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2

2016.08.24

와인 for you

오미자 와인 名人,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 “토종으로 만든 세계 유일 로제 와인”

한반도 원산지, 무농약·유기농 오미자만 사용…“세계가 인정하는 술 만들 터”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6-08-19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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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 와인이 우리 술문화에서 대중주로 안착한 가운데 토종 오미자로 만든 와인과 증류주가 많은 와인 애호가와 주류 전문가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2007년부터 오미자를 원료로 와인을 생산, 판매해온 ‘오미나라’의 이종기(60) 대표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오미나라의 로제 와인은 이 대표가 오미자를 이용해 만든 세계 최초 와인이며, 특유의 상큼한 맛으로 소비자들에게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오미자 와인의 개발 비사와 맛의 근원을 알아보고자 8월 9일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 위치한 오미나라를 찾았다. 문경새재 인근에 자리 잡은 오미나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쯤. 이 대표는 고추장 삼겹살구이, 더덕구이, 산나물, 된장찌개와 ‘오미로제’로 점심상을 차려놓고 취재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미로제는 오미자로 만든 로제 와인으로, 몇 번 마셔본 적은 있지만 한식과 즐기는 건 이번이 처음. 오미로제는 더덕과 산나물의 쌉쌀한 맛, 고추장의 매콤한 맛, 된장찌개의 짠맛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그게 3년 걸려 만든 와인이에요.”

    오미로제를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감탄사를 연발하자 이 대표가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포도로 만드는 로제 와인은 발효와 숙성기간이 대체로 6개월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재료가 오미자로 바뀌었지만 오미로제도 로제 와인의 한 종류이고, 타닌이 강한 레드 와인의 발효와 숙성기간이 대략 3년인 점을 고려하면 긴 시간이었다.





    명품을 만들기 위한 각고의 노력

    “오미자의 쓴맛, 신맛, 짠맛이 모두 방부 성분이에요. 그러니 발효가 더딜 수밖에요. 오미자 발효가 어렵고 오래 걸려서 프랑스 양조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어요. 3개월 안에 발효를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하기에 오미자즙을 보냈죠. 그런데 3개월이 지나자 6개월은 걸릴 것 같다고 하더군요. 1년이 돼갈 때쯤 그도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이렇게 까다로운데 이 대표는 왜 하고 많은 재료 가운데 오미자를 선택했을까. 그의 얘기는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1993년부터 발효 가능한 모든 원료로 실험해봤습니다. 쌀, 보리, 수수, 조, 고구마, 감자, 포도, 감, 배 등 이루 다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예요. 그런데 쌀이나 포도로는 세계적인 술을 만들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과일은 대부분 식용이지 양조용이 아니에요. 식용 재료로는 좋은 술을 만들 수 없죠. 오미자가 최상의 선택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하고 1980년 국내 굴지의 주류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후 10년이 되던 해인 90년 스코틀랜드 헤리엇와트(Heriot-Watt)대에 유학할 기회가 생겼다. 헤리엇와트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조증류학 석사 과정이 있는 대학이다. 당시 정원 35명 가운데 22명이 외국 학생이었는데, 하루는 학생들이 자국 술을 가져와 함께 시음하는 기회가 있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전통 증류주를 가져갔다. 그런데 교수가 시음하더니 “술인지 약인지 모르겠다”고 혹평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 술을 만들겠다는 오기를 품게 됐다”고 한다.

    이 대표가 전통 증류주가 아닌 발효주 가운데 와인을 택한 것도 양조학을 가르쳐준 은사와 관련이 깊다.

