문씨는 서울에서 꽤 성공한 고등학교 후배로 알려졌고 동창회 같은 데 가면 열심히 활동하며 상당한 기여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문씨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의 말을 뒤집어보면 문씨로부터 도움을 받긴 받았다는 얘기다. 문씨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가 있으나 청와대 관계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부산상고 동창회 관계자들은 문씨에 대해 ‘짠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2002년 대선 직후 문씨 소유인 서울 강남 뉴월드호텔에서 동창회 행사가 열렸을 때 총동문회장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 ‘오늘 행사는 재경동창회 부회장인 문회장이 큰 도움을 주었다’면서 동문들에게 인사까지 시켰는데, 다음날 호텔 관계자가 동창회 사무실로 전화해 ‘연회비를 누가 계산하느냐’고 말해 황당해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씨의 이런 성격을 잘 아는 동창회 관계자들은 문씨가 지난해 대선 때 노후보 캠프에 선뜻 ‘거액’을 전달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노후보가 단순히 부산상고 선배이기 때문에 지원한 측면도 있겠지만 노후보 캠프측에 대한 감세 로비의 성공 대가가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씨측은 “단순한 후원금”이라고 주장한다. 썬앤문그룹은 2002년 국세청 특별세무조사에서 170여억원이 추징될 예정이었으나 23억원으로 감액돼 그 배경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이 제기돼왔다.

    2002년 대선 당시 문씨가 노후보측을 상대했다면 김씨는 주로 한나라당을 상대로 한 로비에 치중했다. 그러나 정·관계에 쌓아놓은 인맥이 없는 김씨의 정치권 로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전 국정상황실장에게 접근한 것도 이 전 실장을 평소 잘 알고 있던 국민은행 김모 부장을 통해서였다. 김씨는 평소 사업관계로 안면이 있는 김부장이 노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로 노대통령 측근 인사들과 알고 지낸다는 얘기를 듣고 김부장에게 부탁, 대선 전에 이 전 실장을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구속 직후 녹취록에서 “이 전 실장에게 준 1000만원짜리 수표 복사본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씨가 이 전 실장에게 준 돈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린다. 규모도 1000만원이 아니라 5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한 측근은 “김씨는 썬앤문 감세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에서 ‘이 전 실장이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나중에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반면 이 전 실장은 끝까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오히려 국민은행 김부장이 ‘김씨에게 500만원을 받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가 썬앤문 감세 로비를 위해 접촉했던 민주당 P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김씨는 P의원과 잘 아는 한 법무사를 통해 P의원을 만났다. P의원은 “그 자리에서 서울지방국세청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국세청이 죽이려고 한다는데, 김씨 얘기나 한번 들어보라’고 말해주었을 뿐 감세 로비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P의원에게 후원금을 전달하려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또 탄원서에서 “노후보뿐만 아니라 이회창 전 후보 부인 한인옥 여사를 만났다”고 주장해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던졌다. 그러나 김씨 주변인사들은 김씨의 탄원서는 신빙성이 약하다고 말한다. 한 관계자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한여사를 만났기 때문에 한여사는 그런 사람이 참석했는지도 몰랐을 텐데도 김씨는 마치 한여사를 한 시간 동안 독대한 것처럼 떠들고 다녔다”고 말했다.

    몇 개의 호텔과 골프장을 소유한 문씨가 이처럼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에 접근한 이유는 무엇일까. 20여년간 문씨와 교분을 나눠온 K씨의 분석은 이색적이다.

    “문씨의 꿈은 대규모 레저회사를 경영하는 것이다. 그는 97년 말 IMF 이후 부동산 값이 폭락하자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빌려 3∼4개의 호텔을 인수했다. 자금을 빌리고 사업체를 인수·인계하는 과정에 권력의 지원이 필요했을 수 있다. 또 사업체가 커지면서 세금 등과 관련해 권력의 ‘보호’를 기대했을 법도 하다. 문씨는 이런 과정에 정치에 대한 꿈을 키웠던 것 같다. 특히 고교 선배인 노대통령을 보고 국회의원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런 그를 옆에서 충동질한 사람이 민정당 지구당 부위원장을 지낸 김성래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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