    “당시 교수님이 가장 칭찬한 술이 로제 샴페인이었어요(웃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술 중에는 청와대 국빈 만찬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 축배를 들기에 마땅한 것이 없더군요. 그래서 로제 와인과 로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게 됐습니다.”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산한다. 샴페인 방식은 먼저 완성된 와인을 일일이 병에 담고 이스트와 설탕을 넣어 병 안에서 기포를 만든다. 기포 생성이 끝나면 병 안의 이스트 앙금을 빼내는데, 이것도 수작업으로 하나씩 진행해야 한다.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수반되는 일이지만 와인 품질만큼은 최고다.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의 기포는 크림처럼 부드럽다. 달콤한 듯 상큼하고 매콤함도 살짝 띠는 오미자향이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입안을 가득 채운다.

    경북 문경은 국내 오미자의 40%가량을 생산하는 지역으로, 이곳 오미자는 한반도가 원산지다. 오미나라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도 그 때문으로, 현재 오미로제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오미자로 만든 와인이다. 오미로제의 원료는 문경 오미자 가운데 무농약과 유기농으로 생산한 것만 선별해 쓴다. 오미자 외 들어가는 첨가물은 이스트가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설탕이 유일하다.  

    오미로제는 3년이라는 긴 생산기간과 적은 생산량 때문에 가격이 비싼 편이다. 로제 와인과 스파클링 와인 모두 한 해 생산량이 3만 병이 안 된다. 이 대표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제품의 다양화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연구 중인 샤르마(Charmat) 방식의 스파클링 와인이 그것. 샤르마 방식은 와인을 일일이 병에 담는 대신, 압력탱크 안에 넣어 한꺼번에 기포를 생성하기 때문에 만들기도 쉽고 생산기간도 짧다. 그는 “이 방식으로 만든 제품이 나오면 더 많은 소비자가 부담 없는 가격에 오미로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고운달’ ‘문경바람’ 증류주도 최고 품질

    지난해부터는 증류주도 생산한다. ‘고운달’과 ‘문경바람’이 그것이다. 고운달은 오미로제를 증류한 술이다. 부드러운 질감, 풍부한 향, 목으로 넘긴 뒤 퍼지는 은은한 여운은 딱 한 모금만으로도 대번에 최고급 증류주임을 실감케 한다.

    “증류용 술을 만들 땐 발효를 높은 온도에서 빨리 끝냅니다. 스코틀랜드 위스키도 발효가 이틀을 넘지 않아요. 그래서 증류하기 전 맛을 보면 술이 밍밍해요. 위스키의 풍미는 모두 오크통 숙성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고운달은 3년 걸려 생산한 오미로제로 만듭니다. 원료로 쓰는 술이 좋아야 증류주 품질도 좋아요.”

    고운달은 백자 항아리에서 숙성한 것과 오크통에서 숙성한 것 두 가지로 출시한다. 백자 숙성 고운달은 투명한 빛깔에 순수하고 우아한 향미가 고급스럽고, 오크통 숙성은 캐러멜 색에 은은한 복합미가 매력적이다. 문경바람은 사과로 만든 증류주다. 고운달이 오미로제를 원료로 하다 보니 생산량이 적고 가격도 비싸 이를 보완하고자 만들었다. 문경바람은 원료도 저렴하고 제조과정도 짧아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1만 병을 생산했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는 4만~5만 병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경바람은 질감이 부드럽고 향미가 친근하다. 그야말로 입에 짝짝 붙는다. 인터뷰 내내 열정으로 가득하던 이 대표의 눈빛에서 우리가 오미나라의 술을 부담 없이 즐길 날도 머지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술은 대부분 수입 원료로 만듭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우리가 마시는 술의 10%만이라도 우리 농산물로 만들면 농업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과수 농가는 특히 어려워요. 쌀은 정부가 수매라도 해주죠. 국제주류품평회에 오미로제와 고운달을 출품해볼 생각입니다. 세계적인 명주로 인정받으면 제조 방식을 공개할 계획이에요. 대학에서 양조학과 식품공학을 배운 인재들이 갈 곳이 없어요. 오미로제가 그들에게 창업 기회가 되고 우리 농업에 보탬이 되는 것이 제 마지막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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